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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n 18. 2018

처벌 받지 않는 죄, 동물권 유린

강아지 분양 사기를 당했다

아마도 생전 처음으로 경찰서에 다녀왔다.


작년 9월에 양파를 가정견으로 알고 입양했는데, 정황상 공장견(개번식장에서 낳은 개)임이 확실해보여서 사이버안전국에 신고해둔 참이었다. 신고한지 한 달만에 진술서를 작성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한창 바쁜 시즌이지만 휴가를 내고 용산경찰서에 갔고, 작성해간 진술서를 토대로 열심히 상황을 설명했다. 중간중간 필기를 하며 듣던 형사가 갑자기 내 말을 끊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강아지가 지금 죽었어요?"

"아니요. 멀쩡한데요."

"그럼 처벌이 안 돼요. 데려온지 며칠만에 죽어버렸다, 이러면 뭐 환불도 받고 그런 게 되는데... 멀쩡하면 안 됩니다."


숨이 막혔다. 가정견으로 속아서 데려온 강아지가 죽은 게 아니면 형사처벌은 안 된단다. 내가 집해 간 증거는 분양 사기(물론 분양이라는 단어도 싫다. 생명을 들이는 일은 분양이 아니라 입양이다.)를 당했다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도, 양파가 아직까지 멀쩡하기 때문에 처벌이 안 된단다.


내가 기막힌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이어지는 형사의 두번째 질문.

"강아지가 어디 아픈 것도 아니고 멀쩡하다면서요. 근데 왜 처벌하고 싶으신거에요?"

"아니 그러니까요 형사님, 그런게 아니에요... 강아지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억울하다는 게 아니에요..."


더 설명하려 했지만 담당 형사는 나에게 '정 속상하면 피의자에게 내용 증명을 보낸 후에 민사 소송을 제기하시라'며 면담을 마무리했다. 착신 정지 후 연락이 두절된 피의자의 집 주소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내용 증명을 보내라는 말인진 모르겠지만, 더 앉아 있어봤자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나는 등에서 땀이 흐를 만큼 더운 경찰서에서 나왔다. 시계를 보니 도착한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터덜터덜 걸으면서 나의 능력 부족으로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내가 피의자를 처벌하고 싶은 이유를 생각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었는데, 그래도 개번식장에 갇혀서 임신과 출산만 반복해야 하는 개들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동물권에 아주 관심이 있진 않았어도 개번식장이 얼마나 끔찍한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았거든요. 그래서 가정견을 찾은 거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유기견을 입양하지 않고 아기 가정견을 데려온 것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왕이면 강아지가 어릴 때부터 키우고 싶었던 마음, 그것도 결국 이기심이죠. 내가 아기 강아지를 데려오면, 그 강아지의 진짜 엄마는 2~3개월 만에 아기를 빼앗기는 거니까요.

그래도 공장견은 더 안 돼요. 사람들은 책임지지도 못할 개를 너무 많이 만들어내요. 개번식장에 갇혀서 평생 출산만 하는 어미개들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용해도 되는 애들이 아니에요. 우리랑 똑같이 기쁨도 느끼고 고통도 느끼는 애들이에요.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을 모르지 않아요. 발정제를 맞고, 교미를 하고, 출산을 하고, 새끼를 빼앗기고, 다시 발정제를 맞는 삶. 스트레스 때문에 새끼를 물기라도 할까봐 이빨을 다 뽑혀야 하는 삶.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면서 뜬장에 갖혀 살아야 하는 삶. 그런 삶은 어떤 동물도 살아서는 안 되는거죠. 그런데 우리 양파가 그런 개한테서 태어났다니. 나는 그 어미견에게 얼마나 나쁜 짓을 한 걸까요...

저한테 양파를 가정견이라고 속여서 판 그 사람, 그런 사람들은 찍어내듯이 개를 만들어서 팔아요. 아주 싸게. 너무 싸서 아무나 마음 내키면 살 수 있게. 키우다가 또 마음 내키면 쉽게 버릴 수 있게. 어차피 얼마 하지도 않으니까. 쉽게 버려진 아이들은 길을 헤매다 로드킬을 당하고, 개장수한테 잡혀가서 산 채로 목을 찔리고, 웬 사이코패스 눈에 띄어서 학대를 당하고, 그나마 운이 좋으면 유기견 보호소로 갔다가, 보호소 자리가 모자라면 안락사를 당하는거죠. 너무 많이 만드니까 너무 많이 버리는거에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버려요.

저는 양파가 가정견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몇 달 동안도 아주 떳떳하지는 못했어요. 아기 강아지를 데려온 것부터가 욕심 부린 게 맞으니까요. 그래도 이왕 데려왔으니 그 사람 집에 살던 때보다 우리집에서 더 많이 누리고 살게 해주면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양파는 그 집에 살았던 적이 없고, 나도 결국 돈을 주고 양파를 사온 거고, 나 때문에 또 번식을 강요 받은 개가 있었고, 그 개는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거였어요. 그리고 양파 형제들 중 어떤 아이는 이미 유기되어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처벌을 원하는 겁니다. 공장견인데 가정견 값을 쳐준 게 억울해서도 아니고, 공장견이라는 사실 때문에 입양을 후회해서도 아니에요. 불법 개번식장 혼내달라는거에요. 그래서 개를 입양하는 게 조금 더 어려워졌으면 좋겠어요. 입양이 까다로워지는 게 개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할 첫 단추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공장견인 양파가 우리집에 와서 다행히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이 안 된다니요. 그게 아니라, 양파가 잘못 됐어도 제가 원하는 형사 처벌과 개번식장 단속은 불가능했겠죠. 고작 입양비 70만원을 돌려 받는 게 전부였을거에요. 어차피 개는 '재산'이지, '가족'이 아니라면서요.


내가 나간지 1시간도 안 되어서 집에 돌아오니 양파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꼬리를 떨어질 듯이 흔들어대며 달려와 안겼다. 사람들은 너희를 그렇게 괴롭히는데, 그래도 너희는 사람이 좋은가보구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몹쓸 사람들. 내가 신고한 사기꾼만 그런 게 아니라, 개를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도 개 입장에선 다 똑같이 몹쓸 사람들일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내가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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