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서 사랑스러운
초중고 합쳐서 2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학기 초에는 진짜 누가 누구인지 너무 외우기 힘들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없으면 이름 외우기가 너무 힘든데...
그래서 대체로 먼저 다가와서 말 걸어준 아이들을 먼저 기억하게 되었던 거 같아.
너와의 첫 기억은 “응? 왜지?” 였어.
점심밥을 다 먹고 백 야드에서 놀다가, 오후 수업 시간이 다 되었으니 들어가자는 초등 선생님의 외침을 듣더니
너는 내 손을 붙잡고
“이따 리세스 시간에도 꼭 나오세요!”
라고 했거든.
별로 안 친했는데, 왜 꼭 나오라고 그렇게 강조하고 약속까지 했을까 궁금 했어.
솔직히 그때까지는 이름도 학년도 정확히 못 외웠을 때라,
얼른 보건실에 들어가서 네가 누구인지 책상 위에 붙여 놓은 너희들 사진첩을 확인했어.
리세스 시간에 나갔더니,
너는 내게 간식 두 개를 내밀며 둘 중 하나를 골라 가지라고 하는 거야.
뭘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냥 네가 챙겨 온 간식 나에게 나눠 주고 싶어서 이따 꼭 만나자는 약속을 했던 너는 정말 사랑스럽더라!
며칠 전,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너는
나에게 4월 29일이 자기 생일이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더라고.
전교생의 생일을 다 챙겨주는 건 불가능 하지만, 먼저 자기 생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준 네 생일은 뭐라도 줘야 하나 싶어, (물론, 선물을 챙길까 하는 나의 고민은 너에게는 비밀로 남긴 채) 뭘 제일 좋아하냐 물으니
“바나나요!”라고 대답했지.
세상에.
바나나라니.
아니 뭐, 바나나가 어떻다는 게 아니라
기껏 생일 자랑 해 놓고
제일 좋아하는 게 바나나라는 네가 너무 신기해서
(나라면 그동안 갖고 싶었던걸 다 말했을지도..)
다른 학생 생일은 못 챙겨도 너의 생일은 챙겨주자 다짐했지.
출근길 편의점에서 바나나를 사 와서
책상 앞에 앉아 나름 생일 선물이니 여러 가지 마스킹 테이프로 바나나를 예쁘게 꾸미다가 든 생각인데
너의 솔직함이 너무 사랑스럽더라
솔직한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표현했는데
그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너의 못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솔직함이 너의 사랑스러움을 드러내 주었다는 게 적잖은 충격이었어.
내가 너처럼 솔직 했어도 사랑스러웠을까 싶어서...
나의 솔직함으로 인해
내 진심이 누군가에게 드러났을 때
그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어.
너의 솔직함으로 인해
드러난 너의 진심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것처럼...^^
(커버 사진: Photo by Mike Dorn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