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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Jun 25. 2020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엄청나게 먼옛날의이야기

사랑과 우정도 라떼는 말이야







그때는 우정이라는 게 영원할 줄로만 알았다. 스물몇 살이었고, 시간이 많았다. 술이나 마시고, 친구들이나 만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데 몰두했다. 뭔가 되고 싶었지만, 한량으로 남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쪼개서 알바를 했지만, 알바비는 쪼개지 않고 한 번에 쏜 적이 많았다.


연애가 잘 안돼서 그랬는지 몰라도 우정에 집중했다. 여자 친구와의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남자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친하게, 정말 친하게 지내던 한학 번 위의 선배와 같은 학번의 남자애들, 그리고 한학 번 아래의 남자애까지. 말이 잘 통하는 몇몇의 남자애들과 곧잘 어울려 다녔다. 단순하고 극단적인 게 재미있었다. 같이 술 마시고 시시껄렁한 이야기 하고 그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인류의 고민을 함께 나눴다. 그 고민들은 주로 취중이었기 때문에 쓸데없이 솔직했고 꽤 하찮았다. 연애, 누구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 그런 문제들이 항상 술자리의 대미를 장식했다. 1차는 고깃집에서 2차는 노래방에서 3차는 세계맥주집에서 병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휘청휘청 걸었다. 신촌 길바닥이 친근하던 시절이었다. 특별한 것 없이도 배꼽 빠지게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을 오락가락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너무 뻔한 레퍼토리지만 피해 갈 수 없는 지점이었다. 사랑과 우정 사이 같은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했고 그런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도 전에 눈빛이 먼저 달라져 있는 친구를 두고서 무척 심란했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 애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힙합에 빠져있었다. 그 애와 오랜 우정을 지켜가고 싶어서 나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제발 나를 좋아하지 말아 달라고. 너랑 영원히 우정을 함께 하고 싶다고. 내가 먼저 서른 살이 되면 네가 나를 삼십대라고 놀리고, 너도 이제 곧 있으면 서른이라고 반박하면서 싸우면서 그렇게 삼십사십 친하게 지내자고. 그런 말을 굉장히 장황하게 적었다. 이메일이 아니라 손편지였고 그 편지를 쥐어주고서 술 한잔 하다가 어색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신촌 길바닥을 걷다가 헤어졌던 날, 늦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몇 번인가 그렇게 좋아하네 마네, 좋아하지 말자고 잘 타이르고 합의를 하면 우리가 영원히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거라고 믿었다. 그때는 말이다. 말이 잘 통하고, 만나서 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는 그런 친구를 죽을때까지 곁에 두고 싶다는 것이 나의 논리였다. 이렇게 계속 좋아하면 안 되나? 꼭 서로 연애를 해야 하는 거야? 연애를 하면 그 끝은 서로 헤어지는 건데. 친구가 서로 헤어지는 경우는 없지 않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소리를 진지하게 떠들었다. 그 당시 내가 추구하던 영원한 우정이라는 게 웬만한 연애보다 힘든 거라는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됐다.


다 아는척했지만, 감정에 서툰 거였다. 어떤 여름밤에는 조금 두근거렸던 순간도 있었는데 그 두근거림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솔직하지 못했다. 감정에 정답이 없는 건데 정답에 집착했다. 얼만큼을 좋아해야 연애를 하는 건지 그런 기준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그 기준을 고집했다. 어설프고 어리석은 그 시절의 나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줘야 할까. 하긴, 마흔 살 어른이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일 애가 아니었지.


결혼을 하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남자 친구들은 뭔가 미묘한 마음 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고 막연히 단정지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 미묘한 감정선 때문이 아니라 먹고살고 애를 낳고 키우다 보면 그게 이성이든 동성이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소식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있을 때 즈음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그때 추억을 들춰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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