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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2. 2021

어느 신조선의 처녀항해 야사

바다의 주인(Ocean Master), 장도(長途)에 오르다

배를 새로이 건조, 조선소로부터 인수한 선장부터 조리수까지의 인원이 팀워크를 이루며 첫 항해를 시작 두 번째 항해까지의 기간에 예정된 화물을 싣고 양하지까지, 항해나 정박 중에 선내에서 일어난 일들이죠. 


선명이 <오션 마스터>호라는 배의 시작에 어우러진 야사로, 1995년도의 이야기입니다.

시운전 중이던 Ocean Master호

<바다의 주인> 드디어 대양으로 나서다.

오션 마스터(M/V OCEAN MASTER)호는 지난 4월 28일 거제도 삼성조선 안벽에서 성대한 명명식(한국전력 최대영 부사장 부인 손안자 여사가 명명 테이프를 절단)을 가진 후 범양상선에 인도되어 동월 29일 09시 안개 낀 진해수로를 빠져나와 남아공화국의 리챠드 베이까지의 7200여 마일의 장정에 올랐다. IMO No. 9108685(*주 1), Call Sign - D7SY(*주 2)의 고유한 정보를 부여받은 Cape size(*주 3)의 벌크로 당시 삼성조선에서 조선했던 가장 큰 덩치의 선박이었다.


선원 19명 - 선장 전희태(53), 일항사 김봉욱(33), 이항사 박영석(25), 삼항사 정경진(23), 기관장 주경석 (38), 일기사 엄대열 (36), 이기사 박한식 (25), 삼기사 하회덕 (23), 통신장 김희수 (38), 직장 김표섭 (50), 운항수 신대준 (47), 운항수 송진태 (38), 운항수 김성훈 (22), 운항수 이수갑 (47), 운항수 김병문(42), 운항수 장영환(35), 운항수 황용수(31), 조리장 김복록(49) 조리수 강현철(37)}씨가 승선했으며 승객으로 삼성조선의 보증 기사인 배현근(26) 기사, 권필규(38) 반장, 김일(35) 반장, 진석명(23) 씨가 동승하였다.


리챠드 베이에 도착, 투묘하다.

처녀항해의 모든 어려움을 딛고 해적들이 날뛰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순다 해역도 무사히 지나며 순항을 이루었고 목적 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리챠드 베이에는 5월 19일 0415시에 도착 투묘하였다.


대한민국의 항구가 지구 반대편에 생겼나

5월 22일 리챠드 베이 301 부두에 본선이 접안하고 있을 때 바로 뒤인 302에는 필리핀 마닐라 선적으로 필리핀 선원들이 승선하고 있는 조양상선의 'TRANSGIANT 호'가 묶여 있고, 303에는 거양해운의'GOODWILL'이 마지막 304에는 현대상선의 '현대 코스모스'가 접안하여 석탄을 선적하고 있었다. 완전히 한국 배들로 판이 짜졌으니 한국의 항구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리챠드 베이 출항하다.

5월 20일 1500시 접안하여 예정된 선적량인 133,347 M/T(*주 4)의 석탄을 싣고 1995년 5월 22일 1910시 출항하였다.


우린 불효자가 아닙니다.

본선 운항수 신대준 씨의 부친이 지병인 간암과 투병 중 별세했다는 전보문이 항해 중이던 5월 23일 접수되었다. 이역 멀리 바다 위에서 친족의 부음을 전해 듣고도 참석 못하는 그 설음을 누가 속속들이 알 수 있습니까? 오션 마스터 전 승조원은 모두 자신들의 처지를 절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적도제(*주 5)를 지내 용왕 님께 신고하다.

6월 8일 16시 남지나해의 잔잔한 바다 위에서 본선의 무사안항을 용왕 님께 비는 첫 번째 적도제를 지냈다. 모두들 엄숙한 마음으로 본선의 안전항해를 기원하며 기다란 기적소리를 수평선 너머로 띄워 보냈다.


오션 마스터호 긴급 통신 봉사하다. 

한국 배 있습니까? 6월 8일 정오경 VHF CH.16(*주 6)을 통해 '한국배 있습니까'하는 간절히 부르는 전파에 응답하고 나가보니 우리 회사 같은 2선단에 속한 자동차전용선  AUTO BANNER호였다. INMARSAT-C (*주 7)송수신기도 고장나서 본사와의 통신이 두절된 상태로 일본의 목적지 대리점에 연락을 하기 위한 최후수단으로 한국 배를 불러서 전보 부탁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본선과 연락이 되었다. 서둘러 서로의 위치를 확인, 비교해보니 VHF 전파 도달거리를 훨씬 넘는 100마일 정도 떨어진 상황인데도 잘 들려준 것이다.


그로부터 그 배에서 발, 수신되어야 할 전보를 본선의 김희수 통신장이 맡아서 발, 수신했는데 우리가 고정 항에 입항한 후에도 일본의 대리점에서는 AUTO BANNER로 가는 TELEX(*주 8)를 계속 보내와 본선의 사정을 설명하고 반송하였다.


초록 색깔 없는 환경은 너무 삭막하다.

6월 10일 국내 입항을 대비한 선내 위생점검을 실시하다. 점검관인 선장은 청소는 그런대로 수준 급이나 하다 못해 방안에 양파 한 개 라도 컵에 올려 조그마한 초록빛을 만들어 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너무 삭막한 느낌이 든다고 점검 결과를 평가하는 소감을 밝혔다. 


본선 사랑의 무료 이발사는 이수갑 씨

출항을 하고 장기 항해에 들어서게 되면 제 혼자 잘 자라는 머리카락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우리들의 모습을 장발로 만들어 준다.

대부분의 배에서는 이럴 때 머리를 깎아주는 동료 봉사자가 나타나는데 본선은 출항 후 열흘이 가까워져도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장발로 입항해야 하는가 은근히 마음 졸이던 중 혜성 같이 나타나서 긴 머리를 조발해주는 사나이가 있었으니 바로 운항수 이수갑 씨였다.

물론 배를 타면서 독학으로 실습하며-우선 깎아보는 실전으로-배운 솜씨이지만 긴 장발의 덥수룩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보다는 한결 산뜻한 미남으로 변할 수 있으니 많은 사랑으로 이용 바랍니다.


사전료(私電料) (*주 9)납부계의 새로운 강자들

금 항차의 개인 사전료 납부 성적 제일 위는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2항사 박영석으로서 무려 W 100,160을 수당에서 공제 당하였단다. 2등은 항상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일등을 달리던,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한 기관장이 W59,092으로 체면 유지했으며 3등 역시 다크호스로 새로운 세대의 정경진 3항사가 W41,694으로, 4등은 W40,159의 일항사 김봉욱 씨가 5등은 남의 전화를 연결 해주다 보니 자신도 전화를 걸게 되어 요금을 올린 통신장 김희수 씨가 W24,416으로 차지했다.

당분간은 그 누구도, 한창 사귀는 사람들과 열을 올리고 있어 기회 닿는 대로 전화를 거는 이, 삼항사의 사전료 납부 순위를 넘보기가 어려울 듯. 그렇지만 노털들이여! 분발(?)하여 다시 일등을 놓치지 맙시다.


고스톱 계의 대부는?

저녁마다 벌어지는 가고, 서는(고스톱)게임에서 잃었다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땄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허나 말없이 고스톱계 도사님이 되신 분은 송진태 씨라고 모두의 입들은 한 소리를 낸다.


비둘기 집(?)으로 만들려던 건 아닌데 

오션 마스터호에서 선원들 보고 가장 싫은 것을 손꼽으라면 오랜만의 귀항에서 가족들이 방선하여 기쁜 재회를 하면서도 혹시 옆방에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신경 쓰여 큰소리를 낼 수 없는게 짜증 난다는 단서들을 달면서 거실 간의 방음 부실을 제일 먼저 내 세운다. 일주일에 한번 모처럼 소주 한 잔이 식사와 곁들여지는 어느 날 삼성의 보증기사와 본선 선원들이 어울려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선원: 우리 방들 사이의 방음설비 그거 해도 너무한 것 아니요?

삼성: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표정으로) 사실 좀 그런 것 같아요.

선원: 옆방 숨소리도 들릴 지경이니,그래도 선,기장 방은 안 그렇겠지요?

삼성: 아니, 마찬가지예요.


바로 삼성기사들은 선,기장 방과 이웃한 실,항기사 방에 승선 기간 중 머무르고 있었으니 누구보다 잘 아는 상황으로 바른 대답을 했고 그 대답은 선,기장 방이 그러니 다른 방들은 보나마나 한 상황이란 말과 마찬가지였다. 부부 금실이 좋은 새인, 비둘기 같이 사랑하며 살아가길 원하는 선원들이지만 그래도 생활하는 공간이야 사람 사는 것 같아야지 비둘기장 같이 허술하다니 큰소리 치며 회포 풀기는 아예 틀린 모양입니다.

Dry Dock에 올라있던 때의 Ocean Master호.

신발에 발이 달린 건 아닐 텐데 

6월 17일 저녁 식사는, 14일 입항하자마자 몰려 올라와 보증 수리를 하며 벅적거리던 수리 팀과, 회사조선 감독 등의 외부 인사, 모두가 떠나 조용해진 채 우리 선원과 방선(訪船)가족 들 만의 오붓한 시간으로 이뤄졌다.

접안 예정도 다음날 오전 11시 도선사 승선이라는 모처럼의 안정되고 편안한 시간이 되어 가족들과 함께 노래 방에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밤 11시가 되어 기분좋게 해산했다.

18일 아침 식사 시간 방을 나서려던 선, 기장 부인들은, 밤사이에 신발이 발을 달고 제 스스로 외출한 것은 아닐 텐데, 방문 앞에 놔뒀던 자신들의 구두가 모습을 감춰 주위를 샅샅이 뒤져 열심히 찾았지만 허사였다. 

접안 후에도 찾지 못하여 선 기장 부인들은 다음날 집으로 돌아갈 때 신어야 할 임시 신발을 사기 위해 대천시내까지 외출을 하면서, 그래도 커다란 액땜을 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다나…


삼성조선 보증기사 고정 항에서 3명 하선

처녀 항차(Maiden Voyage) (*주10)를 같이하며 선내에서 몸으로 때워 할 수 있는 수리 등을 처리하여 여러 건의 개런티 클레임 상황을 줄이어 삼성조선의 봉사와 이익을 대변하던 신조선 보증기사 4명 중 권필규 반장, 김일 반장, 진석명군등 3명이 고정항 기항 중이던 6월 21일 하선하여 귀가하였다.


배 멀미에 힘 들었던 보증기사 진석명씨

별로 황천을 만난 힘든 항해가 아니었는데도 남아공화국까지 왕복한 처녀 항차 내도록 배 멀미가 보증기사 진석명씨를 괴롭히어서, 몸무게가 몇 키로는 족히 빠졌다고, 고정에 입항한 후에야 안도감을 피력하며 홀쭉해진 모습으로 말하였다.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로 위성 전화 불티 나다

6월 30일 새벽의 단파뉴스를 통해 서울 삼풍 백화점이 붕괴하여 여러 사람이 죽고 다치고 아직도 갇혀 있어 구조를 기다린다는 소식을 접하더니, 간밤의 꿈자리가 어수선 했다던 집이 서울인 선장이 서둘러 위성전화를 걸려는데 그 시간 이미 다른 서울 사람들은 한차례 전화를 걸어 가족 친지들의 안부를 챙기어 가족들 모두가 그 일 과는 관계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대답에 한숨들을 놓고 있었다. 그나 저나 왜 이리도 무너지는 대형 사고가 줄을 이어 대한민국을 강타하는지 답답한 마음들로 모두가 우울하다.

'빨리 빨리' 개발 붐으로 안전은 뒷전에 두고 바쁘게 건설 만능을 부르짖던 6,70년대의 개발 작품들이 그 내구 연한이 가까워지며 당시 안전을 무시했던 보복을 지금에 당하는 게 아닐까? 

이제부터 하는 모든 건설이 안전제일로 함은 물론 현재 안전이 미심쩍은 모든 구조물은 다시 한번 안전을 제일로한 검증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느닷없는 일요일의 전원 소집

호주 뉴캐슬항을 향해 신나게 달리고 있던 일요일인 7월 2일 점심 식사후 시간, 모두가 휴식으로 쉬고 있는데 느닷없는 전선원소집 방송이 울려 나왔다. 웬 일인가 어리둥절해 모인 당직자 2항사를 제외한 18명의 전 선원들 앞에 누군가 엊저녁 목욕탕의 온수밸브를 열어 놓고 잠그지 않아 청수 20톤이 없어진 사건이 발생 했는데 이는 ‘정신을 딴 곳에 놓아둔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있기 때문 입니다.’라는 선장의 발표가 있었다.


모두가 굳어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듣고 있는데 잘못한 사람을 찾는게 아니고 다시는 이런식의 일을 되풀이 하지않도록 각자 유념하여 잘해 나가자는 이야기로 말을 맺고, 덧붙이는 이야기로 알콜 측정기를 수급 받았는데 사용 해야 할 일을 만들지 않도록 협조 바라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 했을 때 측정 거부하는 행위도 벌칙을 받는 행위라고 선장은 못을 박듯 언명했다. 

끝으로 금일의 안전당번인 김병문씨 선창으로 '텃취 앤 콜' -오션 마스터 무재해로 나가자- 세 번을 힘차게 외친 후 해산하였다.


7월 5일 1000시 뉴캐슬에 도착 투묘하다

고정 출항하여 12일 23시간 40분만에 뉴캐슬 외항에 무사히 도착하다. 총거리 4,644 마일. 투묘팀이 '그로발포츈'이 투묘하고 있는 옆자리에 찾아가 열심히 닻을 내리고 있을 때 잽싸게 낚시를 드리워 '양태'를 닮은 고기를 올려 낚시 신고를 한 사람은 '못말리는 람보' 장영환 씨였다. 14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예정이 주어졌으니 낚시라도 잘되는 자리에 투묘하고 싶어 골라서 찾아온 자리라고 선장은 말하였는데 과연 누가 월척상과 다수 포획상 일등을 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


한밤 중에도 펄럭이는 국기들

사우디 아라비아에 기항하면 하루 24시간 내도록 그들의 국기를 메인마스트에 게양하기를 강요 한다. 하기야 비가 오는 것을 볼 수 없는 사막의 기후이니 밤낮을 불구하고 깃발을 올려도 별로 훼손 되는 일은 적으니, 자신의 나라를 과시 해보려는 듯한 그들의 의도대로 우린 초록 바탕에 칼과 코란의 구절이 쓰여진 그들 국기를 올려만 주고 떠날 때 까지 마냥 잊고 있어도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들은 모두 일출부터 일몰 까지만 모든 기를 게양하는 관습과 규칙이니 뉴캐슬 기항한 후에는 호주기와 우리 배의 선적국 깃발인 파나마 국기를 아침(일출) 부터 저녁(일몰) 까지만 올리면 되는데 마치 사우디에 기항한 것같이 24시간 계속 깃발이 날리게 하고 있다.

아침에 정박등을 끄며 기를 올리기 위해 브릿지에 오르고, 저녁에 정박등을 켜며 기를 내리기 위해 다시 브릿지에 가는 것을 선내 순찰하는 일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을 귀찮은 일이라 치부하여 기피하는 당직자들의 불철저 한 당직 태도 때문이다. 해당 정박 당직자뿐만이 아니라 감독 해야하는 갑판사관들도 마찬가지의 당직 불철저 책임이 있다.


끓인 물도 상하는구먼

아침 식사를 하고 난후 입가심을 위해 주전자의 물을 컵에 부면서 그대로 마시었는데 아무래도 입속이 이상하여 다시 한잔 따라 내어 확인 하려는데 쉰내가 물씬 풍기니 코까지 버렸다.

청수도 모자람 없고 전기도 풍부한 본선에서 먹을 물이 없어 그런건 아닐테고, 아무래도 쉰물을 먹고나니 쉰 소리 한자리는 꼭 해야될것 같아 입을 여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치부하며 무심히 넘기지 말고 이후 음용 찻물 관리에 만전을 기해 다시는 쉰내가 주전자에서 나지 않게 해 봅시다. 부탁입니다. 식중독은 무서운 재앙입니다. 또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아마도 집단데모 만날 각오는 해야 될거요.


갑판상에 담배 꽁초가 웬말인가?

신조선의 매끈하고 깔끔하게 페인트 칠이 되어있는 갑판위에 휠타만 남아있는 짧은 담배 꽁초가 아니라 제법 긴 담배꽁초가 여러 개 발견되었다. 

미국에서 검역 검사관이나 USCG (*주11) 임검시 같으면 여지없이 벌금형이 부과되는 상황이 이런 담배 꽁초의 갑판상 방기(放棄)로도 이따금 발생하는데 꼭 그래서라기 보다도 깨끗하고 매끈한 갑판위에다 피우던 꽁초를 던지고 발 뒤축으로 비벼 꺼 흔적을 남기는 심보는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들여다 보고싶습니다. 


변소 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다르다곤 하지만 

정박 중 낚시를 즐기기 위한 여러가지 준비는 잘들 하는데, 막상 낚시를 끝낼 때는 자신이 준비했거나 꺼냈던 물건들을 제 자리로 돌려보내지 않고 그대로 팽개쳐 두는 상황이 자주 발생 하는걸 보니, 확실히 '낚시꾼들은 못 말리는 게으름뱅이' 라고 평소 단정짓는 Z 기관장의 이념(?)을 충실히 반영 하는 것 같다. 계속 서서 낚시하기 힘들다고 꺼내놓고 쓰던 의자를 그대로 두고 떠난 사람, 지저분하게 생선 비늘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칼과 도마 그리고 그릇들, 심지어는 낚시를 그냥 드리워 놓은 채 저녁에 철수해 버려 새벽에 누가 올리기 전에는 그대로 있는 낚시 도구에 있어서는 할 말을 잊어야겠다.

낚시를 즐기는 것도 좋으나, 모든 일엔 ON/OFF 스윗치 사용을 이용자가 일관되게 함께 이뤄야 하는 철칙을 보듬어 시작했으면 끝 맺음도 자신이 마저 합시다.


눈이 먼 고기들은 아닌데

뉴캐슬 도착이후 가장 화창하고 잔잔하고 좋은 날로 만나게 된 7월 8일. 모처럼의 토요일 오후시간 POOP DECK(*주12)로 열성파 구경꾼들의 바람 잡는 등살에 역시 열성파꾼 들이 낚시를 나섰다

.

며칠 동안 두 마리의 겨우 손바닥 크기 만한 도미를 낚아보고 끝이난 상태라"양태라도 좋다 많이만 잡혀라" 하는 심정이던 낚시 현장에 갑자기 와아-하는 생동감 넘치는 함성이 터졌다. 도미가 그것도 제법 씨알 머리가 굵은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잠간 사이에 8마리가 걸려 들어 모두가 흥분하며 당장 생선회를 뜨며 각자가 분담할 일들을 신나게 부산을 떨다보니 어느덧 수북이 쌓인 횟살이 먹음직스럽다.


그래도 현장에 있던 5인 만이 먹기에는 많아 보이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 짤막하게 선내방송으로 POOP DECK에서 도미회 파티가 열렸다고 했는데,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팀들까지 순식간에 모이어 대성황을 이루었고 회는 어느새 바닥을 들어냈다. 바로 옆 0.9 마일 거리에 투묘하고 있던 그로발 포츈 에서는 우리의 신나는 낚시 파티를 쌍안경으로 확인한 선교 당직자가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어째서 자신들의 낚시에는 양태만 서너마리 올라오고 마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VHF 전화를 통해 울려 나왔다는 전언이 선교 당직자로부터 있었다.


처음 찾은 기항인데 파업이라니

신조후 처음 기항으로 찾아왔는데 부두를 관리하는 회사에서 파업이 시작될 기미가 보여 밖에 투묘하고 기다리는 마음들을 우울하게 만들어 준다. 다행히 7월 10일 접수한 접안 엔트리는 변화 없이 15일 오전이라고 못박아 한숨들을 돌렸다. 부식이 떨어져 간다며 H해운 소속 국적선의 3항사가 동기생인 본선 3항사에게 VHF 통화 중 푸념을 하고 있다.


선교에서 모든 선원이 함께 찍었던 단체 사진

전 선원이 함께 기념 촬영을 하다

7월 9일. 본선을 인수한 인수 멤버들인 전선원이 모두 브릿지에 모여 기념 촬영을 했다.

사실 선박이 운항 중일때는 당직 등의 이유로 모든 선원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힘이 드는데, 승무원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같이 사진 찍었다는 것은 기록적인 일로서, 별 어려움 없이 모일수 있던 것은 브릿지 당직자인 2/O의 당직 장소로 모든 선원이 모였고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을 때 샷타를 눌러야 하는 한사람조차 빠지지 않은 것은 마침 자동 샷타 장치의 카메라 때문이 아니라, 조선소에서 승선한 보증기사인 배현근씨가 있었기에 힘들지 않고 가능했던 것이다. 


7월 12일 0030시 '그로발 포츈' 본선 옆을 떠나가다

열심히 기상도를 받으며 날씨에 최대의 관심을 갖는 것은, 피크닉을 가려는 때문이 아니라, 혹시나 돌풍이나 기상 급변으로 본선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걸 경계하기 위해서 인데 가까운 옆자리 동무로 그렇게 함께 있던 그로발 포츈이 WARATTA BERTH(*주13)에 접안하기 위해 11일 한밤중에 닻을 감아 12일 새벽 영시 삼십분에 도선사를 태운 후 항내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아침에 선교에 올라 휑하니 비어 있는 그배 있던 자리를 보며 우리도 빨리 들어 가야지 하는 외로움 같은 허전함을 느낀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본선 노조 분회장에 2기사 박한식 씨 선출

본선 노조 분회가 7월 14일오후 1시에 선원 휴게실에서 전 노조원이 참석한 가운데 초대 분회장에2기사 박한식 씨를 선출하고 금년 봉급인상과 관련하여 7월 급여 수령시 의아하게 생각하게 하는 3월부터의 소급분을 받는데도 수령 액수는 전달 액수 보다도 줄어든 것에 관하여 우리회사 선원노조에 서면 질의를 하자는 안이 의결되었다.


7월 16일 0530시 열흘여의 대기를 끝내고 접안 작업 시작

중간에 파업까지 끼워들며 장기 대기를 하게 했던 뉴캐슬 외항의 기다림이 정확히 10일 19시간 30분만에 끝나고 부두로 향했다. 7월 16일 0755시 첫 라인(*주14)이 KOORAGANG NO.4 BERTH에 걸리며 이로서 본선이 뉴캐슬과 맺는 중요한 인연은 시작되었다.


득남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랍니다

자칭 '못 말리는 람보' 라는 본선 장영환(35)씨가 부두에 접안 한 후 제일 처음 전화하여 들은 소식이 '고추 차고 나타난 장남'을 귀항시에 만날 수 있게 된 사건이다. 지금껏 자녀는 중1의 장녀 만이었는데 어엿하게 달고 나온 장남을 보게 되어, 역시 못 말릴 정도의 빈도로 집에 전화를 걸어 기쁨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무실에 연결되어 있는 그 전화는 콜렉트 콜 전화이니 집에서 전화 요금 좀 내게 될 겁니다. 하기야 아무나 하는 득남을 한게 아니니 그건 쓰잘데 없는 걱정이군요.


모두가 한 장씩 사진을 받다

정박중 찍었던 전선원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입항 즉시 뽑아서 모두가 한 장씩 나눠 가졌다. 정작 사진을 들여다보니 옷이라도 잘 입고 찍을건데, 후회가 나는 사람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날 받아 좋은 날 찍어 봅시다. 피크닉 가는 차림새로 말입니다.


노총각 면해 보려고 하선 신청하는 황용수(31) 씨

현재의 우리 배 선원은 정원 외에 1명이 더 타고 있는 상황 이어서 이번 귀항시 당연히 한사람이 내려야 하는데, 마침 장가갈 생각 하라며 황용수씨 집에서 하선 하라는 다드치는 전보가 왔다.

이번 항차 출항 전날에 선을 본 아가씨와의 혼담이 잘 진행되는 모양이라며 만약 그녀와 결혼하게 되면 배를 내려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니 다시 바다로 나오기는 힘들어질 것 같다면서 하선 신청을 했다. 


석탄 124,141 톤 싣고 뉴캐슬을 7월 18일 1145시 출항하다

하루동안만 반짝하는 도미 열몇 마리의 포획으로 회파티를 열어 보고는 별로이 괴기가 잡히지 않아 조금은 지겨웠던 열하루의 기다림 끝에, 접안 하여서는 바쁘게 진행한 선적으로 또한 마음 바빠하다가 어느새 출항을 맞이하였다. 우리 배에 앞서 입항하여 석탄을 싣고 삼천포로 고정으로 떠난 그로발 포츈, 한진칸베라, 한진 로버츠뱅크호의 뒤를 따르지만 그중의 한 척 쯤은 따라 내버릴 자신감을 가지고 떠나는데 삼성조선 1134호선으로 우리 배 바로 앞서 진수한 본선과 동형선인 대한해운의 '군자란호'가 고정을 기항 하려는 예정으로 24일 경의 접안을 기다린다며 외항에 투묘하고 있었다. 우리가 쌍안경으로 그 배를 보며, 본선의 상태와 비교하면서 가까이 지나치는데 그 배 에서도 우리를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VHF 전화를 걸가말가를 생각 중(*주15)인데 “오션 마스터, 여기는 군자란, 감도 있습니까?”하는 소리가 울려 나온다. 호기심이랄가 궁금증이랄가 하여간 그 배가 먼저 입을 떼었다.


이번 가족 휴가는 대천 해수욕장에서

고정항에 입항하므로 모처럼의 가족들의 휴가를-아이들 방학이 끼었으므로-대천 해수욕장을 찾아 갈 수 있는 기회로 갖게 될 것 같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방선하라고 집에다 연락하고 회사에 요청하며 모두가 기쁜 마음들이다. 헌데 유독 선장님만은 다음의 코멘트를 잊지 않으신다. "오션마스터호의 모든 가족들은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조심하시고 동료 여러분들은 집 식구들에게 철저한 부탁,당부,교육 바랍니다."


다음 항차는 뉴캐슬/광양으로 결정되다

차항차(VOY.003)는 고정에서 출항 후 다시 뉴캐슬로 가서 석탄을 싣고 광양 항에 기항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1995년 4월 28일 처녀항해에 나섰던 오션 마스터호는 2018년 1월 30일, 인도기항을 마무리하고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폐선되며 생애를 마쳤다. 23년간, 부침을 겪었던 회사사정에도 끝까지 한 회사의 사선으로 생애를 다했으니 좋지 않은 벌크시황에 여기저기 팔려다니다 생애를 다하는 다른 배들에 비하면 순탄한 생애였다 할 수 있으리라.


 

* 각주         

*주 1 : IMO Number -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에서 배를 식별하기 위해 표시하도록 하는 선박고유의 일련번호

*주 2 : Call Sign - 통신을 할 때 무선국을 구분할 수 있도록 무선국마다 지정되는 식별 부호. 선박의 경우에도 무선 통신장치를 운용하기 위해 부여된다.

*주 3 :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에는 배의 크기가 너무 커서 극동지역과 유럽지역을 연결하는 항로를 통항할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남쪽에 위치한 곶(cape)인 희망봉을 돌아서 운항해야만 하는 선박을 그 지명을 따서 케이프 사이즈(cape size)라고 부르며, 재화중량톤 (DWT) 15만톤 정도의 광탄선 또는 유조선을 말한다(선박항해용어사전, 공길영)

*주 4 : M/T(Metric Ton) - 무역거래에서 중량을 사용할 때 1,000㎏을 1톤으로 하는 수량단위

*주 5 : 적도제(Neptune's revel ,赤道祭) - 항로 등에서 적도를 통과할 때 지내는 제사로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관습

*주 6 : VHF CH.16 - 조난, 긴급통신의 현장통신 및 일반 통신의 호출 채널로 통상 교신에는 씌여선 안되며 호출 후 즉시 다른 채널로 이동하여 교신해야한다.

*주 7 : 정지궤도(GEO)인공위성을 이용한 이동통신서비스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 또는 같은 사업을 이어받은 민간기업 이름이다. 1979년 7월 UN(국제연합)산하 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국제해사기구)주도로 '국제해사위성기구(INMARSAT:International Marine Satellite Organization)

에 관한 조약'에 의해 설립됐다.

*주 8 : TELEX - teleprinter exchange의 합성어. 텔렉스는 가입 전선 서비스라 불리는 전신 서비스의 하나로, 국내 및 국제적인 통신 네트워크(communication network)의 회선을 경유하여 통신하고자 하는 가입자와 직접 다이얼 접속하여, 텔레프린터(teleprinter)와 종이 테이프를 사용하여 데이터의 송수신을 할 수 있다.

*주 9 : 개인사용 통신(위성전화)요금

*주10 : 처녀항해(maiden voyage , 處女航海) - 처음으로 선박이 출항하여 항해를 하는 것을 말한다. 선박이 처음으로 출항하는 것은 시운전시에 출항하는 것과 선주에게 인수된 후에 출항을 하게 되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두 가지 모두 처녀항해에 해당되고, 항해사가 처음으로 선박을 타게 되는 것도 처녀항해라고도 한다. (선박항해용어사전, 공길영)

*주11 : USCG(United State Coast Guard) – 미해안경비대. 미국연안을 항해하는 선박과 입/출항하는 선박에 대한 관리책임을 가지고 있음.

*주12 : POOP DECK – 선박의 후부갑판

*주13 : BERTH : 선석(船席) - 항내에서 선박을 계선시키는 시설을 갖춘 접안장소

*주14 : first line to pier – 접안의 가장 첫단계

*주15 : 같은 도면을 가지고 같은 조선소에서 지어진 배의 경우, 공통점 외에도 특이점이 있는 경우가 많기에 교신을 통해 서로 유용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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