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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Jan 30. 2022

연우 엄마

슬의생 시즌 투(2)


 ※※※ 스포일러 주의 ※※※

     

#연우 엄마 (1회)     


특별한 용건 없이 병원을 자주 찾는 연우 엄마.

율제병원 사람들은 연우 엄마가 왜 자꾸 찾아오는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장겨울 선생님 계신가요?"     


연우 엄마가 찾는 장 선생은 소아병동에서 늘 바빴고, 연우 엄마는 짧게라도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 얼굴을 보고 다시 발걸음을 돌립니다.  

    

"친구 아이 돌잔치 다녀왔어요.

 우리 연우는 하늘나라에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투(2)'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처음엔 연우 엄마가 혹시 소송을 준비하나 싶었습니다.

아이가 하늘나라에 간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이것저것 선생님들께 선물해 나중에 청탁 금지법으로 문제를 삼으려 하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장겨울 선생도 시청자만큼이나 연우 엄마의 생각이 궁금했는지, 담당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몇 년간 우리 병원에서 생활하다 하늘로 간 아이 어머니가 자꾸 병원에 찾아오시는데, 왜 오시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얘길 하고 싶어서 오시는 건지도..."


교수는 말합니다.     


"연우 엄마는 연우 얘기하고 싶어서 오시는 거야. 연우가 이 세상에 살다 갔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연우 얘기를 하고 싶어서.

 다음에 오시면 따뜻한 커피라도 사드리고, 연우 얘기 들어드려."

     

교수의 설명에 연우 엄마에 대한 오해는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장겨울 선생과 연우 엄마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 장면에서, 연우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오면 사람들이 저를 '연우엄마'라고 불러서 좋았아요. 밖에선 제가 연우 엄마인지 모르지만, 선생님도 병원 식구들도 모두 연우를 기억해주고

연우 엄마라고 불러줘서 좋았어요."

     

잠시나마 연우 엄마를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하며 바라봤던 게 참 미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위험 산모실(MFICU)     


2014년 가을, 제가 입원했던 신촌 세브란스 고위험 산모실(MFICU)엔 연우 엄마처럼 아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엄마들이 있었습니다.     


그 큰 병원에 고위험 산모실 병상은 겨우 4개. 매 시간 단위로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체크하고 챙기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 뱃속에 아이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산모의 건강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두 생명을 모두 건강하게 살려내기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     


구정 연휴, 모처럼 집에서 여유를 갖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투(2)를 보면서, 병원에 배경이 된 계절적 배경이나 연우 엄마 스토리에서 참 많은 공감이 됐습니다.     


율제병원 MFICU에 입원한 임신 19주 고위험 산모.     


A교수는 산모나 아이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둘 다 위험해질 수 있으니 아이를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산모는 불임치료를 통해 어렵게 만난 아이라며 담당 교수를 바꿔달라고 말합니다.     


이 산모를 새로 맡게 된 B교수는 말합니다.     

"아이의 태동도 활발하고, 임신 23주까지는 뱃속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시면 폐 성숙 주사도 맞을 수 있고..."     


같은 산모, 같은 태아, 같은 상황을 놓고 A교수는 "뱃속의 아이 생명을 포기하라"고 말하는데, B교수는 마른 체격의 산모니까 태동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뱃속의 아이도 의지를 계속 보이고 있다면서 두 사람의 생명을 모두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합니다.

     

사실 MFICU에서 수많은 산모와 뱃속의 아이를 만나는 의사들은  A교수 같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더 높은 쪽을 택하며 산모의 안전이라도 선택하는 게 더 현명한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모와 태아의 의지에 더

무게를 두고, 낮은 확률이지만 그 가능성을 살려내기 위해 힘쓰는 B교수를 보면서, '이런 선생님들이 더 많아져야 할 텐데...'싶었습니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기자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은 아니지만 매일 사건사고를 접하고, 발생 사건을 '얘기가 된다' '얘기가 안 된다'로 판단합니다. 사회부에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자가 현장을 직접 가느냐 안 가느냐의 중요한 판단 기준 중 하나가 인명피해가 얼마나 큰지 여부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 선생님들이 산모나 환자의 기록을 보고 가능성을 판단하듯, 기자들도 소방서나 경찰이

밝힌 인명피해 상황 등을 보며 1차적으로 기사 가치 여부를 판단합니다.  

   

제가 출입하는 법원, 검찰의 경우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어가느냐, 아니면 불구속 상태로 넘어가느냐에 따라 중요도가 한번 나뉘고, 재판도 1심 판결이 2심에서 어떻게 유지되는지, 대법원에서 원심이 깨져 다시 재판하라며 하급심으로 돌려보내는 사건인지 여부에 따라 기사의 중요도가 나뉩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MFICU에서 산모의 상태를 보며 아이의 생명을 포기하라 말했던 A교수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계적으로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고, 접근하는 것은 아닌 가 두렵기도 합니다.

     

매일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데 의사나 간호사의 입장에선 '수많은 환자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그 환자의 생명은 세상에 유일한, 단 하나의 소중한 생명인데,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 문제 해결 능력이 확연히 달라지니까요.




#감정노동자들     


"전화를 받는 상담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감정노동자분들을 위해 상담 내용이 녹음되면서 사회적 시스템이 하나 둘 달라지는 것을 실감합니다.

어쩌면 매일 병원에서 환자를 상대하는 의사 선생님도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 외에 감정노동이 필요하고, 기자도 감정노동이 필요한 직업이란 생각이 듭니다.

늘 긴장된 상태로 사람을 마주해야 하고, 짧은 시간 안에 원인을 분석해야 하며, 가치 판단에 따라 기사를 살릴지, 죽일지(킬) 할지 정하니까요.     


그런데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 참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시간 빈곤'에 허덕이며,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어쩌면 그날 발생한 일 중 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기사를 생산해내고, 그 기사로 매일 누군가를 평가하며 또 평가를 받는 직업이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 기자들의 습관처럼 "얘기된다" "얘기 안 된다"로 사람을 평가하고 만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장겨울 선생님이 연우 엄마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넸던 그 마음 같이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는 '기자'가 되고 싶고, 그런 기자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는 작은 바람?...     


2022년 새해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를 마주하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과거의 경험을 기준 삼아 머리로 판단하지 않고, 마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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