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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y 21. 2019

어느 고교생의 결혼 걱정

메인 갑판에서 만난 무지개


  앞날이 창창한 인생 항로에서 참으로 중요한 일중 하나인 -결혼-에 대해 이제 피어나려는 청춘이 가질 수 있는 바람과 그에 따르는 어려움까지 살펴보며 자신도 모르게 찾아드는 두려움을 곁들여 물어 온 아래와 같은 쪽지를 받았다.

캐나다의 밴쿠버항


 --- 암부럽소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에 입학 예정인 고3 학생입니다. 


   저는 매우 큰 고민이 있습니다. 항해사가 되면 결혼을 어떻게 할지가 정말 고민입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웃으며 넘겨버리지만 전 이것 때문에 해양대학교에 진학할지 말지를 수없이 고민하고 정말 힘들게 결정하였습니다. 


 배를 타러 나가면 정말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되는데요. 그동안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단 말입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릴 것 같고 의처증도 생기고 결국엔 가정이 파탄 날 것만 같습니다. 이런데 어떻게 결혼을 하겠습니까? 정말 걱정입니다. 


 암부럽소 선배님, 도대체 제가 나중에 항해사가 되어서 이런 걱정을 안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육상직으로 바꾸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건가요? -----


 우선 이 물음들에 대답하기 전에 결코 웃으며 가 아닌 진지한 표정 만들며 제 형편을 잠깐 돌아봅니다. 


 나는 해양대학을 졸업 후 NROTC로 2년간 해군 장교로서 군 복무를 한 후 해운공사에 입사하여 승선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승선을 시작한 후 2년이 지날 무렵 결혼을 하여 이번 2월 22일 이면 결혼 44년 차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가 결혼 생활을 시작한 1969년쯤엔 많은 젊은이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중동으로 세계로 물밀 듯이 몰려 나가던 인력 수출이 활발히 시작되던 시절이었기에, 세상사 어떤 일에도 있는 음지쪽으로 살폈을 때, 이따금 풍비박산이 된 어느 가정의 슬픈 이야기 역시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일도 간혹 있었지요. 


  아무리 그런 험한 세상이지만, 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결혼자들은 별 탈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여 살아왔고 그들을 헤어지게 만드는 것은 하늘의 뜻인 죽음이 갈라서게 하는 일 이외에는 없었던 것도 진실이었습니다. 그만큼 건전하고 건실한 가정이, 깨어진 가정보다 월등하게 더 많았다는 이야기이죠.


 그러니 여기서 결코 연속극의 갈등을 조장하는 식의 상상은 배제하고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지금까지 저의 결혼 생활이 마냥 즐겁고 살 맛나는 일만이었을까요? 

단언하 건데 절대로 그렇지만은 않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질문한 이가 걱정하듯, 제 결혼 생활이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이 문제일 수는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는 논리 역시 맞지는 않았던 것이죠.


 사실 <허가받은 외박자>로 집을 떠나 사는 생활이 때로는 서먹서먹하고 어딘가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다시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반갑고 사랑스럽기만 한, 쉽게 이야기하여 언제나 신혼생활 같은 애틋함 속에서 살았다고 자랑할 수도 있었던 것이죠.


 세상엔 바다로 나간 남편을 도외시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아내 자리 역시 없지는 않았겠지만, 실상 그런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좀 유별난 사람이라 그랬던 것이지, 그가 뱃사람의 아내였음에 그랬던 건 절대로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판단 하에 그런 비도덕적이거나 인륜을 배반하는 일은 안 하리라 굳게 믿을 수 있는 상대와 결혼하게 된다면, 현재 고민하는 당신의 생각들은 그냥 기우로 만들어지게 되는 거죠.


 따라서 당신의 올곧은 판단으로 여자를 만나고 일단 그 모든 조건을 유념하며-그중의 제일은 역시 사랑이죠-결혼을 한다면, 언제나 떨어져 있는 생활이 더 애틋하고 사랑이 넘치는 시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기에 쌍방이 같이 노력만 한다면, 육지 에서와 같이 권태기니 뭐니 하며 토닥거릴 수 있는 순간도 없는 그야말로 영원한 신혼 같은 새록새록 한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을 내가 증명했다고 보아주세요. 


 그러니 결혼의 한 축을 담당한 당신이 승선 순간순간을 제대로 즐기며 소화하여 맡은 바 책무를 완수하는 해상생활로 일관해 준다면, 괜한 불안에 떨 수 있는 다른 한 축인 배우자의 근심과 걱정도 말끔히 해소시켜서 일거양득의 인생 항로를 운영하는 멋진 마도로스가 될 거라고 난 믿는 것이죠.


 여기서 너무 과민하게 결혼생활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보다는 앞으로 치러내야 할 승선 생활에 대한 태도가 더욱 중요한 일임을 밝혀주고 싶네요.


 육지의 자리에서도 그렇겠지만, 특히 승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리가 맡은 바 주어진 해야 할 일인데,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어가며 언제라도 쉽게 떠날 수 있는 자리-직업 등등-라고 치부하는 덜 떨어진 직업의식을 가진  답답한 사람을 만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저들 나름대로 승선직을 떠나 육지로 자리를 옮겼다 해서 거기에서 좀 더 나은 자리매김을 했냐 하면, 절대로 그리하여 성공했다는 사람도 보질 못했습니다.


그런 유의 마음가짐으로 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성공이란 단어는 영원한 신기루일 뿐입니다.


 그러니 꾸준히 한 우물을 파는 기백으로 승선 중의 모든 일에 대처한다면 더 바랄 수 없는 해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항상 무언가 에 쫓기듯, 아니면 피하려고 우물쭈물 거리는 태도로 승선 중의 일과 만나지 말고 스스로 찾아내며 닥친 일을 순리대로 풀어내어 힘든 고비를 넘기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완수 감과 안도감을 즐기며 언제나 기뻐하는 생활로 마도로스의 길에 들어서기를 바랍니다.


 아참! 육상직으로의 전환은 승선 생활과 밀접한 해운회사의 직무로 변환하는 것도 괜찮지만, 승선과는 좀 다른 축인 해운 영업 쪽으로 깊게 파고들어 공부하고 나서는 것도 도전할 만한 일이죠.

 어느 쪽에서 근무하던 승선직에서 경험한 여러 가지 노하우가 좋은 보탬을 줄 수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하늘의 구름 모습


 이제 조그마한 조언 아닌 조언을 끝내며, 우스개 소리 삼아 몇 마디 덧붙이며 끝을 내렵니다.


-동서양 넘나드는 무역선의 고향은~


-아아 아아 잘 있거라 부산 항구야~~~


-쌍고동이 울어 대는 이별의 인천항구~


-의리에 죽고 사는 바다의 사나이다~


-항구의 사나이는 하룻밤 사랑이다 인천항도 부산항도 내 살 곳이 아니라면~~


여기까지 읽으며 무슨 이야기를 덧붙이는 거라 느꼈습니까?


 마도로스가 아닌 세상 사람들이 마도로스를 보는 눈길을 이야기한 내용이지요. 어쩌면 항구다, 사랑이다 하며 마도로스의 꿈과 생활을 노래한다는 유행가요 5곡의 가사 첫머리를 뽑아 본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건 그냥 유행가일 뿐 결코 그 안에서 마도로스의 멋진 폼이라 여기며 빠져 들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을 보여주는 낱말들의 열거일 뿐이라고 알리고 싶어 적어본 겁니다.


 배를 탄다는 것은 마도로스들의 숙명적인 생활이지 결코 관광꾼들처럼 흥청이고 껄떡대는 교만을 품은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냥 들어서 즐거운 멜로디로 흥얼거리는 것이야 말리지 않겠지만, 생활로 닮으려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부탁을 하고 싶어 덧붙인 사족입니다. 


 그나저나 위의 노래들 제목은 제대로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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