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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04. 2021

생일 선물 “바나나”

솔직해서 사랑스러운


초중고 합쳐서 2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학기 초에는 진짜 누가 누구인지 너무 외우기 힘들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없으면 이름 외우기가 너무 힘든데...

그래서 대체로 먼저 다가와서 말 걸어준 아이들을 먼저 기억하게 되었던 거 같아.


너와의 첫 기억은 “응? 왜지?” 였어.

점심밥을 다 먹고 백 야드에서 놀다가, 오후 수업 시간이 다 되었으니 들어가자는 초등 선생님의 외침을 듣더니

너는 내 손을 붙잡고

“이따 리세스 시간에도 꼭 나오세요!”

라고 했거든.

별로 안 친했는데, 왜 꼭 나오라고 그렇게 강조하고 약속까지 했을까 궁금 했어.


솔직히 그때까지는 이름도 학년도 정확히 못 외웠을 때라,

얼른 보건실에 들어가서 네가 누구인지 책상 위에 붙여 놓은 너희들 사진첩을 확인했어.


리세스 시간에 나갔더니,

너는 내게 간식 두 개를 내밀며 둘 중 하나를 골라 가지라고 하는 거야.


뭘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냥 네가 챙겨 온 간식 나에게 나눠 주고 싶어서 이따 꼭 만나자는 약속을 했던 너는 정말 사랑스럽더라!


캔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네가 준 망고 캔디는 정말 맛있었어 (Photo by Carl Raw on Unplash)


며칠 전,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너는

나에게 4월 29일이 자기 생일이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더라고.

전교생의 생일을 다 챙겨주는 건 불가능 하지만, 먼저 자기 생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준 네 생일은 뭐라도 줘야 하나 싶어, (물론, 선물을 챙길까 하는 나의 고민은 너에게는 비밀로 남긴 채) 뭘 제일 좋아하냐 물으니

“바나나요!”라고 대답했지.

세상에.

바나나라니.


아니 뭐, 바나나가 어떻다는 게 아니라

기껏 생일 자랑 해 놓고

제일 좋아하는 게 바나나라는 네가 너무 신기해서

(나라면 그동안 갖고 싶었던걸 다 말했을지도..)

다른 학생 생일은 못 챙겨도 너의 생일은 챙겨주자 다짐했지.


출근길 편의점에서 바나나를 사 와서

책상 앞에 앉아 나름 생일 선물이니 여러 가지 마스킹 테이프로 바나나를 예쁘게 꾸미다가 든 생각인데

너의 솔직함이 너무 사랑스럽더라

솔직한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표현했는데

그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너의 못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솔직함이 너의 사랑스러움을 드러내 주었다는 게 적잖은 충격이었어.

내가 너처럼 솔직 했어도 사랑스러웠을까 싶어서...


나의 솔직함으로 인해

내 진심이 누군가에게 드러났을 때

그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어.

너의 솔직함으로 인해

드러난 너의 진심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것처럼...^^


Photo by Senjuti Kundu on Unsplash

(커버 사진: Photo by Mike Dorn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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