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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Aug 06. 2022

“어딜 만져요!”

기자의 <질문할 권리>




지난 1일 오후 1시 30분 국회 본청.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정 정책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박 장관을 기다렸습니다.      


취재 수첩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란과 박 장관의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한 질문을 적고, 무엇을 근거로 초등학생 입학 연령을 앞당기려 하는지, 어린아이들이 일찍 사교육 시장에 노출될 위험은 없는지, 돌봄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며 예산은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지, 논문 표절 논란과 관련된 거짓 해명들에 대한 질문들을 메모했습니다.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회의장까지 이동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 1~2분.


제한된 시간 안에 이 질문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혹시나 박 장관이 입을 굳게 다물고 회의장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하며 장관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세 사람이 수첩과 파일 폴더를 들고 동선 연습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올라오고, 계단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를 반복하며 누군가를 의전하려고 긴장하며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도체 산업 관련 당정협의고 8개 정부부처 장차관이 함께 모이는 자리니 어느 부처인지 몰라도 참 타이트하게 의전을 준비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잠시 후 여당 지도부와 여러 부처 장차관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는데, 2층 엘리베이터 앞 세 사람이

갑자기 더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정비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1시 50분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박순애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1일 박순애 교육부 장관



"안녕하십니까, 저는 ooo에서 나온 ooo 기자입니다."


현장에 질문하는 기자는 분명 저뿐이었는데, 옆에 있던 한 남성이 갑자기 제 팔을 꽉 잡더니

손이 점점 팔과 어깨 몸 위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난 1일 국회 본청에서 박순애 교육부 장관에게 질문하다 제지당하는 필자



"초등학생 입학 연령을 5세로 낮추신다고 하셨는데..."

    

질문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팔을 잡던 손은 등을 잡고, 팔을 당기고, 기자가 장관 옆으로 걸을 수 없도록 계속 물리력을 행사했습니다.  마치 뼈를 누르는 것 같았고, 낯선 남성의 손이 내 몸을 만지는 게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속으론 '지금 어딜 만지세요!' 소리치고 싶었지만, 장관이 이동하는 1~2분 안에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어야 한다는 미션, 그 생각 하나로 행여나 질문을 놓칠까 봐 꾹 참고 계속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돌봄 교육의 현실이나, 학력격차를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서도 해명과 다른 부분이..."


장관이 국회 회의장 앞에 다다랐을 무렵엔 갑자기 우측에 있던 다른 교육부 직원들까지 나서서  양쪽에서 팔과 어깨를 잡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마치 범죄자를 연행해가듯 그렇게 제압을 했습니다.      


지난 1일 국회 본청에서 박순애 교육부 장관에게 질문하다 공무원들에게 제지 당하는 기자



박 장관은 끝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회의장으로 들어가 여당 관계자들과 환하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행사 사진을 찍었습니다.     


약 3분 가까이 촬영된 회사 영상에 보면, 중간에 복도 이동 장면이 일부 촬영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교육부 직원 여러 명으로부터 저지를 당했을 때 제 표정을 보면, 얼마나 당황해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회의 시작 전, 교육부 공무원 자리로 가서 통성명을 하고, 기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제 신분을 다시 한번 밝혔고 해당 공무원에게 소속은 어디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영상 촬영본에 당시 상황이 녹화되어있고, 기자가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은 상황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기자를 제압한 경위가 무엇인지도 물었습니다. 해당 직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대변인실 통해서 말씀하세요. 오늘 국회에 부총리님을 모시고 온 직원들, 대변인실에 명단 있을 겁니다."

     

잠시 후 회의가 시작됐고, 회의 내용을 기록하는 내내 왼쪽 팔과 오른쪽 팔, 어깨가 아팠습니다. 회사에 교육부 직원들의 과잉대응에 대해 보고를 했고, 대변인실을 통해 해당 공무원들에게 사과를 요청했습니다. 만약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이 사안을 공론화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진단서부터 끊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기자 생활 17년 동안 취재 과정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질문을 방해한 적은 없었는데 싶고,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누가, 왜,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장관 경호원도 아니고, 교육부 공무원들인데, 기자의 팔을 잡고 몸을 꺾으면서까지 질문을 막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영상을 통해 확인한 건 제 질문을 제재했던 사람이 모두 그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동선 연습을 하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올라오고, 이동 거리 시간을 체크했던 세 사람이었단 겁니다.

    

며칠 뒤 세 사람 중 막내 직원에게 먼저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기자님의 팔을 잡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죄송하고요. 그날 워낙 정신이 없고 경황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장관님 가시는 길이랑 시간, 이런 것들 때문에 취재에 불편을 드린 점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다른 직원들 확인을 위해 혹시 영상을 보내주실 보내주실 수 있나요?. "

     

분명 처음부터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세 사람이라고 말했고, 그분들 얼굴까지 찍힌 사진을 보냈는데 영상

원본을 보내달라고 하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정말 미안한 것은 맞는지, 혹시 막내 공무원과 함께 온 고위 공무원들이 기자를 통해 영상 받아오라고 시켰는지 되물었습니다.     


"정말 죄송한 거 맞고요. 그 자리에서 사실은 저희도 부총리님 입장 시간 때문에 취재에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저는 그 당시에 기자님이 그렇게 많이 물리적으로 불편을 겪으셨는지 몰랐는데 주신 사진을 보니까... (박순애) 부총리님 모시고 하는 행사 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건 정말 죄송한데요..."

     

해당 직원분께 다른, 특정된 직원 두 명의 이름과 직함을 물었더니 역시나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날 국회를 출입한 교육부 직원들 인적사항을 파악했고, 직원 여럿이 기자에게 물리력을 행사한 건 특수폭행에 해당돼 진단서 없이도 처벌 가능하다는 자문도 받았습니다.     


위 내용을 막내 공무원께 전달했더니, 세 사람 중 윗분 두 사람이 연달아 전화를 했습니다.  




가장 먼저 물리력을 행사하신 고위 공무원분께 물었습니다.     


"왜 그러셨어요? 저는 질문만 했는데, 질문을 왜 막으시고, 제 팔을 잡고 어깨를 잡고 꺾으시고..

박순애 장관님이 시키셨나요? 왜 그러셨나요?"

     

"도어 스태핑(약식 기자회견)이 예정되어있지 않았는데, 기자님이 갑자기 질문을 하시니까..."

     

"제가 17년 동안 기자 생활하면서 이렇게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기자에게 물리력을 행하사시는 건 처음 봤습니다. 가끔 취재 과정에서 경호원들에게 제지를 당하긴 해도, 세 분은 공무원이시잖아요. 기자도 사람입니다. 혹시 자녀분 있으세요? 자녀분께서 밖에 나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저와 같은 일을 겪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금 어떤 심정이실지. 저도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형인데요. 내 자식이 밖에서 이런 일 겪으면 못 참을 것 같습니다. 기자도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고요. 기자는 국민을 대표해서 질문하라고 있는 직업입니다. 개인적인 호기심에 장관을 기다리고 묻는 게 아니잖습니까. 기자의 질문할 권리를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그날, 그 상황에서 나는 왜 말을 못 했을까.     


"아파요!"


"어딜 만지시는 거예요!"


"팔 잡고 뼈까지 찍어 누르시면 어떻게 해요."


"옷이 벗겨지잖아요."

    

아마 저는 그날 그 상황에서 오로지 취재 결과물에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국민들이 이렇게 답답해하는데, 학부형인 나도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춰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이런 답답함을, 장관의 입을 통해 답변을 듣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행사 며칠 뒤 박순애 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 이동하다 신발이 벗겨진 기사가 나오고, 지금도 교육부 장관 관련 비판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일을 브런치에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동료 기자들이 있다면, 그 기자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땐 질문보다 자신을 먼저 보호하라는 얘길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지금도 제 오른팔 엔 시퍼런 멍자국이 있습니다.


마치 훈장처럼 시퍼런 멍이 누렇게 빠지고 있는데요. 팔을 보면 그날 겪은 황당한 일들이 떠오릅니다.

     

질문하다 팔 꺾이고 다친 게 뭐 자랑이라고...

이런 얘길 브런치에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지만, 그래도 기록의 힘을 믿기에, 기록을 남깁니다.




기자는 취재 대상이 부총리든 대통령이든, 대통령 할아버지든 누구를 만나도 상대방과 대등한 위치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질문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기자의 질문을 막을 권리는, 누구도 없습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에게 질문하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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