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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젹 Jun 09. 2024

Avril En France

운수좋은날_1

19, Avril, 2024

Paris, Place Jean-Pierre Levy

그지 같은 날씨였다. 오랑쥬리에 가려고 하던 너는 급한 허기를 지우기 위해 1,2유로짜리 크로와상을 샀다. 우적우적 먹으면서 빠리의 거릴 걷는 네 기분은 크로아상 맛에 달려 있었는데, 결론은 실패였다.

너는 엄마에게 식칼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집에서 요리를 도와줄 때 봤던 엄마의 쌍둥이칼은 이미 너무 낡아 있었다.


너는 프랑스에서만 살 수 있는 칼을 검색해 봤다. 독일제나 스위스제가 더 좋긴 하겠지만, 어쨌든 프랑스를 왔으니까. 오랑쥬리를 가는 길에 주방 칼 전문점이 있었고, 너는 걸음을 옮겼다.


아침 No.2

걸어가던 중 Rue du Paradis (낙원가 정도가 되려나)를 발견한 너는 우회를 택한다. 찾아든 낙원은 공사 중이었다. 사람들이 출근을 막 마친 시간이라 거리는 고요했다. 갑자기 너는 허기를 느낀다. 크로와상이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불편한 자리에서 밥을 먹거나 별로인 것을 먹으면 그것을 조금 만회할 수 있는 무언가를 늘 찾는다. 클래식한 간판에 아버지로부터 딸까지 이어져 온 디저트 가게를 발견한 너는 커피나 한 잔 할까 하고 들어갔다. 인도/서남아시아 느낌의 남자 점원은 아버지도, 딸도 아닌 것 같았지만 친절했다. 뒤셰쓰라 불리는 초코 디저트는 시원하고 폭신했다. 커피를 홀짝이다 다시 길로 나선다. 흐렸고, 파리를 메운 건물들의 자글자글한 장식들이 조금 시끄럽게 느껴진다. 네가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확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길을 걷다 보니 관광객이 늘고 건물과 샵들도 커져갔다.

회색 하늘을 피한 사진들

이번 여행에서 너는 한국인 관광객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유를 찾던 네 머릿속에 멋쩍게 “농번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왠지 들어가기 싫어했던 거리와 라파예트 지나 발견한 흐린 봄(printemps)

라파예트를 들어갈 때 너는 B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는. 너는 그녀가 대단하다고 느꼈고, 너에게는 아직 그 타이밍이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여행 간 사람 주제에 너는 라파예트를 가기 싫어했다. 왠지 너는 백화점은 싫었다.

갤러리 라파예트의 난간 하부

역시나 너는 처음 내부에 들어갔을 때는 한국 백화점과 같은 브랜드, 같은 내부 장식에 실망했다. ‘그래도 좀 보자, 혹시 ‘트렌드’란 아이와 친해질지도 몰라‘ 생각하며 너는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다, 루프탑을 가볼까 생각도 하다가 사람에 치여 그냥 내려가던 중 우연히 전망 좋은 층에 도달해 버렸다. 돔 아래 빈 공간이 보이는 발코니에 서서 다른 관광객들의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구경을 하는데, 돔 위의 작은 돔 (분명히 서양건축사 시간에 배웠을 텐데)의 스테인드글라스 색상이 꼭 공작새 깃털에서 하나하나 따온 것 같았다. 내부 장식도 훌륭했는데, 장식이 부조형식이어서 실물로 봤을 때 더더욱 효과가 좋았다. 건축이 조금 더 그림이었던 때, 도면 작업은 참 재미있었을 지 모른다고 너는 생각한다.

프랑스 아주머니가 네 앞 고객이어서 너의 신뢰도가 올라갔던 칼가게

너는 상가의 칼가게에서 칼을 산다. 하루종일 칼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게 여행자의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마도 변치 않았을 길과 노동의 모양

전날 지도에서 마들렌 교회/회당/성당 (L’eglise) 그림을 보고 그곳이 궁금했던 너는 그곳도 들르기로 한다.

마들렌 성당의 엉덩이는 (불경스럽긴 하다. 마들렌이 마리아의 성 family name인 막달레나에 해당하는 불어 이름인 것 같다) 다소 투박했는데, 검은 코린티안 주두가 훼손을 막기 위한 그물망으로 가려져 있었다. 마들렌 성당의 옆구리를 지나던 너는 잠시 멈춰 보도 포장 현장을 본다. 투박한 돌덩이들 사이에 시멘트를 채우는 모습이 아마도 수백 년간 변치 않았을 노동의 모양 같아서였다.

아쉽게 다른 길이 함께 비쳐버렸지만 어쨋든
마들렌의 시선

마들렌 성당은 콩코드 광장과 도로로 이어져있었고, 대로 사이로 콩코드의 거석이 보였다. 셀카를 찍고 있는 멕시코 관광객에게 너는 평소답지 않게 말을 걸었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너는 폰을 들고 달리는 척 장난을 해볼까 하다 그만뒀다. 멕시코인의 사진실력은 영 꽝이었다. 열심히는 찍어줬다.

좋은 표리부동

너는 거대한 계단을 올라 마들렌 성당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청동이었을 문이 열려 있었고 그 문을 통해 들어간 내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까웠다. 그리스의 신전들은 나무로 된 박공지붕이었을 텐데, 이 신고전주의 프랑스 건축가는 영화로 치면 연결이 튈 만큼(건물 내외부의 설정이 맞지 않거나 문 안팎이 달라 어색할 때 이 표현을 쓰곤 한다) 멋진 구상을 해 놓았다. 거대한 네 개의 돔이 대공간을 만들고, 양쪽으로 페디먼트가 있는 작은 파사드로 된 방들이 있었다. 거부하려 했지만 결국 여러 성당에 발을 들였던 네 기억 속 성당 중 가장 창의적이면서 웅장한 성당을 만났다.


빛이 들어오는 곳이 천장의 돔 꼭대기밖에 없다 보니, 내부에는 사람 머리 위 정도 높이로 수많은 샹들리에들이 내려와 있었는데, 필요에 의한 조명들 또한 이 공간의 멋짐을 더해줬다. 너는 이 조명들이 나무의 유기적인 가지, 잎들처럼 공간을 잘 채워줘 규모를 드러낼 수 있는 요소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공간을 다루는 일을 하는 네게 잠시 여행을 잊고 공부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아일’의 개념이 좀 없는 구조라 기도하는 사람들 옆을 지나가며 사진을 찍던 너를, 그들은 조금 싫어했으려나.

오랑쥬리 옆구리

줄이 길었던 오랑쥬리를 포기하고 너는 GULI라는 중국식당에 갔다. 감기기운이 목을 간지럽히고 있었고, 국물이 필요했다. 사천식 면요리는 따뜻하고 맛있었다. 고기도 부르기뇽마냥 부드러웠다. 하나 남은 담배를 피고 나서 너는 94번 버스를 타고 서북부로 향한다. 저녁엔 약속이 있었다.


네가 가장 피곤했던 그날 오전과 오후, 너는 역설적으로 시간당 가장 많은 관광지를 돌아봤다. 아마도 관광지를 피해 독창적인 여행을 짤 힘이 없었던 너는 거대한 조형물들의 중력에 이리저리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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