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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작 Apr 09. 2024

[E] 갑자기 떠난 친구의 첫 기일


2주 전이었다

"우리 다음달 7일에 모이니?"

내 톡이 3개월만에 단톡방을 깨운 알람이 됐다


7일, 오늘은 고향친구 C의 기일이다

C는 작년 오늘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 판정을 받고 4개월만이었고

전이가 심해 4개월 동안 병원을 전전하다 떠났다


나는 C를 중학교 가서 만났다. 시골 면소재지 학교

C는 지역에서 워낙 유명해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1학년 짱을 먹었다

나는 C와 2학년 때 가까워졌다

내가 C와 가까워진 건 의외였고 우연이었다

나는 한 방이면 쓰러질 약골이었고 겉보기로는 공부만 하던 놈이었으니


C는 1년 후배를 좋아했고 그 후배는 내 초등학교 후배였다

우리 동네의 옆동네에 살았고 초등학교 때 나랑 같이 문예반이었다

C는 내게 편지 쓰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정글에서 누구도 침범 못할 안식처를 얻은 셈이었다

나는 C의 편지를 봐줬고 후배에게 편지도 전했다

C는 의외로 감수성이 좋았고 글씨를 잘썼다

한 달여의 구애로 C는 후배와 사귀게 되었고

나는 C와 학교 뒤에서 막걸리를 먹는 단계까지 올라섰다


우린 고등학교를 달리 갔고 각 대학 소재지 또한 달라

중학교 졸업 후 거의 10여 년을 명절에만 간간이 봤다

취업 후 우린 수도권에 살던 친구들 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C는 벌써 사회생활 수년 한 직장인의 외관을 하고 있었다

배는 나오고 말은 많고 아는 것도 많았다

C는 술자리에서 친구 하나를 잡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걸 좋아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면 꼭 말싸움을 했다

"내 말 좀 들어봐"

C가 있는 자리에서는 C의 이 말만 들렸다

그래도 그때는 철이 들어 주먹을 날리지는 않았다

십 여명 모이는 그 모임에서 C의 말 공격을 당하지 않는 놈은 나밖에 없었다

C는 내게 과한 주장을 펴지도 않았고 '내 말 좀 들어보라'며 팔을 붙잡지도 않았다

다른 이와 언쟁하다 내 동의를 구하고자 나를 부르기만 했다

C는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한 학년이 100명이 좀 넘는 작은 학교였기에 소문은 삽시간이었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같은 아이가 C의 여친이 됐다는 것도,

같은 작품의 소년같은 내가 C의 무리에 들었다는 것도

전체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 귀에도 들어갔다

여름방학 직전, 나는 C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고

15명이 모인 그날, 우리는 술에 취해 근처 수박 서리를 했다

알코올 기운에 우리는 날아다녔고 

모두가 양쪽 팔에 수박 두 통을 챙겨왔고

먹고 남은 수박은 차력으로, 볼링으로 박살이 났다

다음날 성난 밭주인이 학교까지 쫒아왔고 우린 일주일 근신처분을 받았다

우리 부모님은 충격 받았지만

나는 C와 교무실 복도에서 얼차려를 받으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C의 부모임은 애들 앞에서 C의 뺨을 후려갈겼고

C의 시선이 떨어진 곳에 내 눈이 있었다


C가 암 선고를 받기 전에 살이 많이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전화를 걸었었다

C는 별거 아닐 거라며 감기가 심할 뿐 코로나도 아니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 통화 후 C는 암선고를 받았고 그 뒤로 나는 C와 통화도 못했다

C는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며 면회는 커녕

영상통화도 거부했고 절친 2명의 전화만 몇 번 받아주고 떠났다

내 전화는 안 받아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카톡을 남겼다

C가 병상에 오른 지 4개월째에 보험으로 병원비가 커버 안 된다는 말이 돌았다

나는 C에게 작은 돈을 보냈다





C는 가오가 중요한 놈이었다

만나면 늘 일을 잘해 인센티브를 얼마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술값 계산할 때는 늘 선봉에 섰다

언젠가 친구 Y가 입원했었다

Y의 간병인 역을 자임하고 거의 매일 병원에 출퇴근했는데

C가 와서 자리를 같이 지켰다

C에게 자리를 맡기고 C의 차를 빌려 인천 봉사활동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피곤을 못이기고 졸아 앞차를 들이받았다

수리비가 250만원이 나왔지만

C는 보험으로 다 된다며 국밥 한그릇으로 때우라고 했다

할증된 보험료를 내주겠다고 했으나 C는 마다했다


C가 위독하다는 연락과 떠났다는 연락은 세 시간차였다

C가 있는 오산시까지 가는 2시간 동안 나는 울지 않았다

그때 내 몸은 뜨거웠고 만지면 바스라질 것처럼 건조했다

그 동네 사는 Y 다음으로 내가 도착했다

끊었던 담배를 얻어피며 말없이 재를 태웠다

필터를 잘근잘근 씹었고 혀에 배인 피냄새에 침을 뱉었다


일년이 지나 첫 기일에 우리는 C의 쉼터를 찾았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고 하나둘 꼬리를 이어 왔다

C의 유골함은 켜켜이 쌓인 선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골함이 간신히 들어갈 크기의 칸이라

그 큰 등치가 저기서 잘 지내고 있을까 걱정이 됐다

마침 근래 잡은 책이 옛애인의 유골함을 납골당에서 훔쳐 제주도에 뿌려주는 두 연적의 이야기라서 나는 자칫 C의 유골함을 들고 튈뻔 한 걸 겨우 참아냈다


친구들이 다섯이 모이자 자리를 옮겨 대낮부터 술을 부어댔다

테이블 한켠에 C의 잔을 올려놓고 건배하며 마셨다

"그래도 네가 기일은 잘 챙기네"

"니가 먼저 얘기할 줄은 몰랐다"

"너는 바쁘다고 모임도 잘 오지 않았다"

"그런 너를 C는 매번 욕했다"

"그래도 네가 없어도 늘 네 얘기를 했다'

나는 다시 C와 건배를 하고 "나는 여전히 모임 참여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기일에는 올테니 내게 꼭 연락해달라"고 당부했다. 


술값을 치르고 먼저 일어섰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책을 마저 읽었다

두 연적은 옛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에게 복수까지 하더라

나는 내 친구의 죽음에 대해 누구에게 복수를 해야하나

되갚을 놈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면 되나?

유골함 옆에 놓인 사진 속 친구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내 아들을 꼬옥 안고 건강하자고 얘기했다

"아빠 이렇게 술 마시면 오래 못 산다고!"

허허 이 놈아 아빠 속도 봐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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