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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obby Sep 26. 2024

공노비는 너무 추워요

공무원 사무실 냉방 난방 조도 온수 제한

공노비 생활을 하면서, 정말 강렬하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때는 2021년 12월입니다.


한 겨울, 공노비 사무실은 난방을 거의 해주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난방 기준이 18도였고, 재작년에는 그 기준이 무려 17도까지 내려갔었죠. 한 겨울에도 사무실 온도를 17~18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건, 야근을 할 때 난방을 해주지 않습니다. 공노비들은 살기 위해서 개인용 난방기기를 사용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화재의 위험 때문에 금지하고, 난방기기를 보유한 것을 걸리면 징계를 줍니다.


연말에 몰려있는 업무를 처리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칼같이 사무실 난방기기가 멈추면서 차가운 정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추위가 발끝과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갔습니다. 빨리 일을 끝내고 가고 싶은데, 점점 손가락이 얼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사비로 산 핫팩에 손을 녹이다가, 일하다가, 녹이다가, 일하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추위에 발도 마비될 것 같아서 몰래 숨겨둔 개인 난방기기를 꺼내서 발을 비벼가며 버텼습니다.


저녁 8시가 되었습니다. 손이 얼어서 더 이상 타이핑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근 수당이고 뭐고, 집에 가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던 파일을 저장하고 초과근무시간을 찍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찍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12월이라 과 내 초과근무 총량이 다 소진되어, 초과근무를 해도 쥐꼬리만 한 야근 수당 시급 12,000원조차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타가 심하게 왔습니다.


추워 죽겠는데 정말 시답지 않은 일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하고, 쥐꼬리만 한 야근 수당이라도 받아야지 하면서 내가 산 핫팩에 손 녹여가며 일하는데 그마저도 못 받고, 결국 집에까지 일을 가져가서 하는 꼴이라니... 서러워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게 맞나..'


어른들이 공부 안 하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너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


나름 명문대 나와서 그 당시 합격하기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고 일하는 건데, 왜 나는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고 있을까...


공무원에게는 난방 제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너지 절감이라는 명목하에 냉방 제한, 온수 제한, 심지어 '조도 제한'도 있습니다. 공무원으로 처음 입사해서 항상 이상하게 생각해 왔던 게 있습니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두 개씩 꽂혀있어야 할 형광등이 하나만 꽂혀있었습니다. 간혹 가다가 두 개씩 꽂혀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확실히 밝기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나중에 산업부에서 일하는 형이 말해 줘서 알았습니다. 에너지 절약한다며 사무실 '조도 제한'도 있었고, 한 때 형광등을 하나씩 다 수거해 갔다고... 정말 소름 돋았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얘네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같은 생체 실험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더 어이가 없는 부분은, 이러한 제한이 오로지 '행정부'에만 적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위에 공노비의 주인님이 계시는 곳과, 국회, 법원, 헌재 등은 해당사항이 없는 것입니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면, 적어도 당연히 공노비들의 주인집과 국민들의 대표가 있는 국회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요.


냉난방, 온수, 조도 등은 공무원의 건강과 직결됩니다. 17~18도가 사람이 내복을 입고 버틸 수 있다며 홍보하는 걸 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개인 건강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적정 온도는 다릅니다. 같은 사무실 공간 안에서도 더 추운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짧은 지식이지만 지속적인 추위는, 우리 몸을 긴장하게 만들고, 면역력을 저하시킵니다. 몸을 따뜻하게 하지 않으면 병에 걸리기 매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낮은 조도는 공무원의 시력을 저하시킬 수 있고, 겨울철 냉수는 양치질과 손 씻기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대체 왜 이렇게 극한까지 끌고 들어갈까요. 그저 관성적인, 탁상행정에서 나온 목표 달성을 위해서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심지어 '에너지 절약'이라는 정의로운 목표도,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힘들 것입니다. 공무원도 사람인지라, 정말 '살기 위해서' 개인 냉난방기기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합니다. 수많은 개인의 개별적인 냉난방 기기 사용이 중앙냉난방보다 더 비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최근 공무원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퇴사를 방지하고자, 성과위주의 보상이니 초고속 승진이니 이런 쓸모없는, 유명무실한 정책이 나오곤 하는데요. 제발 현실적인 부분부터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인사처에 말한다면 '그건 산자부 소관이라...'라고 하겠지만요. 공무원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퇴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5대 욕구 중 가장 중요한 '생리, 안전의 욕구'를 제일 먼저 채워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근무환경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공무원에게 국가를 위한 "애국심"과 국민을 위한 "봉사심"만을 강요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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