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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작 Apr 09. 2024

[E] 엄마의 서른세 살 어느 날의 일기


"엄마, 우리 어디 가?"

눈이 채 떠지지 않는 아침이었다

평소면 자고 있을 시간에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오른손으로 내 손을, 왼손으로는 누나 손을

그리고 세 살 동생은 업었다. 동생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엄마는 이모가 보내준 파란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몸빼 바지가 생활복이었던 우리 시골에서 정장은 서울갈 때나 입는 옷이었다

엄마가 그 정장을 입는 걸 좋아했던 나는

목적지도 몰랐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좋았다

누나는 일찍 깨 기분이 나쁜지 아무말 없이 엄마 손만 잡고 있었다


"엄마, 우리 어디 가?"

엄마 팔을 흔들면서 다시 물었다

엄마는 대답도 미동도 안 하고 가만 버스가 올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의 깊은 눈보다 더 깊게, 

새 순이 올라오는 포플러 나무 가로수가 만든 소실점은 너무도 멀었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입을 다물고 있던 세 살 위 누나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 전날 집에는 소동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누에를 키워보겠다던 아빠가 돈을 날린 것 같았다

엄마가 우리 형제를 업어 키우며 쌀을 팔아 모은 돈이었다

누나가 읍내로 중학교를 갈 돈이었고

내가 쿵후학원에 갈 돈이었다

미꾸라지 양식과 우렁이 양식에 이은 세 번째 실패였다

다들 벼를 키우면서 밤이나 감, 고구마 등으로 부업 생산을 하는데

아빠는 자꾸 시골내기들과 다른 새로운 시도를 했다

아빠의 도전과 욕심은 역시나 보기 좋게 실패했지만

실패를 거듭할 수록 고집과 자존심은 커져갔다


엄마는 이번에는 평소와 다르게 아빠의 실패에 엄격했다

"미꾸라지는 첫 도전이라 참았다

 우렁이는 키우는 재미라도 있어서 참았다

 누에는 온 천지에 그 비린내가 배서 이 실패가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이제는 못 살겠다고, 더는 불안하기 싫다고, 커가는 애들이 불쌍하다고

그런 말들을 쏟아냈다고 한다


엄마는 닭이 훼를 치며 울자마자 이모가 해준 정장을 입고 자식들을 깨웠다

누나는 벌떡 일어났고 나는 겨우 일어났고 동생은 잠결에 업혔다

안방에서는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두 손에 자식을 잡고, 하나를 업고 머리에는 봇짐을 이고 첫차를 기다렸다


하품이 계속 나왔다

버스는 올 기미가 안 보였다

그때, 정류장 앞 세탁소의 문이 열렸다

엄마보다 서너 살 아래인 여직원이 셔터를 올리고 불을 켰다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부비더니 우리를 발견했다

귀신이라도 본 듯 놀라더니 천천히 우리에게 걸어오며 연신 눈을 부볐다


"언니 어디 가?"

엄마는 버스가 오는 길에서 눈을 거두지 않았다

"언니! 이게 뭐야?"

동생은 엄마 머리에 얹혀있던 짐을 뺏어 들었다

"언니, 왜 이래. 어딜 가려고 해. 가게로 좀 들어가자. 애들 힘들겠어. 언니 왜 이래."

우리보다 엄마가 더 힘들었었나보다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엄마는 그 날 버스를 타지 못했다

세탁소에서 첫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린 세탁소 이모가 준 감자를 먹으며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 날 떠나지 못해 남편의 실패를 서너 번 더 봐야했다

가장 큰 실패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

그게 가장 우리들에게 미안하다고 명절마다 말했다

지난 명절에도 엄마는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우리에게 미안해 했다

늙어서도 자식들 속을 썩인다는 이유였다

아빠가 속썩인 일들을 꺼내다가 누나가 저 이야기를 꺼냈다

누나는 그때 너무 무서웠단다

정말 엄마가 떠날까봐, 자기는 아빠가 좋았는데 아빠를 떠날까봐 무서웠단다

엄마가 그말에 그날의 속내를 밝혔다

"내 생각만 하믄 떠났제. 

 버스를 기다리는디 버스가 올까봐 무섭드라.

 정말 내가 그 버스를 탈까봐, 니들 데리고 탈까봐... 그게 무섭드라.

 나중에 그 세탁소 동생이랑 술 묵으면서 고맙다고 했어. 동생이랑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엄마의 그 손을 기억하는지 나는 내 새끼들 손을 자주 잡는다

초딩이 된 첫째가 2학년 등굣길에 친구 앞에서 내 손에서 손을 빼길래 서러웠다

딸아... 우리 손 잡자. 손 놓지 말자. 할미가 손은 놓지 말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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