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 Jo Apr 18. 2024

빛나는 시절은 갔지만

We'll Meet Again


 딸 둘이 이미 삽십대를 훌쩍 넘어 함께 늙어가고 있던 중, 아빠는 문득 술기운에 이런 말을 했다.



너희가 부럽다.
젊음이 그저 부럽다.



 지금은 당뇨 수치 때문에 술기운 찬스를 쓸 수 없는 아빠의 속마음을 잠시 엿볼 수 있었던 그때. 그때는 철 없이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나 역시 술기운에 마음속이 아닌 부엌 전등 밑으로 이 말을 던졌던 것 같다.


 "아니, 무슨 자식들한테 질투를 다 하고 그래? 우리도 늙어가는 중인데? 역시 아빠는 속이 좁아!"


 그런데 앞자리가 또 한 번 바뀌어가는 중인 요즘에서야, 조금씩 아빠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누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저 예쁜, 2000년대생 친구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누군 키가 크고, 누군 연기를 잘하고, 누군 말을 예쁘게 하고, 그런 것을 다 떠나, 햇빛에 반짝이는 모래알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는 까치처럼 그저 멀리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도 요즘 들어 부쩍 자주.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가 그 모래알이 대체 무슨 돌인지, 석영인지 흑운모인지 파헤치고 싶은 생각은 또 안 든다.


 얼마 전 배우 손석구가 어느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사회자들에게서 '빛나는 젊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과 참 비슷해서, 어느덧 몰입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피식대학 손석구 편 중



 60대를 지나고 있는 아빠도, 여전히 마음은 직장 다니던 때 그대로인데 몸만 늙어가는 기분이라고 했었다. 그러고는 불현듯 서글픔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그 서글픔은 술기운과 함께 포말처럼 사라지는 어떤 것이기에, 아무도 거기에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앞으로 걸을 10년, 20년 동안에도 문득문득 다시 돌아올 이 감정이 나를 둥글게 스쳐 갈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기에 따뜻한 감촉을 덧입히는 LP의 공간음처럼. 빛나는 시절이 지나간 것에 슬퍼하기보다는 늘어가는 시간의 틈새마다 너그럽게 품어보는 것이다.  

 여러 가수의 목소리로 기록된 하나의 명곡이 각 버전마다 전혀 다른 감상을 자아내는 것처럼, 어차피 살면서 계속 돌아올 감정이라면 매번 다르게, 때론 재즈로, 때론 팝으로 받아치면서 가보는 건 어떨까?


 1939년, 어두운 시대의 서막에 발매된 명곡, 'We'll Meet Again'을 다시 들으며, 이번 턴은 조금 밝게, 파란 하늘을 떠올리며 배웅해 본다.

 가장 빛나는 시절은 온 줄도 모르게 갔어도.






마음을 양조합니다.

마인드 브루어리



매거진의 이전글 쌀쌀한 봄날의 탈고 소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