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우연과 인연이 스민 거울 앞으로
처음 책을 내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원고를 정리하며 써 둔 프롤로그가 있다.
이 짧은 글이 생애 첫 출판 미팅에서 내 발목을 잡게 될 줄이야!
“과거에는 충분한 식수와 영양공급원을 구할 수 없어 포도주나 맥주를 마셨다면, 오늘날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술을 마신다. 여기서, 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나는 제대로 허를 찔렸다. 시원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그 뾰족한 지압봉 같은 질문에 단번에 대답하지 못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날 이후, ‘마음’이라는 커다란 단어 속에 온갖 것들을 꼭꼭 숨겨 둔 과거의 나에게 여러 차례 되물었다. 미팅 날 파란 거품을 올린 헤이즐넛 라테를 생수처럼 마시면서 끝내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던, 그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탁탁, 무심한 키보드 소리가 한차례 잦아들면, 캔맥주를 내려놓는 소리가 탁, 이어진다.
어이, 거기. 그 맥주를 마저 들이켜고 싶으면 빨리 대답하라고!
완성되지 못한 채로 뒤섞여 말라붙은 물감을 다시 녹이거나 떼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이 뒤엉킨 글도 마찬가지다. 삶이 힘들면 글로 도망치던 습관 때문인지, 나는 글 속에서도 묵직하고 튼튼한 방패 뒤에 숨기를 반복했다. 함축, 관측, 중량 같은, 딱딱하고 무거운 단어들 말이다.
생각해 보니, 술을 마실 때면 언제나 그 방패 뒤에 숨은 말캉말캉한 말들이 절로 튀어나왔다. 눈빛, 별, 바다, 사랑, 행복 같은, 보드라운 말들과 거기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그러니까, 나는. 나와 술잔을 부딪치는 너는, 우리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말갛고 보드라운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막연하고 커다란 ‘마음’을 양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생기 어린 낱말들이 모인 ‘이야기’를 양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살아있는 효모를 더해 낯간지러운 당도를 덜어내고 오래도록 마실 수 있는 발효주 같은 이야기를 빚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렷한 의식과 시야의 긴장을 조금만 풀면, 촘촘한 의식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던 생생한 낱말들이 한 톨 한 톨 쏟아져 나온다. 향긋한 술 한 잔과 조도를 낮춘 조명이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 평소에는 빛을 보지 못했던 숱한 이야기들이 서로의 의식을 타고 흐른다.
술잔 속 고운 빛깔에 비추어 바라본 우리의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딸 둘이 이미 삼십 대를 훌쩍 넘어 함께 늙어가던 중, 아빠는 문득 술기운에 이런 말을 했다.
“너희가 부럽다. 젊음이 그저 부럽다.”
지금은 당뇨 수치 때문에 술기운 찬스를 쓸 수 없는 아빠의 속마음을 잠시 엿볼 수 있었던 그때. 그때는 철없이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나 역시 술기운에 마음속이 아닌 부엌 전등 밑으로 이 말을 던졌던 것 같다.
"무슨 자식들한테 질투를 다 하고 그래? 우리도 늙어가는 중인데? 역시 아빠는 속이 좁아!"
그런데 앞자리가 또 한 번 바뀌는 중인 요즘에서야, 조금씩 아빠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얼마 전 배우 손석구가 어느 예능 프로에 출연해 ‘내 나이는 마흔이 넘었지만, 정신은 아직 20, 30대에 머물러 있고 몸만 40살이 된 기분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60대를 지나고 있는 아빠도, 여전히 마음은 직장 다니던 때 그대로인데 몸만 늙어가는 기분이라고 했었다. 그러고는 불현듯 서글픔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그 서글픔은 술기운과 함께 포말처럼 사라지는 어떤 것이기에, 아무도 거기에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앞으로 걸을 10년, 20년 동안에도 문득문득 다시 돌아올 이 감정이 나를 둥글게 스쳐 갈 수 있도록, 되도록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공기에 따뜻한 감촉을 덧입히는 LP의 공간음처럼. 빛나는 시절이 지나간 것에 슬퍼하기보다는 늘어가는 시간의 틈새마다 너그럽게 품어보는 것이다. 드라이진에 라임을 더한 진피즈 칵테일 한 잔과 함께.
여러 가수의 목소리로 기록된 하나의 명곡이 버전마다 전혀 다른 감상을 자아내는 것처럼, 어차피 살면서 계속 돌아올 감정이라면 매번 다르게, 때론 재즈로, 때론 팝으로 받아치면서 가보는 건 어떨까?
1939년, 어두운 시대의 서막에 발매된 명곡, 'We'll Meet Again'을 다시 들으며, 이번 턴은 조금 밝게, 파란 하늘을 떠올리며 배웅해 본다.
가장 빛나는 시절은 온 줄도 모르게 갔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