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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농 후추 Jul 26. 2023

마음이 아픈 사람들

나 또한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이전의 나라면 어쩌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극도로 꺼려했을 공간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 또한 평범한 그들 중 한 명임을 자각하고 인지하고 있다.


나는 약 4년간 한 방문미술 브랜드에서 일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적성에도 잘 맞고 재미있었지만, 내가 큰 마음의 병을 얻은 곳은 그곳이었음을 지금은 짐작하고 있다.


시간이 꽤 지난 이제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곳의 지사장이 나에게 어떠한 말과 어떠한 행동들을 해서 내가 병을 얻었는지.

슬프게도 일을 그만둔 지 꽤 지난 지금도 그때 얻은 병이 쉬이 낫지 않아 삶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기 화를 못 이겨 몇 시간 째 전화통화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툭 전화를 마음대로 끊어버리는 것은 그저 일상이었고, 나는 마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았다.


마지막에 내가 이제 일을 안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지사장에게 화를 냈다.


경력증명서와 퇴직증명서를 떼 줄 수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그래도 어찌어찌 참아왔지만 이것은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그거 떼주면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설명에 나도 부연설명을 했으나 어이없는 반응이었다.


결국 나중에는 퇴직증명서를 우여곡절 끝에 받았다.


항상 지사장은 이런 식이었다.

본인 말이 다 맞는 사람.


시간이 지나서야 이야기하지만 그 직장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아이들과 나를 믿고 지지해 주시는 학부모님들이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그 시간들..


모든 것을 이야기 하긴 어렵지만 정말 인고의 시간이었다.







전혀 없던 불안장애와 발표불안장애가 생긴 것은 내게는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 서서 하는 발표는 내게 제일 자신 있고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여느 때처럼 잔소리 같은 지사장의 말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심장이 조여왔다.

병적으로 심장이 뛰어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 이후로 발표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시선이 무서웠고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었다.


사실 지금도 그 병과 싸우고 있다.

나는 조용한 관종이라 관심이 아주 싫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싫어졌다는 것은 내게 큰 변화였다.


불안하다고 해서 발표를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여전히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내게 희망이자 사랑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는 내가 그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나도 사실 그 애들한테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들은 때로는 어른 같다.

사려 깊고 배려심이 있다.


아이들을 마주할 때의 나는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직장이나 다른 장소에서 어른을 대할 때와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로 인해 진짜 나의 모습을 느낀다.

그게 나에게는 편하다.


아이들을 투명하다.

나는 그런 유리구슬 같은 아이들을 좋아한다.






요즘도 미술을 통해, 또는 다른 것들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어른에게 받은 상처를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을 통해 치유받는다.


나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어제는 꽤 오랜 시간 나에게 미술을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 인형을 선물했다.


엄청 비싼 선물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값졌다.


오늘은 이연 작가님의 <매일을 헤엄치는 법>을 오디오북으로 잠깐 들었다.

들으면서 많은 위로와 힐링이 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 부문에서도 많은 공감을 했다.


전자책이 있었지만, 이 책은 반드시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회사에 속해있지 않아서 지사장의 직장 내 괴롭힘은 없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똑같다.


여전히 잠에서 깨기 어려운 날들도 많지만 이제는 미라클 모닝도 거뜬한 날들이 더 많다.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를 때는 일찍 일어남을 택한다.


일찍 일어나서 뭐라도 복작복작한다.

좋아하는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아주 복작복작 열심히 한다.


그러고 나면 그 의문에서 한 걸음 떨어뜨려서 나를 볼 수가 있게 된다.


너는 아주 잘 살고 있다는 대답과 그래도 그리 애쓸 필요 없다는 토닥임 같은 마음이 같이 든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다 비슷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처럼 때때로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들 나름대로 본인의 삶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인간이란 종족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다.


인류애가 소멸되는 사건들도 종종 있지만 그걸로 인해 마냥 인생에서 좌절하지는 않기를.

오늘의 하루도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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