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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Jan 22. 2019

카우보이의 노래

디지털 시대의 서부 영화

제1장 - 버스터 스크럭스의 노래 (이 에피소드의 제목이 영화 영문 원제이기도 하다)


<파고>, <위대한 레보스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의 감독이며 칸 영화제가 가장 사랑하는 코엔 형제의 최근작으로, 올해 9월 열린 제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이다. 제임스 프랭코, 리암 니슨 등 유명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이런 대단한 영화를 처음 들어보았다면, 그건 이 영화를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이야기 전에 아무래도 넷플릭스를 먼저 논해야 할 것 같다. 한 달 1만 원 정도의 요금으로 양질의 미드와 영화를 무제한 볼 수 있는 넷플릭스는 영화계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저명한 감독들과의 작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기존 영화계와 극장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를 “영화”로 인정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란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하고 극장과 동시에, 혹은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에서만 상영되는 영화들이다. 2017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인 <옥자>와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문제가 되었다. 당시 심사위원장인 알모도바르가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줄 순 없다”며 넷플릭스 무비의 수상에 대한 반대 성명을 냈고, 넷플릭스는 더 이상 칸 영화제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영화제가 넷플릭스 무비에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는 이 플랫폼이 제작한 영화 다수에 황금사자상 (<로마>), 각본상 (<카우보이의 노래>) 등 영예를 주었다. 물론 일부 영화인 단체들은 넷플릭스 친화적인 베니스에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으니 넷플릭스 무비 논란은 현재 진행 중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카우보이의 노래>는 웨스턴 영화의 형식에 슬랩스틱 코미디,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장르적 성격을 뒤섞었다. 이 영화는 모두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6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원제에 걸맞게 3개 에피소드들의 주인공들이 노래하며 등장하고, 4명의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코엔 형제 특유의 어두운 유머 감각이 깊게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3, 4, 5 번째의 세 에피소드들이 인상 깊었다.


제3장 <밥줄>은 떠돌이 극단 단장 (리암 니슨)과 그의 유일한 단원인 사지가 없는 장애인 배우(해리 멜링)의 이야기이다. 리암 니슨의 존재감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해리 멜링의 연기는 진정 발군이었다. 팔다리 없이 얼굴 표정과 낭독만으로 영국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오지만디아스>, 창세기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템페스트>를 읊고,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선언으로 마무리하는 그의 1인극은 마치 대서사극을 보는 것 같다. 어디서 본 듯한 그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못된 뚱뚱보 사촌 두들리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제 3장 <밥줄> - 장애인 배우로 등장하는 해리포터의 심술쟁이 사촌 두들리


제4장 <금빛 협곡>은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 가장 희망적이다. 노래를 부르며 금광을 찾는 늙은 채굴꾼(톰 웨이츠)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 중 가장 정직하고 성실한 인물이다. 훔친 알을 어미 부엉이 때문에 둥지에 돌려놓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기도 하다. 코엔 형제의 염세적인 세계관에 지칠 때쯤 (모든 주인공이 죽어나가는 3개의 에피소드를 본 후) 아름다운 서부의 자연경관과 함께 처음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보며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제4장 <금빛 협곡>

각 에피소드들의 순서가 참으로 절묘했다. 제5장 <곤경에 빠진 아가씨>에서는 늙은 채굴꾼에 이어 역시나 응원하고 싶은 사랑스러운 아가씨와 그를 구해줄 멋진 남자가 등장한다. 이 둘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지만 앞선 이야기들 속 주인공들의 엇갈린 운명을 본 이후라 끝을 예상하기 어렵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호의가 상대방이 겪게 되는 비극의 원인이 되는 기구한 운명의 장난은 이 이야기를 더 안타깝게 만든다. 이미 코엔 형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에서 완벽한 非 해피엔딩을 보여준 바 있다. 덕분에 끝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제5장 <곤경에 빠진 아가씨>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대단한 영화이다. 기존의 영화 제작 시스템을 통해서는 투자받지 못할 이런 영화들이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자본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은 긍정적인 사인이다. <카우보이의 노래>를 감독한 코엔 형제는 처음부터 이 영화를 기존 할리우드 시스템을 통해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영화인들은 디지털로 인한 영화 산업의 붕괴를 걱정한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기존 미디어를 붕괴시킨 사례는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이 콘텐츠 (이야기) 꾼들에게는 더 큰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영화의 팬으로서 더 좋은, 다양한 콘텐츠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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