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nja Mar 12. 2017

재핀란드 한글 학교 교장선생님, 한희영

검이불루 화이불치 (공자님 말씀) 를 지향하는 삶


외국에 사는 한국인 가정의 아이들은 어떻게 한글을 배울까? 집에서 부모님과 자연스레 한국어로 대화하며 말하기를 익히기는 다소 쉽겠지만, 생활 속 말하기와 다르게 쓰기와 읽기는 교육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한국 문화권 아이들에게 자신의 뿌리 언어를 가르치기 위한 한글 학교가 전 세계의 각국에 2,000여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핀란드 헬싱키에도 한글 학교가 있다. 매주 토요일,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인 가정 아이들이 아침 시간을 내어 학교를 방문한다. 필자도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한 재핀란드 한글학교 보조 선생님 봉사활동을 통해 오히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한글 학교에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교장 선생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작은 행동과 메일로 주고받는 단어 하나하나에 한글학교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묻어나곤 했다.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자리를 마련해 그녀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무엇이 그녀가 한글학교에 대한 큰 애정을 품도록 했을까.

Q. 안녕하세요, 사소한 인터뷰 독자들에게 간단히 인사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한희영입니다. 하하 보통 이렇게 시작하더군요. 저는 경주에서 18년 살았고, 서울 11년, 헬싱키에서 12년째 사는 한국 사람입니다. 


Q. 사소한 인터뷰의 공식 질문입니다.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현재의 제 모습과 이를 바탕으로 제가 지향하는 모습 두 가지에 대해서 생각해 왔어요. 검이불루, 검소하지만 누추하진 않다. 이건 제가 생각하는 저의 모습이고 남들도 그렇게 저를 봐준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이걸 바탕으로 나이가 계속 들어가는 저의 모습을 생각하면 화이불치에요.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진 않다는 뜻이에요. 모두 다 공자님 말씀이에요 하하. 저는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꿈꿔요.



 #재 핀란드 한글 학교 교장 선생님, 한희영


Q. 제가 선생님을 알게 된 계기가 한글 학교인 만큼, 한글 학교에 대해 먼저 여쭤볼게요. 

한글 학교는 전 세계 각 지역 각 도시에 자생적으로, 정말로 한국어 교육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한국 분들이 만든 단체라고 할 수 있어요. 재외동포재단에서 하는 한글 학교 연수가 있는데요, 그곳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시작하셨더라고요. 한국인 엄마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임을 하다가 콘텐츠를 찾게 되고, 나아가 선생님도 교재도 필요하게 돼서 한글 학교가 생겨나게 되는거에요. (웃음) 아마 각 나라의 한글 학교들이 그렇게 자생적으로 생겼을 겁니다. 전 세계에 2,000개 정도 있어요. 

(설명: 재외동포재단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2015년 기준으로 1,875개의 한글학교가 있다. 이 중 50~60%가 미주지역에 있다) 


Q. 2,000개나 된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네요. 재핀란드 한글학교는 언제 개교를 했나요? 

저희 한글학교는 2006년도에 아이가 있는 한국인 엄마들 네다섯 명이 만나던 것에서 시작됐어요. 당시만 해도 헬싱키 인근에 주거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았어요. 엄마들끼리 모이다가 자연스럽게 같이 시간을 보낼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주민들에게 빌려주는 한 공간을 빌리게 됐어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커 가니 프로그램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각자 좋아하는 걸 해주기 시작했어요. 읽어주기, 노래하기, 그림 그리기 같은 것들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고 큰 아이들이 오다 보니 정말 선생님이 필요했죠. 그래서 유학생인 선생님들께 봉사활동을 부탁해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그게 2007년 즈음일 거예요. 


Q. 지금이 2017년이니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교장 선생님은 언제부터 한글학교의 수장이 되셨나요?  

저는 3대 교장 선생님이에요. 초대 교장 선생님이 공부하시던 분인데 한국으로 가게 되셔서 제가 2대 교장 선생님을 도와 교감직을 맡았죠. 당시 교장 선생님은 1년 봉사만 약속하셨기에 이후 제가 자연스럽게 교장이 됐고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교장직을 4년 동안 혼자 맡았고, 5년째에 운영진이 생겼죠. 운영진이 생기고 나니 너무 좋고 감사해요. (웃음) 제가 회계하던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연말에 정산하는 게 정말 힘들고 우울했거든요. 운영진분들이 도와주시니 물리적인 시간이 생겨 학교 자체를 생각하는 여유가 생겼어요.


송편만들기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만든 송편을 찌고 계시는 교장 선생님.

Q. 외국에 사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뭘까요. 

뿌리가 없으면 나무가 어떻게 자라겠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언젠가 하게 되거든요. ‘삶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텐데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뿌리를 알아야 하는 거죠. 모르면 방황하게 되거든요. 모르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어요. 최대한 어른들이 알고 있는 도움이 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런 지혜를 알려주고 싶은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이고요.


Q. 한글 학교에서 지향하는 교육 방식과 철학이 있다면 간략히 설명 부탁드려요. 

한글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고 재미있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것. (웃음) 핀란드 경우에는 한인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치 않아요. 워낙 교민 수가 적기도 해서일까요? 그래도 한글 학교는 꾸준히 지속해서 성장해왔고 체계가 잘 잡혀가고 있어요. 다른 교장 선생님이 오신다고 해도 앞으로도 잘 운영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앞으로 한글학교의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봉사 활동을 해주시는 많은 선생님을 보면서 지금의 한글학교가 다른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부모님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무언가를 하실 수도 있고 선생님들끼리도 지도했던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또 그걸 각자 공부하시는 곳에 활용하실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런 면에서 앞으로 한글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Q. 현재 재 핀란드 한글 학교에는 교장 선생님 한 분, 교감 선생님 한 분, 그리고 보조 선생님을 포함 선생님들이 총 20명이에요. 아이들은 32명이고요. 생각해보면 아이들 두 명당 선생님 한 분 계신 것보다 선생님이 많네요. 선생님 많은 것도 참 복이에요! (재 핀란드 한글 학교 선생님들 모두 봉사 활동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매주 봉사활동을 해주시는 한글 학교 선생님들께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해주세요. 

이번 학기 개학식에서 했던 말을 인용할게요. 언어는 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창입니다. 면장(面牆), 얼굴과 담장이 마주 보면 멀리 바라보지 못한다. 면면장(免面牆), 담벼락에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을 멀리해야 세상을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이해하고 쓰고 읽으며 면면장(免面牆) 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만든 '채소로 표현한 나' 작품들

 


#나, 한희영  


Q.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 외에도 직함이 있으신데 (웃음) 평소 어떤 일을 하세요? 

지금은 해운 항공회사에서 일해요. 본사는 노르웨이에 있고요. 그룹 안에 여러 가지 선박회사가 있고 그 에이전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 같은 업계에서 일했었고 여기에서 핀란드어를 배우면서 기회가 돼서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죠. 


- 그렇다면 ‘한희영’이라는 사람은 어떤 분인가요?

저는 그때그때 달라요. 제 안에는 여러 가지의 ‘나’ 가 있어요. 가장 크게 느끼는 나는 ‘Ego’와 ‘참(진실된) 나’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나. 저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또 집에서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고, 친정엄마에겐 하나밖에 없는 딸,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 회사에 가면 매니저한테는 부하직원, 동료들에겐 Hiisku(히스꾸)에요. 전 매니저가 제 이름 때문에 붙여준 애칭인데 다들 절 이렇게 불러요. 


Q. 현재의 스스로는 검이불루, 앞으로는 화이불치로 살고 싶다고 말씀해주셨는데 20대에는 어떠셨어요? 

대학교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노는 게 정말 재밌어서 그저 열심히 놀았어요. 열심히 놀다가 막상 졸업하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늦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만큼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늘어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놀긴 놀되 생각하며 놀아야 한다는 걸 졸업하고 알게 됐어요.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했던 자신을 탓했는데, 입시 위주의 교육이 갖는 시스템적 한계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어떤 것에 대해서 누군가 옆에서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이상 알기 힘들잖아요. 졸업하고 나서 1년 동안은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경주로 내려갔어요. 그곳에서 지내니 서울에서 생각 못 했던 나의 위치, 과거, 미래까지 모든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이후에 다시 상경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Q. 그럼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나요? 과연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중학교 때는 아주 예쁜 아가씨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 꿈이 좌절되고 나서는 꿈을 안 꿨어요. 하하하. 솔직히 어떤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어느 사이에 어른이 되어버렸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냥 사회에서의 어른의 모습, 성인 여자가 된 날 발견한 거죠. 다만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이제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껴요. 그 안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또 그 책임과 의무에만 집중하면 자기 자신을 놓치기 쉽거든요. ‘나’라는 존재를 중심에 놓고 여유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어른은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진 정신적인 것들, 물질적인 것들을 가져다가 쓰는 존재고요. 할머니들이 당신 손주 주신다고 주머니에 사탕 넣어두시는 것처럼 아이에게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은 그런 여유에서 오는 것 아닌가 싶어요. 

평일 저녁 카페가 문닫는 9시까지 계속된 인터뷰, Kamppi center의 La Torrefazione 에서 

Q. 요즘 100세 시대라고들 하죠. 100세를 준비하시는 계획이 있나요? 

저는 일주일 패턴으로 살아요. 조금 크게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글 학교의 학기 중심으로 생각했어요. 길게 안 봐요. 조금 더 크게 보자면, 10년 후를 생각하지만, 그 이후는 생각 안 해요. 10년 전 제가 생각했던 10년 뒤의 모습은 지금의 저와 닮았어요. (웃음) 올해 제가 한국 나이로 43세인데, 50대엔 뭘 할지 그런 생각을 지금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은 생각 안 해요. 


- 그러면 100세보다 조금은 더 가까운 미래의 계획을 여쭤야겠어요. (웃음)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못한 것들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핀란드어를 정말 잘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핀란드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는 7년도 안 되거든요. 제가 따로 공부한 게 아니라 사회생활하면서 직원들에게 귀동냥으로 배운 언어라 듣고 이해는 하지만 의사 표현이 자유롭진 않아요.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밤샘 토론을 해보고 싶어요. 핀란드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제가 재밌는 포인트를 잡고 끌고 넘어가야 계속 대화가 이어지는데 제가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그게 안 되네요. 언어 공부하는 법이야 알고 있지만 쉽지 않아요. 하하. 


Q. 바쁘신데도 읽는 것, 쓰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요. 최근 재밌게 읽은 책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이병한 역사학자가 쓴 ‘유라시아 견문’이요. 저자인 이병한 씨는 지금도 여행 중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읽은 역사책 중에 가장 흥미로웠고, ‘새로운 길을 낸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숨에 읽고 두 번째 책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 책을 읽고 역사학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끈을 놓치지 않는 거예요. 그 끈의 굵기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놓지 않고 계속 가져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읽지 못하더라도 침대맡에 계속 놓아둔 책들이 있거든요. 그 끈을 놓지 않는 거죠. 





 # 한국에서 온, 한희영


Q. 핀란드에 오신지 이제 10년도 훌쩍 넘었죠. 한국에 계신 주변 분들이 많이 물어봤을 것 같은 질문인데, 핀란드는 어떤 나라인가요? 

핀란드는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없어요. 하하. 저는 헬싱키에서만 10년 넘게 살았고 다른 도시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어서요. 헬싱키라는 도시는 여기에 10년째 산 사람으로서 매력적인 도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도시가 작고 인구도 적지만 그 안에 볼거리들이 무궁무진해요. 박물관 종류도 정말 많고, 문화생활 하기에도 좋은, 작지만 실속 있는 도시에요. 


Q. 핀란드 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한국사회 안에서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생활에 대한 판타지가 정말 많거든요. 

자연환경이 가장 힘들었어요. 사계절 환경이 한국과 전혀 달라서 힘들었어요. 어둠이 지속되는 겨울 뿐 아니라, 백야인 여름도 힘들었어요. 암막을 쳐서 방을 어둡게 해도 자면서 빛이 느껴지는데 그게 의외로 힘들어요. 그렇게 여름을 몇 번 보내고 났더니 겨울이 기다려지기도 하더라고요. 그 단계가 지나면 아무 상관 없어요. 그래도 확실히 여름엔 적게 자고 겨울엔 더 오래 자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성격이 긍정적인 편이라 또 그런 부분이 적응에도 많이 도움 된 것 같아요. 


Q. 해외에서 오랜 기간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쉽지 않잖아요. 모국과 거주 국가 간의 이질적인 것들도 있고 자신도 적응하기에 힘든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여기 핀란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무척 노력했죠. 그걸 당연하다고 여겼고 또 그런 의식적인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핀란드어로 사람들과 소통하기로 마음먹고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또 재밌기도 했어요. 몰라서 신경 안 썼던 것들이 아마 있지 않았을까 해요. 핀란드어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다른 것들은 안 보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도 물론 좋았지만 그냥 거리에서 오며 가며 만나는 내린 눈, 피어있는 꽃들, 푸른 나무들을 보는 것도 좋았어요. 이런 작은 즐거움을 알기 시작하면 힘들지 않은 것 같아요. 


Q. 내 나라는 여전히 한국이잖아요. 최근에 여러 가지 이슈도 있었고, 헬싱키에서 학생들이 주최한 촛불집회에서 핀란드어로 성명문을 발표해주시기도 했어요. 한국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어떤지 궁금해요. 

(한숨) 제가 지난달에 한국에 다녀왔거든요. 한국에서 어느 날 아침에 이재용 삼성 회장의 구속이 기각된 뉴스를 봤어요. 그걸 보고 화가 치밀어오르는 걸 느꼈어요. 어떤 분은 그럴 줄 알았다고 했지만 저는 묘한 실망감과 허탈감을 느꼈어요. 국가적 이슈에 그런 감정을 처음 느껴봤어요. 저는 정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정치적 이슈를 모르고 살 수 없더라고요. 그게 다 삶이랑 직결되어 있으니까요. 알면 알수록 정치인들에 실망감만 늘 수도 있지만 절대 그 사실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죠. 해방 이후 70년 동안 한국이 고통스러운 일들을 많이 겪었잖아요. 이제 새로운 시점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지금 위기를 잘 극복해서 좋은 시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제가 멀리 있지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반드시 함께하고 싶어요. 


지난해 11월 12일, 헬싱키에서도 박근혜 탄핵 촉구를 위한 작은 촛불 집회가 열렸다. 핀란드어로 성명문을 낭독 중인 한희영 교장선생님 Photo by Jaeseong Park


Q. 이전 인터뷰이가 물은 릴레이 질문이에요. 3월 12일에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탄핵 문제가 어떻게 되어있을지?) 

교통방송에서 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즐겨들어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전 부장판사 출신이라든가 변호사와 같은 법조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하더군요. 제가 이렇게 질문을 받게될지는 미처 생각못해봤지만, 고국에서 8,000km 멀리 떨어진 변방에 사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드는 생각은 유유히 흐르는 저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거스를 수 있을까 싶어요. 만약 3월 12일 결과에 대해 내기를 건다고 하면 저는 탄핵 통과에 천오백원 걸겠습니다. 하하.


Q. 다음 인터뷰이에게 묻고 싶은 질문 하나 해주세요. 

좋아하는 글귀가 어떤 건지 묻고 싶어요. 


- 그 질문 저도 여쭤 볼게요. 좋아하시는 글귀를 소개해주세요. 하하. 

학이시습지불역열호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먼 데서 벗이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이것은 군자의 덕이 아니던가. 

공자님 말씀이에요. 읽을 때는 좋은 말씀이지만 기억하진 않는 글이었는데 한국에서 절에 가면서 계속 눈에 부딪히는 글들이었어요. 이 글귀가 한글 학교 활동을 하면서 많은 위로가 됐거든요. 남들이 내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하거나 억울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위로가 많이 됐어요.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함축적인 이 짧은 글귀에 위로를 받아요. 속상한 감정들이 나를 해치는 화살로 돌아오곤 했었는데 이 글귀들이 치유제 역할을 해주더라고요. 


Q. 마지막으로 묘비명에 쓰고 싶은 문구에 관해 물어 볼게요. 남기고 싶은 문구가 있다면? 

절 200배를 매일 매일 해보세요. 지금 제 상태로서는 곧 죽는다면 그렇게 쓰고 싶을 거예요. 


- 108배를 매일 아침 해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제가 108배로 시작했거든요.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에 3개월 걸렸어요. 땀도 나고 힘들더라고요. 3개월 지나고 나니 매일 하는 데에 적응했고, 1년이 지나니 땀이 안 나더라고요. 몸이 적응하는 거죠. 여기에서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언어적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속에서 막히는 느낌이 들어 제 나름대로 찾은 방편이에요. 108배를 하면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려요. 그렇게 하고 나면 눈과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운동 겸 시작했는데, 익숙해지고 나서 200배로 늘렸어요. 30분 정도 하고 나면 땀이 나면서 뻐근했던 것들이 풀리는 느낌이에요. 한 번 해보세요. 하하. 추천합니다.

5월, 헬싱키 마라톤을 완주하고 메달과 샴페인을 받은 후!
  핀란드에 와 지내며 전에 사귀지 못했던 다양한 친구들을 많이 사귄다. 학교의 다른 국적의 친구들 뿐 아니라 한글 학교의 아이들,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까지. 내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감사한 기회 속에서 살고 있다. 희영 선생님과의 인터뷰로 이런 내 생각을 더 견고히 하게 되었다. 그녀는 필경 '검이불루'의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만의 속도로 하나씩 하나씩 원하는 것들을 쌓아나가고 있는 모습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잘 정돈된 삶의 형태로 보였다. 게다가 아이들과 사회를 생각하는 넓은 마음을 바탕으로 나는 분명 그녀가 '화이불치'의 삶을 맞이할 것이라 믿는다. 마흔살을 공자는 불혹이라 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나의 사십대가 희영 선생님처럼 중심이 있는, 올곧은 모습이길 기대해 본다. 


사소한 인터뷰 (talktalktv.blog.me)

(Facebook https://www.facebook.com/talkinterview)
(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sasointerview/)
(brunch https://brunch.co.kr/magazine/sasoin)


본문링크: http://blog.naver.com/talktalktv/220944171846

매거진의 이전글 '하는 쪽으로' 결정을 하는, 김주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