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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Jul 16. 2019

갑자기 달팽이

헤이카카오 녀석이 분명 흐리기만 하고 비는 오지 않을거라 했는데 아침부터 시원하게 쏟아지던 장대비는 천둥이랑 번개까지 일으키더니 결국 아이 하원시간까지도 그치지 않았다.

하원하며 비를 보면, 정확하게는 빗물이 곳곳에 고여 만들어진 웅덩이를 보면 분명 하앍하앍하며 놀겠다 할 아이라 우비를 챙겨 마중을 갔는데 우당탕탕하는 천둥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우와우와 거리던 아이는 역시나 물웅덩이에서 발을 첨벙이며 흥겹게 물놀이를 즐겼다.

샌들을 신은 발은 물론 칠부 바지까지 흠뻑 젖도록 놀아 놓고서는 연신 집으로 들어가자는 내 물음에도 고개만 도리도리 하기에 ‘그럼 젤리 줄까?’라 물으니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스로 계단으로 향한다. 아아, 젤리 만드신 분께 절이라도 해야...

어찌 집에 들어와 어찌 손발을 씻기고 감히 본인을 씻겼다고 칭얼대는 아이 입에 젤리좀 까서 물려주고 아 이제 한숨 돌릴까 하는 찰라, 아이는 벽을 타고 넘나드는 닌자 마냥 순식간에 내 너른 등에 착 달라 붙어 어부~바를 외친다. 잉? 진심?

어부바를 하니 포대기를 두르라 하고 포대기를 두르니 나가라신다. ‘비와서 안돼 못 나가’라는 말은 들은채 만채 연신 현관에 대고 손가락질이길래 하는 수 없이 우산을 받쳐 들고 나갔다.

걷는 길에 내 의사따윈 없지. 코스는 언제나 옆 학교 운동장으로 정해져 있기에 조금만 경로를 이탈할라치면 내 뒷통수에 잔소리를 옹알이로 날리는 아이를 이고 지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설마 이 빗 속에 공차는 사람 있겠어? 가서 지금은 공차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들어가자고 해야지. 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조기 축구 아저씨들은 어찌나 열정적이신지...장대비 속에서도 공을 빠앙 차며 일사분란하고...아이는 ‘비가 오면 공이 아 차거! 해서 싫어해’라고 했던 엄마 말이 거짓부렁이었음을 눈치챘는지 본인 공도 내 놓으라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집에 가자! 포대기가 끊어져라 뒤로 고개를 재끼며 우는 아이를 달래며 걸음을 떼는데 응? 으음? 저것은?


......


그렇게 우리집에 달팽이가 들어왔다.

갑자기 분위기 달팽이라고 이름도 ‘갑분이’.



방학 한 학생이 버리고 간 것인지 혼자 집 나와 방랑을 즐기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모셔 온 김에 책임을 다해 키울 요량으로 이것저것 돌보기 세트를 주문했다.


엄마가 달팽이에 흠뻑 빠져 헤롱거리는 것을 보던 아이는 달팽이 먹으라고 잘라 준 당근을 본인이 먹겠다고 씅을 내지 않나 엄마가 엉덩이만 좀 떼면 가지 말라고 대성통곡을 하지 않나 난리...너 질투하니?


아이의 떼에 지쳤다가 달팽이가 채소 갉아 먹는 소리에 힐링하고 아아 이거슨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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