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May 05. 2019

은퇴식을 치르는 도선사

오늘 유로포트 입항 중,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2.09.22


로테르담에 접근하며 받은 교신 내용이 처음엔 좀 황당했습니다. 도선사 승선시, 여섯 명의 인원이 본선에 오른다는 교신을 받았던 것입니다.


 통상 도선사는 혼자 승선하거나 많아도 두, 세 명(그나마 하나 둘은 연수생)인 경우가 많은데 여섯이라니. 하여간 평소와 다른 내용을 듣고 향한 파일럿 스테이션에서 정말로 여섯 명의 사람들이 본선에 올라 오더군요. 


오늘, 은퇴하는 도선사 DE HAAS씨. 온 가족이 승선하여 가장의 마지막 일을 함께 하며 지켜 본 것이지요. 

그것도 넷은 여성에 한 명은 ENG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도선 차 승선하는 도선사 DE HAAS 씨는 오늘 우리 배를 마지막으로 30여 년의 도선사(파이로트) 생활을 은퇴하는 사람이었고 같이 승선한 네 명의 여성은 그를 평생 내조해온 아내와 세 딸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은퇴를 기념하고자 로테르담 항만은 항만 방송을 통해 그의 마지막 승선 임무를 취재하였고 가족들은 본선의 선교에서 그의 마지막 도선을 지켜보게 된 것인데..... 


항만으로 들어가는 동안, 만났던 모든 선박들이 그의 30년을 우렁찬 기적소리로 축하해 주었고 예인선들은 떼로 몰려나와 사진처럼 물을 뿌려대며 그의 마지막 도선의 길을 축하하며 안내해 주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기념의 한 복판에 놓인 우리 역시 그와 굳센 악수를 하며 그의 마지막 도선을 본선에서 장식하게 된 것을 영광이라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해주었죠.

로테르담 항만의 터그보트가 퇴임을 축하하고 있다

                                                                                                          


오늘은.. 아니 어제는 이렇게, '은퇴'라는 것을 조금 더 무덤으로 가까이 가는 것처럼 말하는 많은 이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보여준 날이었습니다, 모쪼록 그와 그의 가족의 앞날에 늘 행복이 함께하기를 빌어 주었습니다. 

Rotterdam Europoort에 접안하는 본선에서 은퇴를 맞이한 DE HAAS 씨와 그의 가족들.

                                                                                                            

제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려둔다고 주소를 알려주었더니 원본은 이메일로 보내달라며 주소를 알려주더군요. 젊게 사는 영감님, 은근히 센스쟁이셔. ^^  



도선사 DE HAAS씨와 그의 막내딸이 선교에 서있다

 대서양을 건너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2012.09.23


 늘 바쁜 도버해협을 통과하여 북해로 들어선 후, 네덜란드의 유로포트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축하한다.

거기에 더해서 부두에 접안하면서 한 도선사의 명예퇴직 광경을 옆에서 생생히 지켜보게 된 점도 어쩌면 너에겐 행운의 경험으로 남을 만한 좋은 일로 치부해도 될 것 같구나.


 사실 그렇게 한 인생의 명예로운 은퇴를 위해 여러 사람이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며 마지막 임무의 수행을 거들어 마치 축제라도 지내는 듯 한 광경이 연출된 것을 보며 너는 어떤 미래를 생각했을까? 좀 궁금해지는구나.


 사람이 평생을 어떤 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수행해 왔음을 인정해주고 격려함은 그 당사자만이 갖게 되는 명예를 돋보이려는 것도 있겠지만, 그에 더하여 비슷한 같은 길을 가야 할 수많은 후배들을 응원하려는 의미도 보태진 것이 아닐까?


 DE HAAS 씨가 너희 배에서 마지막으로 조선하며 받는 영광의 은퇴식(?)에 너희 배가 참석하게 된 것 자체가 어쩌면 한 우물을 파며 살아온 사람의 모습이 무심치 않다는 실체를 너와 너의 동료들에게 알려주려는 어떤 분의 뜻이 있어 그리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믿어 보고 싶구나.


 이렇듯 아무리 작거나 보잘것없는 일일지라도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걸고 한 일에 대해서는 치하해주고 격려해주는 풍토가, 나에겐 이미 행차 뒤 나팔이 되어버린 셈이지만, 앞으로 우리 주위에서는 꼭 필요한 행사로 남아주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오늘 너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좀 더 나아지고 풍요로워질 너의 앞날을 기원하며, 너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그곳에서의 풍물을 즐거운 마음으로 견학해보길 권하며 늘 건강이 함께 하기를 두 손을 모아 간구드린다.

집에서 아버지가.

이전 18화 오리노코강에서 기다림에 지쳐있는  둘째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