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초등학교생활에 대해 이상했던 점
이상했다
초등학교에 가고 2학년, 3학년이 되는 동안 일기는 왜 일주일에 한 번만 써오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일기는 매일 쓰는 것이 아닌가, 일주일마다 선생님이 검토 후 나눠주시면 빨간색 플러스펜으로 적어주신 코멘트를 찾아 읽으며 자라온 시간들을 생각해 봤다. 물론 일기를 쓰는 것은 생각보다 귀찮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힘들지만 꾸준히 반복해야 하는 일들의 위대함을 처음으로 배운 것이 그때였다고 기억한다. 요즘은 왜 일기를 안쓰지?
방학숙제에도 일기는 없었다. 한 달여의 방학기간 중 일기 한편 써오기가 전부였다. 재희네 반만 그런가 의아한 마음에 다른 반 친구에게 물어봤다. 아예 일기 숙제가 없는 아이도 있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쓰는 아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한 것이 일기인데. 왜 일기를 안쓰지? 일기가 뭐 중요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기는 써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속의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던 어느 날. 그것이 아이들의 사생활 침해 문제에 닿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생활 침해, 응?
이상한 일은 또 있었다.
4학년 1학기, 한 학기 내내 아이의 노트에 필기된 내용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왜 필기를 하나도 안 했지? 담임선생님과 2학기 학부모 상담하는 날 그 부분에 대해 문의를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곤란한 기색을 보이셨다. 하루 이틀 안 할 수는 있는데, 그럼 그 부분을 지적하고 안 한 건 해야 된다고 왜 바로잡아주지 않으셨는지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수업시간 중에 다 못하면 남겨서라도 하라고 해주시면 좋겠다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 "그런 부분을 싫어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셔서요..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되려 물으시는 것이 이상했다. 네, 해야 할 걸 다 안 하면 남아서라도 해야 되는 거라고 알게끔 그렇게 지도해 주셔도 괜찮아요. 조금 혼내셔도 되고요. 다소 급진적인 나의 태도도 이상해 보였나 보다. 그런 나를 워워 시키시면서 그렇다면 재희가 필기를 못한 날에는 남겨서 지도하도록 하겠다고 하셨다.
그다음 일주일간 필기를 안 한 날의 재희를 남겨서 마저 하게 하셨고, 그 일주일이 지나고부터는 어떻게 해서든 일과시간 중에 해야 할 필기를 대충이라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빠르게 교정 가능한 부분인데 한 학기 내내 방치된 것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컸다. 선생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학생을 혼내지도 못하고, 강제로 뭘 시킬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선생님들의 입장을 알게 된 건 최근이다.
거기서 끝은 아니다. 올해 초인가, 앞으로 초등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아동인권보호 취지라고 했다. 한국말로 된 기사를 읽는데 한참 동안 독해가 필요한 문장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한국인 어린이가 한글을 배우는 과정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지 않을 수가 있나.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받아쓰기 시험을 폐지하자, 라고 결론 지은 것은 분명히 어른일 텐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축약되었을 사건들을 이제는 알겠다. 우리 아이가 받아쓰기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선생님에게 밤 9시 45분에 전화를 걸었을지도 모를 부모들이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아이가 백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는 컴플레인도 가능했겠다. 받아쓰기 별거 아닌데 이걸로 스트레스받고 있는 우리 귀한 아이를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는 건의라던가.
어떤 부분에서는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하로 운영되고 있는 요즘의 학교.
학생을 혼낼 수 없는 선생님, 선생님을 때리는 학생. 선생님 앞에서 대놓고 비속어를 하는 학생, 들어도 못들 은척 하는 게 최선인 선생님. 벌을 줘도, 부정적인 피드백을 해줘도 안 되는 선생님, 잘못을 해도 깨닫지 못한 채 한 학기 한 학기가 지나가버리는 학생. 일기 숙제를 내고 검토하는 것이 사생활 침해가 돼버린 선생님, 할 일을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동 인권이 되어버린 학생.
https://www.instagram.com/p/CvHc_kxyhrB/?igshid=MzRlODBiNWFlZA==
거짓말 같은 성적표의 가식적인 피드백이 왜 그렇게 재미가 없었는지, 이제 이해가 됐다.
요즘 선생님들은 참 편하겠다고, 별로 하는 일이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 하염없이 죄송해진다.
선생님다울수 없었던 선생님들의 사정을 이제야 알게 되어서 죄송하고 안타깝고.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학교에 기대하는 것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생님 다운 선생님을 원하고 있는 학부모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혼날일은 혼나고 지나가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는 사실을.
어렵고 힘든 일들도 해낼수 있는 끈기나 노력을 배우는 것이 학교였다는걸
기억하고 기대하고 있는 부모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선생님이 선생님으로
그렇게 교단에 서실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