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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잌 Nov 04. 2019

반팔 입고 노르웨이 안 가봤으면 말을 말어

노르웨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야! 일어나!"


집에 놀러 와 있던 친구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눈을 떴다. 얘가 왜 아침부터 폭력을...


"너 비행기 놓치겠어!"


시계를 보니 비행기가 뜨기 직전의 시간이었다. 이대로 공항까지 날아가도 시간에 맞춰 도착 할리 만무했지만, 그런 냉철한 현실 자각은 되지 않았다.


안돼, 안돼, 내 비행기! 내 노르웨이!


몇 달을 준비한 여행이었다. 빛의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전날 싸 둔 가방을 그야말로 낚아채 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예약할 때, 불안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거의 공짜에 다름없는 가격에 표를 살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 날만을 그래도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앞에서 힘을 잃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파티를 하는 게 아니었다. 비행기 생각한답시고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일찍 집에 가기엔 너무나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괜찮지 않을까?"가 여러 개 겹쳐 결국은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비행기는 당연히 놓쳤지만(아슬아슬하지도 않았다) 다행히 몇 시간 후 출발하는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삽질도 이런 삽질이 없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아침의 난리통에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겨울 코트를 챙겨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팔 차림이었다. 가방 옆에 고이 걸어둔 코트는 물론 지난 2개월간 찾아 모아둔 여행자료도 챙겨 오지 못했다. 세면도구를 잊은 건 삽질 축에도 못 꼈다.


5월 말이었지만, 오슬로는 추웠다. 들고 간 옷을 몇 겹씩 껴입었지만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몸이 떨렸다. 드디어 오슬로에 내렸을 땐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일찍 도착하니까 돌아다니다가 찾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숙소 예약도 안 했는데, 이 시간에 이 날씨에 도저히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오늘은 공항에서 자고 내일 알아보자. 밤늦은 시각에 도착하면 상습적으로 공항에서 자 왔던 터라(이때는 지갑은 가벼웠고, 몸은 튼튼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공항이 12시에 문을 닫는 거다! 문을 닫는 공항이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저가항공사를 이용한 나는 오슬로 메인 국제공항인 Gardermoen(가르데르모엔)이 아니라 Torp(토르프)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 곳은 24시간 운영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 기차역에서 자지 뭐. 오슬로 역으로 향했다. 오슬로 역은 새벽 1시에 문을 닫는다! 망연자실한 나는 비렁뱅이 같은 모습으로 오들오들 떨면서 오슬로 역 앞 광장으로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광장 가로질러, 저 끝에 홀로 빛을 발하고 있는 가로등 아래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키오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든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멍하니 앉아있던 남자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가게 안에 손님이라곤 없었고, 딱 봐도 한참을 찾아오는 사람 없이 혼자 있었던 것 같았다.


'저, 혹시 지금 문을 열었을 만한 호스텔이 근처에 있을까요?'

'이미 모두 문을 닫았을 거예요'

'아...'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알고 있었지만, 힘이 빠졌다. 남자는 친절하게도 어차피 손님이 없으니 어떡할지 정할 때까지 가게 안에 앉아 있어도 좋다고 했다. 그가 그렇게 권해주지 않았다면, 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답도 없는 상황이었다.


'추워 보이는데 핫도그 하나 먹을래요? 돈은 걱정 말고'


싱긋 웃어 보이며 그는 나에게 핫도그를 건넸다. 이 사람 전생에 최소 천사였던 것 같다.


무료했던 그와 대책 없었던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돈을 벌기 위해 노르웨이까지 왔다고 했다. 매일 새벽까지 이 작은 키오스크에서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이 날씨에!?!) 파는 게 고되기는 하지만 덕분에 파키스탄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줄 수 있다고.


어쩌다 노르웨이까지 오게 되었는지와 서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와이프와 다툰 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새벽에 노르웨이에서 연애상담을 하고 있는 중에 처음으로 손님이 들어왔다. (이 날씨에!)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손님을 그가 응대하는 동안 방해가 되지 않으려 슬그머니 가게 밖으로 나와 광장 끄트머리에 앉았다.


그때 광장에서 노랫소리가 작게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가만히 혼자 그 음악을 듣고 있자니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도 적당히 불렀고, 핫도그 덕분인지 몸이 조금은 따뜻해진 상태였다. 키오스크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광장과 기차역은 한 시간 전만 해도 혼자인 나에게 너무나 두려운 곳이었지만 이제는 참 운치 있어 보였다. 가게 안에서 손님 둘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나는 것처럼 자그맣게 들렸다.


그때 광장에서 듣던 음악이 사무치게 좋아서 한국으로 돌아와 가사를 검색해서 찾아냈다. Daniel Bedingfield의 'If you're not the one'이라는 노래였다. 한동안 그 노래를 못 해도 백번은 반복해서 들었던 것 같다.


딱 한 팀이었던 손님도 가고, 남자는 가게 문을 닫고 맥주 한 잔 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맥주 한 잔과 약간의 연애상담 후 새벽 3시 즈음이 되자 아침처럼 밖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새벽빛에 밝아진 거리가 눈에 들어오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와 헤어지고 아침까지 나는 환한 새벽의 오슬로 거리를 걸었다.


날이 밝자마자 길거리 장터에서 눈에 가장 먼저 띈 저렴한 털외투를 사 입었다. 덕분에 노르웨이 여행 내내 해리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 같은 행색이었지만 따뜻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이미지 출처: visitnorway.com)

 

오슬로를 떠나 게이랑에르 피오르드(Geirangerfjord)의 끝자락에 있는 헬레쉴트(Hellesylt)에 숙소를 잡았다. 이번에도 예약 없이 무작정 찾아간 유스호스텔은 새로 지은 곳으로 공식 오픈 하루 전날이었지만, 주인아저씨가 문을 열어 주셨다. 덕분에 6인실 도미토리를 혼자 사용할 수 있었다.


피오르드를 가로지르는 페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기가 막혔다. 이 곳이 상상할 수도 없이 오래전에 상상할 수도 없이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긁고 지나간 자리라는 걸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상상도 연습이 필요하다. 누구나 언제든 상상의 나래를 끝도 없이 펼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마음껏 상상해보라고 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혹은 상상의 범위라는 것이 나의 일상에서 고작 한 뼘 더 나아가는 것, 영화에서 본 것이나 어딘가에서 읽은 것을 재탕하는 데에 그치고 만다는 걸 깨달으면 조금 슬퍼진다. 하늘만큼 땅만큼 큰 것이 어떤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에서 굳어져 버린 머리도 이렇게 어마어마한 광경의 한가운데에 던져지면, 어쩔 수 없이 상상이라는 걸 하게 되는 것 같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과 그 아래 천천히 흐르고 있는 강을 만들어 낸 커어다란 얼음 덩어리가 쿠구구궁 소리와 함께 바닥을 긁어대며 저 멀리 눈이 닿는 곳 너머까지 미끄러져 간 것이다. 가슴이 설레었다. 귀가 터질 듯한 소리가, 미끄러져 이동하는 얼음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베르겐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필요한 자료들을 찾고 문 밖을 나서려는데, 누군가가 날더러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길래 당연히 한국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팔 사람이란다. 본인을 '라이'라고 소개한 이 아저씨는 7년 동안 현대에서 일하면서 한국에서 살았는데, 그때 기억이 굉장히 따뜻하고 감사했다며 오랜만에 한국사람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한다. 


'어떻게, 식사는 했어요?'


노르웨이에서 네팔인 아저씨에게 이렇게 한국적인 질문을 받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냥 헤어지기 서운하다며 커피를 사주시겠다더니 기어이 저녁까지 사주셨다. 한국의 추억, 노르웨이까지 오게 된 사연, 매일 이어지는 삶의 노곤함, 네팔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 얘기할 상대를 오랜만에 만나 너무 즐거우셨는지 끝없이 이어지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만 호스텔까지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아저씨가 미안해하며 택시비를 주시겠다고 했지만, 외곽에 있는 호스텔까지 살인적인 노르웨이 택시비가 얼마가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근처 호스텔을 찾아보려 했는데, 밤 중에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니까 아저씨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 방을 하나 비워줄 테니 거기서 잘래?라는 말에 따라나섰다.


쭐래쭐래 따라간 곳은 아저씨처럼 외국에서 온 노동자 몇몇이 공유하고 있는 아파트였다. 아저씨는 작은 방 하나를 비워주고, 고향에 있는 아내랑 딸 주려고 사둔 거라며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이불과 베개를 꺼내 자리를 내어주셨다. 이런 호의를 받을 만한 일을 난 단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덕분에 푹신한 이불을 덮고 따뜻한 방에서 아침까지 세상모르게 푹 자고 일어났다. 


지금의 나는 수백 번 지나다닌 길을 걸으면서도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겁쟁이로 바뀌었지만, 이 때는 그저 모든 게 재미있고,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믿었나 보다. 호의를 받으면 숨은 꿍꿍이가 뭘까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그때의 내가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삽질로 시작해서 스스로에 대한 저주와 욕지거리를 허공에 뿌리며 도착한 노르웨이에서의 기억은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가득 찼다. 계획한 대로 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 바라고 바라던 것을 놓쳤을 때, 나는 여전히 실망하고,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술을 마시며 세상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지만, 그것이 반드시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이 나에게 가장 좋은지를 현재의 내가 판단하고 모든 걸 미리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 분노하고, 사소한 실패에도 인생이 망해버린 것처럼 행동한다. 반면에, 일이 어그러졌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미래의 나는 어떻게든 잘 해결해 줄 것이다. 비행기도 놓치고 여행 계획을 적어 둔 노트를 두고 비행기에 올랐던 나를 해그리드 외투를 걸친 내가 잘 보살펴 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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