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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un 03. 2019

승선 생활 마치며 남기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들은 많은 것 같건만

승선 생활 마치며 남겨 드리고 싶은 이야기들


  그동안 여러 번의 사내 직무교육 참여로 정다운 곳이 된 이곳 연수원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안면도 있어 아시는 분도 여러분 계시지만 처음 뵙는 분들도 많은 이 자리를 빌려 어쭙잖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려 눈빛을 빛내고 계신 여러분을 뵈오니 송구스러움에 앞서 참으로 반갑습니다.


또한 이런 자리를 배려해주신 사장님과 회사의 관계 임직원 동료 여러분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사람의 삶은 태어남이 있어 생겨나지만 죽음이란 행사로 완성되는 것이니, 관 뚜껑이 닫히는 순간까지 삶에 대해서 최선을 다 하도록 의무와 권리가 함께 한다고 믿으며 저는 살아왔습니다.


 이제 선상생활만이 유일한 제 삶 같았던 지금까지의 생활을 뒤로한 채 후배 여러분들에게 그 자리를 물러주어야 하는 쉼터에 도달해 있습니다. 배를 탄다는 의미가 막연히 전 세계를 누비며 모험적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사나이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일 것이란 소박한 꿈 만 갖고 해양대학을 찾았던 42년 전인 1961년 초봄의 제 모습이 새삼 그립기도 한 요즈음입니다.


 돌아 보건 데 그렇게 승선 생활을 시작하여 같이 입학했던 동기생들 가운데서 끝까지 승선만을 고집한 삶으로 정년을 맞이한 불과 몇 사람밖에 안 되는 인원 중에 제가 끼워 있다는 사실이 섭섭한 듯 한 정년이란 단어를 오히려 아주 흐뭇하게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청운의 꿈으로 찾았던 마도로스 직업을 끝까지 마무리해낸 이가 너무 적을 수밖에 없는 해운계의 현실이 섭섭한 점이긴 해도, 제 자신은 명예롭게 끝장을 보고 물러날 수 있게 되었다는 완성의 기쁨이 흐뭇함을 주는 일이 된 것이지요.


 이제 반세기에 가까운 해상생활을 영위해온 제 삶의 궤적에서 느꼈던 일이나 아쉬웠던 이야기를 그냥 제 가슴속에 묻어 버리기보다는 현장에 남아 승선 생활을 이어 가실 동료 후배인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려 앞으로 여러분이 만나게 되는 승선 생활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으로 말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제가 사랑했던 승선 생활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 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시하고 구태의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디서건 자신에게 보탬이 되는 일은 찾아내겠다는 신념을 가지신 여러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저로서는 제 소임을 다한 기쁨으로 여길수 있기에 몇 가지 손꼽아 보겠습니다.


첫째로 당신의 생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승선 생활로 즐기십시오.


 세상 어디서든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선상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고의 원인이 인재(人災)라는 통계인 데, 이는 당사자들이 일에 대한 판단이나 행동을 부정적인 안목 하에 행동할 때 가장 극대화되는 걸 제 경험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차피 선상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신은 그 자리에 임시이거나 잠깐 머무르는 제삼자 인양 행동하여 주어진 일을 등한시하는 부정적인 태도의 동료들이 사고의 주인공이 됨을 너무나 자주 보아온 것이죠.


 한길 철판 아래는 천 길 만길 지옥인 것이 선상 생활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생활터전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천 길 만길 지옥 형성에는 막강한 도움이 될지 언정 한길 철판 위 즐거운 선상생활에는 결코 좋은 보탬이 안 된다고 보면 되겠지요.


둘째, 마음을 넓게 가지고 선상생활을 즐기십시오.


 제삼자의 안목으로 보기에 선원들은 항상 탁 트인 하늘 아래의 드넓은 바다 위에 얽매인 것 없이 살고 있으니 마음도 넓고 포용력도 많은 사람 일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옹졸하고 이해심이 부족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느낌을 여러분들도 종종 생활하면서 받았을 겁니다.


 이는 배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바다나 하늘을 보기보다는 당장 생활을 영위하는 배 안-선실 내-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쫓겨 들어간 생활습관이 그런 마음의 소유자로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세상은 내가 베풀어 준 대로 돌려주는 원칙을 갖고 있으니, 모든 일에서, 특히 대인관계에서 넓게 생각하고 탁 트이게 행동한다면 그 돌아옴도 그렇게 넓고 트이게 찾아올 게 아니겠습니까?


셋째, 승선하는 배마다 작은 목표를 정한 후, 하선할 때에 목표의 달성 여부를 확인합시다.


 담배 끊기, 금주 또는 절주, 음주 태도 고치기 등의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려는 목표나, 영어 공부 등 업무에 필요한 보탬이 되는 공부하기 같이 필요하거나 원하는 해야 할 일들을 정 해놓고 승선 중에 꾸준히 이뤄 나가면 연가 하선할 때쯤에 나타나는 좋은 실적의 결과가 당신 자신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기쁜 일로 다가오게 될 겁니다.


넷째로, 제가 승선 중에 실행하였던 <제자리 돌려주기 운동>의 생활화를 추천합니다.


선내에서 사용했던 모든 도구나 공구 등은 사용이 끝나면 즉시 제 있던 자리로 돌려주어 다음에 또다시 사용하려 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리정돈을 습관화 하자는 말입니다.


위의 두 번째까지의 이야기는 마음으로 지켜야 할 덕목이지만 이 세 번째와 네 번째 항목은 몸으로 직접 실천해야 할 행동입니다.


 배 안은 좁지만 세상살이를 축약한 모든 살림살이용 생활도구가 모인, 그러니까 아주 복잡한 곳이지요. 필요에 의해 사용했던 공구를 쓰고 난 후 원래의 곳에 돌려놓지 않으면 후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려 할 때 본 작업에 앞서 공구 찾기에 사용하는 시간 때문에 하려던 작업도 지지부진되고 안전사고를 낼 수 있는 확률도 높이게 하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경험했습니다.


작은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한낮에 더위나 하여간 어떤 이유로 갑판상의 SCUTTLE(현창)을 열어 놓았다가 다시 닫아주지 않은 채 무심히 그 자리를 떠나 그대로 방치했을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한밤중이 되었을 때 갑작스러운 악천후 등으로 빗물이나 해수가 열린 개구부를 통해 침투하게 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신을 포함한 모든 승조원들의 힘든 몫으로 되는 게 아닙니까?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사람도 당신이고, 다음에 쓸 사람 역시 당신일 수 있는 것이니 후일의 편리한 대비를 위해서도 <제자리 돌려주기 운동>만큼은 몸에 밴 습관일 것을 권유드립니다.


두서없고 조리 없는 말로 여러분의 심금을 어지럽히지나 않았는지 재삼 송구스럽습니다.  


이제 작별의 인사를 드리며 저는 <성이 전가이니까> 영원한 전(田) 선장으로서 여러분들을 지켜보며 함께하려는 그야말로 전(前)에 있었던 전 선장이 되겠다는 약속을 드리며 조리 없는 제 말을 접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2003년 02월 13일 선장 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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蛇足 : 위의 제 소견을 포함하여 제가 배를 타던 시절의 상황은 이미 고색창연한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은 바쁘고 변화가 많은 현실이긴 합니다. 그래도 항해에 비유되는 인생살이는 계속되는 것이기에 앞으로도 <Cape Horn을 돌아가는> 제 이야기는 이어가도록 해볼 작정입니다. 

 대를 이어 승선하는 제 아들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겠거니~ 뱀꼬리를 그려 가며 덧 붙인 글로 남겨두는 이유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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