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May 28. 2019

오리노코강에서 기다림에 지쳐있는  둘째에게

'안녕' 하고 인사는 보내지만...                                 2013.03.01


  맨날 같은 오리노코강 중의, 별 다름없는 분위기 속에서 눈을 뜨고 감는 하루하루를 이미 석 달 가까이 뭉개듯 지내고 있으려니 짜증만이 배가하고 있겠구나.


  게다가 들리는 소문이라곤 하나도 올바른 것 같지 않은 일방통행 적인 이야기만 난무하는 분위기 속이니, 시시각각 달라지는 마음의 행로에 따라 여간한 불편 속에 생활하고 있겠구나 미루어본다.


  그러나 너와 나 사이에 벌어져 있는 지구상의 거리감이 미처 그런 감정의 흐름을 알면서도 무디어하는 점도 많은 것 같아, 너무 너한테 소홀히 대한 게 아니었나 잠깐 주위를 살피는 기분도 가져본다.


 결국 그 모습, 그런 분위기를 나 역시 감지하여 어떻게 하면 너의 그런 고달픈 현실에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속내를 너에게 전해줄까 잠깐 고민하며 이 편지를 쓰는 셈이란다.


  우선 먼저 그동안 뜸해 있던 집안 소식부터 전하마. 


할머니,  듣는 청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때로는 의사소통이 점점 어려워 짐을 느끼곤 한 단다. 할머니가 편히 들으시게 하려면 싸움(?)하듯 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어려움 때문이긴 하지만 정신 상태나 다른 건강 상태는 연세에 비하면 아주 많이 정정하신 편이시니 크게 걱정하지는 말거라.


 네 형, 오는 5월경이면 지금 다니고 있던 공방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구나. 그때가 되면 공방 선생님이 저 멀리 문경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같이 따라갈 수가 없으니 그만두어야 하는 입장인 거지.

  

 어제 그 선생님이 형더러 개를 한 마리 주시며 키우라고 권해 왔는데 자신의 친지가 아파트에서 키우던 검은색 코카스파니엘 종으로 4살 정도 된 암컷인데 부인이 임신을 해서 같이 키울 수 없게 되어 보내온 것이라 더구나. 


  개를 좋아하는 우리 집이니까 키우고 싶은 생각이야 많이 생겨났지만 먼저 온 몽실이가 있어 아직 엉거주춤하니 결정을 못하고 있단다. 개 한 마리를 더 키우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여유도 생각해야 될 거란 이유가 슬그머니 떠오르는 분위기가 좀 그렇구나...


  엄마의 마음은 지하실에서 키우며 보살피는 게 어떨는지 하는 데까지로 물러서긴 했는데, 그건 또 네 동생의 소관이 되는 거니까...


  그 막내가 요즘 유로 컴퓨터 교육시키는 거로 시간을 내고 있는데 다른 일거리들이 별로 많지 못해 고전을 하고 있지. 여러 가지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게 보이지만 아직은 모른 척하며 지나고 있단다.


  엄마가 하는 일, 점점 더 어려워지니 다른 일로 바꾸고 싶은 생각도 슬며시 들기도 하지만 딱히 할 일도 나이를 생각하면 이미 지나간 거라 감당할 자신이 없어지니 그 점이 너무나 서운하게 만드는구나.


  나, 친구가 좋아서 그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지만 더치 플레이로 하는 그 일도 한 번 씩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는 경우도 유념해야 하는 형편이 생길 때 좀 씁쓸해지기도 하지... 


 남은 시간에는 틈틈이 인터넷에 들어가 성당 홈피에 글 올리기를 하며 소일하고 있지. 

너도 연가 중에 그곳에 가입하여 우리 집 여섯 식구 중 할머니를 뺀 다섯 명 모두가 자신의 블로그를 가진 사람들로 가입하여 활동하는 멋진 모습을 교우들에게 보일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성당과의 관계된 기록 중에는 가족 세 사람이 한 꾸리아의 Pr. 들에서 활동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지...


  이제 네 이야기로 들어 가보자.


  현재 너의 생활 형편은 광활한 바다와 통해 있어 무한히 넓은 탁 트인 공간 속의 삶이라서 모든 스케일이 크고 마음 또한 너그럽게 사는 형편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선상 생활 속이지.

그러나 실제적인 모습은 누구나가 생각하듯 그렇게 넓은 아량을 가진 상황에는 결코 미칠 수 없는 좁은 환경이란 걸 나는 뼈저리게 알고 있단다.

 사진 : 멀리 오리노코 강 투묘지에 정박하고 있는 배들의 모습이 보이는 윙 브리지.



 주위가 넓고 광활하면 뭐 하겠니?  

제 아무리 커야 기십만 톤에 머무르며 그나마 넓은 바다 위에서는 작은 일엽편주 밖에 안 되는 선박이란 물체에서, 그 트임의 바깥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관문인, 갑판으로 통한 문 만으로 바다와 하늘과 맞서고 있는 거잖니?


 사실 나도 승선 생활을 하던 때에는 그 좁은 선박의 출입문에 매인 몸 되어 일과를 추스르다 보니, 마음이 넓어질 것을 요구받는 상황에서도 결코 넓혀질 수 없는 분위기에 애달파하기도 했었지.... 


  다시 말해 승선 고유의 업무를 행하려고 할 때에 가해지는 불평불만 상황은 비좁은 공간과 시간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일이란 것으로 요즘 너희 배가 겪고 있는 무작정 기다리는 형편도 그 대표적인 일 중의 하나이겠지.


 그러나 사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기다리는 것도 결국은 해운의 큰 특성 중 하나이며 불황 중이거나 국지적인 호황 때에도 이따금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거란다. 


 아주 어려운 불황이 해운계를 찾아오는 일은 지금까지도 수없이 반복되어 온 어쩌면 주기적인 일 일 수도 있단다.


이렇듯 원하지 않지만 찾아온 어려운 형편에 대해 어찌 대처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을 경영인과 피고용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첫째 해운 경영자들은 그 어려운 형편을 딛고 일어나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어찌 행동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결단해야 할 것이고 결국 불황을 이겨내어 살아남는다면 그 반작용의 급부는 그런 만큼 커지는 것이 되는 거지. 그 역시 경영자 나름이긴 하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경영에 참여하는 입장이 아닌 상황에선, 우리 권리를 찾아 챙기는 일을 소홀히 하지도 않아야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행동이 경영 악화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가급적 삼가주며 일단은 그들(경영인)이 불황을 헤쳐 나가며 이겨내는데 힘을 보태 주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구나.


 둘째 피고용인이지만 해운의 선두에 앞장서서 움직이는 우리 선원들이 직접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를 생각해 보자꾸나. 장기간 대기로 인해 모든 선체 능력이나 선내 분위기가 저조해진 상태에서 승조원들의 마음 가짐은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경향으로 흐르기 쉬운 게 인지상정이지만 말이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며 하나씩 분석하여 매사에 어찌 대처해야 할까를 곰곰이 점검해 보기로 하자. 여기서 최종적으로 실행하 고픈(바라는) 결과를 미리 정해 놓고 그에 맞추려는 오류는 범하지 말고 그야말로 정확히 현실을 파악하여 그 안에서 각각의 최선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보자는 뜻이다.


  될수록 감정적인 대안은 절제하고 주어진 모든 여건 중 취해서 가장 좋은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사다리 타기 같은 방법으로 보이지만 결코 그런 운명적인 결과물로 서가 아니라, 개척해 나가는 묘미가 곁들인 멋진 목표치가 기다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답답하고 초조하고 또 감정적으로도 날카로워진 너의 배 안의 현실에서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것은 그곳을 될수록 빨리 벗어나 고픈 생각뿐일 거란 점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선을 이행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일까? 도 여러모로 생각해야겠지.


  조금의 아니 그냥 손해를 본다 싶더라도 그 손해를 감수하여 어느 정도 양보를 하였을 때 나중 가질 수 있는 이익도 견주어 볼 수 있겠지. 


이 모든 것을 스스로를 믿어주는 믿음 안에서 상황을 이해하면서 짚고 넘어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더하여 이렇게 주어진 결론이 어찌 도출되든, 그 결론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소요되는 모든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에 꼭 덧붙이고 싶은 말, 그것이 오늘 내 이야기의 중점 포인트인 것이다.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순간들이지만 그런 짬이 이어지면 긴 시간이 되는 것이니, 그렇게 길어질 시간을 토막으로 소모하지 않고 인생에 보탬이 되는 긴 시간 되게 쓰려면 마지막 결과의 시간이 올 때까지 일관된 생각 아래 허비하는 순간이 없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이 종종 드는 요즘이다.


  요사이 옛이야기를 챙기려다 보면 예전 그 어느 순간에 나는 왜 그냥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고 시간만 허송했는가? 하는 후회를 종종 하게 되더구나.


  그때 이러저러하게 메모라도 해 두거나 사진이라도 제대로 찍어 둘 걸 하는 후회에서부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놓친 여러 가지의 소소한 일들이 그냥 마구잡이로 손을 치고 혀를 차게 만들 더구나, 하지만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게 지나 가버린 것. 


  너도 너의 이야기를 써 볼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런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네 이야기에 맞추어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는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시점에 도달한 걸 발견할 수 있을 거다. 내 쓰라린 경험담을 사족으로 다는 이유이다. 


  그런 준비를 가지고 나중 비행기 타는(귀국의) 순간을 맞이한다면 틀림없이 뭔가 이루어 놓은 풍족한 마음 때문에 즐거움이 절로 생겨나 있을게다.


 자 인생이 바쁜 것-짧은 것-이라 해도 한 번쯤 멈칫하니 주위를 살피며 나가야 할 부분도 있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해 두자꾸나. 너무 초조하게 하선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한 걸음 쉬면서 주위를 살피며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불황이 온 지구를 덮치고 있는 상황이라 우리나라도 그 위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상황이란다. 네가 진급해야 할 시기가 지난 것은 불평할 만한 억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당장 진급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도 아니잖니?  


  하여간 너의 귀국 시일이 늦어지더라도 해기사 자격에 관한 기간 만료 등의 일에 회사가 너의 귀국 후에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너한테 불이익이 오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 두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제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너의 생각과 결정에 달렸음을 다시 확인시켜주며 끝을 내려한다. 


늘 건강하거라. 집에서 아버지가 모든 가족들의 마음을 같이 실어서 보낸다. 


 둘째야! 우리 모두 너를 사랑한단다.

 추신: 오이(코카스파니엘 검정개)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아가도록 결정되었다. 이름이 오이란다.


공방에 처음 와서 떨고 있던 때의 모습들인데 지금은 많이 명랑해지고 막내를 제 새 주인으로 여기며 잘 지내고 있단다.

이전 17화 어느 고교생의 결혼 걱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