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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06. 2016

청춘이라면 달려야만 하는 건가요?

산티아고 까미노 위에서의 작지만 강한 외침 

 


 전화가 왔다. 중학교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전화. 수화기 넘어 친구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나 취업했어!” 

친구가 잘된 것이 너무나 기뻤음에도 난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마치 미소 짓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이내 한쪽 가슴이 답답해졌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축하의 입을 열려는 순간, 기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아, 꿈이었구나.’ 

정신을 차리려 비행기 창, 유리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씁쓸한 꿈이었다.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나는 비행기 안. 떠나온 게 옳은 선택이었는지를 계속해서 반문하고 있었다. 새로 바뀐다는 토익 유형을 공부해도 모자랄 것 같은 시간, 남은 학기를 마무리하고 졸업논문을 준비하기도 바쁜 시간, 취업을 위해 기업을 알아보고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기도 바쁜 시간, 대외활동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시간을 체감하며 하루하루를 불확실성 속에 지내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산티아고로 떠나면 안 된다는 머릿속 계산보다 정작 나를 움직이게 한건 마음속 강한 이끌림이었다. 그리고 그 강한 이끌림의 이유를 산티아고 까미노 길 위에서 마침내 찾았다.

 


 하루 25킬로 남짓한 거리, 하루 약 7시간 동안 하는 것이라고는 걷다가 먹고, 다시 걷다가 쉬고, 또다시 걷다가 자는 것. 이 단순한 행위를 약 35일간 반복하는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의 전부이다. 바빠 보일 것도, 바쁠 이유도 없는 산티아고 길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무척이나 바빴다. 몸만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있을 뿐 마음과 생각은 취업준비생(일명 취준생)의 모드로 한국에 있는 듯, 늘 불안했다. 같은 목적지로 향하지만 경쟁이 없는 까미노 길 위였지만 나의 조급한 발걸음이 나의 눈과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었다. 쉬어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애써 무시하고 걷고 또 걸었다. 도리어 스스로의 나약함을 채찍질했다. ‘이 정도도 버텨내지 못하는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은 당장의 쉼을 아껴 정해져 있는 목적지 마을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생장을 떠나 까미노를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어깨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배낭은 물론, 깃털처럼 가벼운 무언가가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볼링공을 짊어진 듯 근육들의 절규가 내 신음 소리로 바뀌었다. 10분 남짓한 짧은 휴식시간. 지금까지 배낭을 멘 채 의자에 앉아 가방을 살짝 걸쳐두던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가방을 던지듯 벗어버렸다. 그제야 까미노 길 위의 시원한 바람이 이내 등을 따라 어깨로 전해짐을 느꼈다. 나의 지친 어깨를 위로하는 듯했다. 어깨를 풀기 위해 그동안 들기도 힘겨웠던 팔을 하늘 높이 뻗으며 내가 걸어온 길을 처음으로 돌아보았다. 분명 지나온 길인데도 낯설었다.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앞만 보고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았던 여유는 이내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토닥이기 충분했다. 그 후 쉼의 중요성을 깨닫고 누릴 수 있게 된 나는 앉을 수 있는 곳에서 기대어 낮잠도 자고, 넓은 평지에선 대자로 누워 파란 하늘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것이 그동안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였는지 모른다. 당장의 진로와 학업, 스펙과 취업이라는 목표 아래 쉬어야 할 때를 몰라 앞으로 달리기만 했고, 까미노라는 인생길 위해서 쉬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쉬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걱정과 근심, 괴로움을 가득 안고 있었다. 쉼의 때는 목표를 이루고 난 다음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결국 쉼의 중요성을 어깨 통증과 맞바꿨을 때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내게 얽매여 있던 모든 가방,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온전한 쉼을 누리는 것. 그것도 나에겐 하나의 큰 훈련이었다.     



 ‘여행에서 잘 먹고, 잘 쉬었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또 힘내서 열심히 해자’는 생각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또 일상에서 힘이 들 때면 떠나고 싶다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게 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산티아고가 내게 준 선물은 꿀 맛 같은 삶의 휴식도, 잊지 못할 황홀한 풍경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였다. 바쁜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를 잊지 않고 스스로를 살피는 여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느리지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내 삶의 발걸음의 속도를 찾았고, 그 속도에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의 훈련을 받았으며, 속도를 내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준 까미노.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다고 하지만 돈과 소중한 내 청춘의 시간을 투자한 여행에서 인생 속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지혜를 경험을 통해 얻었으니 취준생으로서, 아니 이 시대 청춘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배운 셈이 아닐까? 지금까지 잘해왔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우리 다 잘 될 거라고. 조급해하지 말자는 까미노 길 위에서의 작지만 강한 외침이 지금도 각자의 인생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청춘들의 마음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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