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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Sep 23. 2024

음악가 루시네에게서 배운 어떤 것

2장 - 우연과 인연이 스민 거울 앞으로


 2011년 독일 레지던시 기간 동안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마찌아 외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아티스트는 피아노와 자신의 목소리로 어디서든 즉흥곡을 연주하는 아르메니아 음악가 루시네였다.

 자국 전통 의상을 챙겨 온 사람이 나와 루시네뿐이었기에 우리는 처음 열렸던 네트워킹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야기하는데도 인텔리적인 면모가 엿보이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루시네가 말해주어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원래 의사였다가 음악가로 전향하여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르메니아나 사이프러스, 에스토니아 같은 나라들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나로서는 영국과 독일에서의 경험이 실질적으로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잠재성과 에너지,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이 누군가의 인식 속 세계에서는 점멸 중인 간판처럼 제대로 기능하지 않던 하나의 국가에 빛과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아르메니아는 초대교회가 탄탄히 뿌리내리며 로마보다 91년이나 앞서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했던 나라로, 아직도 초대 사도교회에서 발전된 아르메니아정교가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셨던 친할머니의 영향으로 성경을 자주 접했던 내게 그녀의 존재는 살아 움직이는 고전처럼 사뭇 신비하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입주 작가가 시각 예술가였기 때문에 공연 예술에 해당하는 팀들은 전시가 아닌 다른 형태로 주기적인 발표를 진행하였는데, 이는 겨우내 단조로운 작업 스케줄 사이사이를 채워주는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지역 귀족 가문의 저택에 방문하여 초청된 예술가들의 오페라나 연극을 함께 감상한다거나, 시내의 레스토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참여 아티스트들의 피아노 연주를 라이브로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멋진 인테리어의 저택과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가씨들의 수다, 쉴 새 없이 손님을 맞는 귀여운 반려동물들, 백화점에서 억지로 꾸민 장식이 아닌, 불을 피워 놓은 진짜 벽난로와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소품들. 그 모든 것들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기꺼이 그들의 생활 속 아주 깊숙이 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이었다.

 난방을 해도 춥기 마련인 유럽의 고택이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고, 까만 정적은 곧 화려한 멜로디로 수 놓였다. 많은 공연 팀 중 단연 인상적이었던 루시네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아주 여리고 서정적인 곡에서부터 힘 있고 날카로운 곡까지 광범위했다. 즉흥적으로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어떤 '한'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어떠한 장르를 특정하기보다는 자신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즉흥적으로 풀어내는 멜로디라인은 전통이 가미된 듯한 오묘하고 신비한 구석이 있었지만, 여전히 현대적인 창작 음악의 범주 안에서 다채로운 변주가 이뤄졌다. 그녀의 확고한 신념이 곧 중력이 되어 즉흥적으로 마구 흩어질 법도 한 음들을 일정한 모양새로 아름답게 부유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던져진 물감 덩어리들 사이를 파헤치며 눈으로 길을 만들고 손으로 그 뒤를 쫓는 나의 작업 방식과도 한편으로는 결을 같이했다.

 여러 번의 연주를 통해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흔쾌히 노래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던 루시네 덕에, 나도 두어 번은 자유로운 음과 음 사이에 몸을 맡겨 보기도 하였다.


 입주 작가들 중 막내 라인에 속했던 나에게 루시네가 늘 하던 말은, '네 작품은 진짜 성숙한데 너는 아직 덜 성숙한 것 같아.'였다. 그 당시에도 작품만 보면 나이가 좀 있는 남자 작가일 거로 생각하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내게는 아주 익숙한 반응 중 하나였다. 눈 깜짝할 새에 10년이 지날 줄 모르고 그때는 그렇게 빨리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만 자주 했으니, 루시네의 말이 영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한 번은 시가지 내 카페에서 공연과 네트워킹을 마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루시네와 함께 걷게 되었는데, 그녀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몇 번 만류하다 그냥 같이 걷기 시작했다.

 장을 보기 위해 숙소가 있는 언덕 꼭대기에서 해안가 마을까지 6km를 매번 내려왔다 가곤 했던 나는 비교적 이곳의 지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갈 길을 확신하던 그녀의 기분을 당장에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표지판이 나오는 곳까지 함께 걸어주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지하자 그녀는 몇 번이고 나에게 사과했는데, 자신의 기분이 어쨌거나 내가 맞는 길을 알고 있다면 자신을 더 강하게 만류했어야 한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별것도 아닌 스치는 일상 속 한순간이었지만, 가감 없이 상대에 대해 느낀 점을 표현해 주고 수용할 것은 빠르게 수용하는 루시네의 성정 덕분에 나는 보다 성숙한 방식으로 옳은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보다 조금 더 표현하고, 확실한 것에는 더욱 확신을 가지는 것. 빠르게 추진하고 재빠르게 고쳐 나가는 것. 특히 작업에 있어서 길을 잃을 것을 먼저 걱정하지 않는 것. 돌아보면 그때의 아주 작은 접점들이 나의 움직임에 미묘한 각을 만들었기 때문에 평행선으로 끝날 뻔했던 많은 선들이 이어져 지금 유용하게 쓰고 있는 중간 답안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즉흥이 가볍지 않으려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확신과 신념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그 확신과 신념이 건강하게 기능하려면, 또한 수용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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