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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농 후추 Jan 19. 2024

꿈꾸는 현실주의자

파워 J의 이 놈의 미리미리 병



나는 미리미리 병이 있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도 미리 1-2시간 전에는 약속 장소 근처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고, 출근도 최소 30분 전에 하는 편이다. 시간이 좀 여유로울 때는 1시간-1시간 반 정도 일찍 가 있기도 하다.


사실 이제는 내 소유의 자동차가 있어서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계산만 잘하면 그렇게 일찍 출발하지 않아도 될텐데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어제는 어떤 책을 읽고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영어, 이번에는 끝까지 가봅시다> 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 매번 새해면 영어공부를 계획에서 빼놓지 않고 번번히 실패하는 나를 새삼 되돌아 보게 되었다.


저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시점에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도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놀라운 분이다.


나 또한 더 넓은 세상에 나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번뜩 들었고, 평소에도 미련이 좀 있었던 미술치료학과의 대학원 정보를 찾아보았다.


문득 고민이 들었다.


'서울에 다시 가면 어떨까?'


나는 서울 토박이인데 이제 원주에 이사온지는 2년쯤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적응이 참 어려웠다.

서울대비 밤이나 새벽대에도 사람이 별로 없기에(?) 그 시간에는 편의점에 가면 위험한줄 알고 바깥에 나가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서울에 가기로 나름대로 고민을 해보고 1-2년 뒤에 있을 먼 미래의 계획을 세워보다가 남자친구한테 이 고민을 이야기 했다.


"나 고민이 있어."


고민을 들은 남자친구는 F지만 대문자 T처럼 뼈 때리는 조언을 해주었다.


"서울은 일자리가 원주보단 많더라도, 그만큼 경쟁도 더 심하고 치열할텐데 지금보다 더 높은 grade를 원하면서 지금도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 생각하는데.. 대학원 다니면서 직장을 다닌다는게 변수도 있을 수 있을텐데 단 한 번이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어?"


물론 내가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운한 점도 좀 있었다.


이전에 이미 서울에서 직장을 1주일에 주 6번, 하루 8시간-9시간 영업, 판매직 일을 서서 하면서 대학원을 성공적으로 마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조언은 뭔가 나를 응원해주지 않는 느낌도 함께 든 것은 사실이다.


그치만 뒤이어 하는 남자친구의 조언에 마음이 좀 풀렸다.


"어머님도 지금 일 하시는데 많이 몸 힘들어하시잖아. 원래 부모마음은 다 금전적으로든 뭐든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일텐데 못 하시면 많이 힘드실거야. 그리고 너가 이제 나이도 있으니, 그때쯤이면 어머님도 너가 좀 더 업무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게 더 마음이 편하시지 않을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떤 한 사건으로 내가 남자친구를 '분노장 OOO'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현실적인 모습에 또 반한 것도 사실이다. (분노장은 분노조절장애의 약자로, 남자친구가 별 것도 아닌 일로 불 같이 화낸 적이 있었던 이후로 내가 남자친구를 귀엽고 장난스레 부르는 애칭 아닌 애칭이다. 비하나 하대의 의미는 전혀 없다.)


나 또한 나름대로 현실주의자 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보고 꿈만 꾸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새삼 또 느꼈다.


남자친구 말대로 독자 각자가 처해진 상황이 다 다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책을 읽고 취득할 것은 취득해 배우고 아닌 것은 그냥 버리면 된다.


엄마도 내 고민을 듣더니 이야기 했다.


지역을 왔다갔다 하다가 오히려 이도저도 안될 수 있다고.


대문자 T 같은 주변인들의 성화에 나름대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 또한 T가 어느정도 섞인 F라고 생각했지만 극 T들에겐 역시 현실감각이 좀 밀리는 모양이다.

(내 남자친구도 사실 F지만 가끔 보면 정말로 T같다.)


나는 꿈을 애써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금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좀 여유가 된다면 또 대학원을 그때가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서울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나오면서 비싼 등록금 대비 학자금 대출이 없다는 것만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귀염둥이 캐스퍼의 차 할부값 내기는 현재 많이 벅차지는 않지만, 거기에 혹여 학자금 대출까지 생긴다면 버거울지 모른다.


나에게 진심어린 걱정과 조언을 해주는 주변인들이 있어 감사하다.


이렇게 현실로 나는 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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