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젹 Sep 03. 2023

커피와 나의 이야기_2

작은 세계의 피아짜


2011년, 서울


대학 신입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온 나는 작은 원룸을 얻었다. 한 칸 방도, 그 적은 옷가지도 관리하지 못했던 시절, 그리고 너무나 외로웠던 그 시절 나를 온전히 안아주는 것은 새로운 장소, 새로운 길거리, 그리고 카페였다. 술값과 커피값으로 생활비를 탕진하던 시절, 날씨가 좋으면 듣기 싫은 수업은 과감히 빠지고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신사동 가로수길에서는 2층 카페에 앉아 ‘서울 사람들’을 구경하며 커피를 마셨다. 자우림의 ‘일탈’에 나오는 신도림역도 가고, 인디밴드의 성지라던 홍대도 만났다. 주로 홀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동네 구경을 하고 나면 늘상 카페로 가서 이해하지 못할 책들을 읽으며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더랬다.

      

고민 많던 1학년은 바빴고, 바쁘지 않을 때는 외로웠다. 동아리 공연도 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고 다닌 느낌이었다. 마냥 사람이 좋았고 각 사람 속의 세상을 들여다 보는 게 좋았던 시절, 술이 약했던 나는 학교 안팎의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다. 학교 생활이 거의 전부여서 한 동네에 머물 때였고, 골목골목 작은 카페들을 많이도 찾아다녔다.      


2학년이 될 무렵, 전공을 건축설계로 정한 나는 도서관에서도, 학교 작업실에서도 집중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숙사 고등학교에, 재수학원에 4년간 갇혀 있었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됐는지 사실 아직도 한 공간에서 오래 집중하는 것이 힘든데, 원래 그런 인간이었거나 이 시절부터, 그러니까 내 20대때부터 나를 이리저리 풀어놔서 그런 것일 테다. (좀 더 그럴듯한 이유가 생각났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몸으로 느끼던 때였고, 최대한 많은 공간들에 나를 노출시키고 싶었다는 그런 이유인데 아무래도 너무 스스로 예쁜 포장지에 묶이는 느낌이니 괄호에 집어 넣는다.)     

건축과 어느 전공 수업에서 예전에는 집에서 해결되던 여러 기능들이 현대사회에서는 도시의 시설들로 녹아 들어갔다는 개념을 들었다. 주방과 식탁은 식당으로, 세탁실은 빨래방으로, 집의 크기가 수용하지 못하는 기능들이 사회 구석구석으로 튕겨져 나간다는 것인데, 카페는 내 4평짜리 ‘집’의 밖에 있는 거실이자 공부방이자 작업실이 되기 시작했다.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동아리 연습을 하고 해가 떨어지면 과제나 작업을 하는 척을 했다. 커피가 맛있는 곳들은 일찍 닫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더 맛 없었다고 기억되는 프랜차이즈 카페들에 가서 영업 종료시간까지 뻗대다 오기 일쑤였다. 

밤 12시까지 영업해서 자주 갔던 카페베네. 

커다란 학교 근처 카페들은 광장이었다. 들어가면 무조건 한 두사람은 아는 사람이 있었고, 반갑게 인사하며 같이 앉아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공부 하기 싫은 표정을 포착하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누구 하나 손사래를 칠 때까지 수다를 떨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리를 잡으려 돌아다니면서 아는 사람 없나 열심히 레이더를 돌렸던 것 같다. 그게 좋아서 카페를 갔는데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2학년 2학기 때 학고(학사경고)를 받고 군대에 갔다. 


극강의 E였던 대학 2년을 보내고 군생활을 하고 나왔을 때, 동생이 서울로 대학을 왔다. 동생은 신촌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했고, 나는 군말없이(속으로는 약간 기뻐하며) 신촌에 함께 살 자취방을 구했다. 학교 근처에 살았을 때 선후배동기에게 늘상 불려 나가는 것도 조금 지쳤었고, 좀 더 젊은 동네(?)에서 살고 싶었다. 통학시간은 30분에서 1시간으로 늘었지만 학교에 벌써 질려버려서 오히려 좋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홍대로, 신촌으로, 연희동으로 가서 노트북을 폈고, 카페들을 전전했다. 예민의 극치였던 그때, 작업할 수 있는 커피 맛이 아니거나, 음악이 너무 ‘가요’이거나(부끄럽지만 예전의 나니까),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우면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하루에도 두세번씩 카페를 옮겨 다녔다. 26살에 우울증을 씨게 맞기 전까지 나는 하루도 집에 온전히 있는 날이 없었다.      

이렇게 다양한 에쏘 세팅들이 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카페와 관련된 버릇들이 생겼다. 

그 중 하나는, 처음 가는 카페에서는 에스프레소를 시킨다는 것. 에스프레소가 내 취향에 맞아야 다른 음료도 입맛에 맞는 경우가 많고, 그래야 커피 맛을 보고 갸우뚱 하거나 심드렁 한 일이 없어진다. 게다가 에스프레소 잔이 갖춰진 경우에는, 각 카페에서 쓰는 다양한 귀여운 잔을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주문하기 전 찬장을 살펴보고 에스프레소 잔이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세상 귀엽거나 세상 힙한 에소 잔들이 입에 닿기 전부터 즐거움을 준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카페 로고가 그려진 티슈를 책갈피로 쓴다는 것. 오래 읽지 않은 책을 펼쳤을 때 티슈가 나오면 불현듯 그때의 음악, 향, 공간의 느낌이 문장들 속에서 피어나고, 그게 꽤나 흡족한 경험을 준다. 그럴 때 감상에 빠져서 한동한 멍때리다가 책을 그냥 덮기도 한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나에게 카페 티슈는 잃어버려도 상관없으면서 섬유 한올 한올 속에 기억을 그득히 담고 있는 좋은 책갈피가 된다. 


<예고편> 

카페에서의 소사이어티, 그 희한하고 소중한 경험. 

작가의 이전글 커피와 나의 이야기_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