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중 만나게 되는 비행기나 배 이야기.
1. 비행기의 출현
점심식사 후 식곤증이 남아있는 나른한 분위기를 벗어나려 일부러 브리지를 찾아가서 차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부드러운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얼른 소리가 나는 우현 쪽을 바라본다.
아직은 호주의 배타적 경제수역내를 항해하고 있는 경우이니 호주의 관용기이리라, 짐작해 본다.
바다 가운데 배위에서 비행기를 만난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기에,왜 비행기가 왔지? 하는 속으로 뜨끔한 경계심을 갖고 쳐다 보는 것이다.
헤아려 보면 항해 중에 비행기를 만나 기뻤던 경험이 몇 번 있기는 하다.
한번은 캐나다 밴쿠버를 출항하여 우리나라로 돌아오던 귀항 길에 갑판에서의 작업 중 갑자기 선수갑판 위로 휩쓸어온 파도에 얻어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환자가 발생하여 급하게 미국 알라스카의 코디악 코스트가드에 지원을 요청하여, 그들이 보내준다는 헬기를 기다리면서 항해하던 날씨조차 나빴던 몇 년 전의 겨울의 일이고, 또 한번은 급성 충수염 환자가 발생하여 역시 헬기로 후송한 비슷한 경험이다.
USCG 마크도 선명한 커다란 헬기가 본선의 상공에서 본선 갑판으로 들것을 내려주었고, 우리는 열심히 환자를 옮겨주니, 그들은 윈치로 끌어 올렸다.
환자가 무사하게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심을 하며, 그 자리를 떠나던 그 당시의 광경은 배를 타며 경험한 잊지 못할 일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행기가 싫게 느껴지는 환경으로 만난 건,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크랜드 전쟁이 한창일 때 였다.
유럽을 다녀 오던 길에 대서양과 인도양의 경계선 부근 쯤에 있는 아슌시온이란 섬을 새벽에 10 마일 정도로 가깝게 지나치다가 갑자기 폭음을 울리며 떠 올라 우리 배를 선수쪽에서 선미쪽으로 급히 지나쳐가며 서치라이트를 비치던 영국의 해리어 수직상승전투기의 출현에 놀랐던 일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그 섬이 영국군이 그 전쟁의 전진기지로 사용하던 섬이었던 것이다.
더하여 근래 선박에서 비행기를 만나게 되는 경우는 주로, 선박의 해난사고나 환경 오염등의 사고를 내었을 때 살펴보러 나타나는 경우이지만, 전자는 도와주러 오는 경우이니 반가운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아무래도 감시를 위해 접근하는 것으로 느껴지니 기분이 좋을리 없는 것이다.
회색 빛깔의 정찰기 한 대가 매끄럽게 우리 배의 우현 선미로 들어와서 선수를 지나 오른쪽으로 크게 커브를 틀어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혹시 기름이라도 유출되는 잘못한 일이 우리 배에 생겼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에 얼른 선미를 향해 눈길을 돌렸지만 배의 항적(航跡) 만이 남아 있을뿐 별다른 이상은 없다.
휴우- 한숨을 몰아쉬며 다행으로 여기지만, 아직 호주와 통신의 연결 고리가 남아있는 AUSREP(호주 당국에매일의 선박 위치보고를 타전하는 일)을 제대로 보고 하였는가 2 항사에게확인하였다.
얼마 전에 보내었고, 오늘 저녁이면 AUSREP의 보고 구역을 벗어나니 FINAL REPORT 는 1540시로 통보해 주었다는 보고를 벌써 받았던 것을 잊고 취한 내 행동이었다.
그 비행기가 다시 되돌아와서 우리를 체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그들이일상적으로 하는 순찰 행위인 모양이다. 안심한 마음을 가지고 브리지를 떠나 방으로 돌아왔다.
2. 배와의 만남.
밤 8시 30분 경.
하늘의 구름이 칙칙하니 양탄자라도 짜깁기를 하는지 초엿새의 쪽박 달을 그 그물 뒤로 숨겨주어 하늘도 바다도모두 뿌옇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날이 흐린 것은 아니지만 후덥지근한 열대의 대기와 어울리어 좀은 따분하고 답답한 마음을 품게 해주는 날씨이다.
이곳에만 오면 항상 선장이 브리지에 나타나 있어야 하는 CORAL SEA에서 SOLOMON SEA로 들어서는 길목인 좁은 수로 조마드 엔트란스의 10 여마일 전에 도착했기에, 방금 올라온 브리지이다.
-NORTH BOUND VSL! NOUTH BOUND VSL, THIS IS SOUTH BOUND VSL DO YOU READ ME OVER?
정선수의 약간 왼쪽에서 두 개의 항해등 중 오른쪽 것(전장등-앞 쪽 마스트의 등-)이 약간 낮게 왼쪽 것(장등-뒷 쪽의 메인 마스트 등-)은그보다 좀 높은 곳에서 비추는 항해등의 배열에 더하여 초록색의 우현 현등까지 보이며 좀 전 조마드 수로를 빠져 나온 배가 조마드를 향해 접근하고있는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반짝 하니 두 시 방향인 선수 오른쪽에서는 조마드의 등대 불빛이 자신을 나타내는 빛을 발하고 있다. 잠시 대답을 안하고 멈칫하고 있는 사이 다시 부르는 소리가 나는데 영어의 음색이 영판 한국인이라는 감을 잡고, 그냥 한국말로 대답하라고 3항사에게 지시를 했다.
-한국 배 맞습니까?
갑자기 두 가지의 음색이 대답으로 오는데 좀 멀리로부터 오는 것 같은 빠른 대답은 마치 전화를 못 걸어서 환장한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반가운 마음을 다급하게 표현하는 것 같지만, 지금 우리는 안전 통항을 위해 서로를 부르고 있기에 그 선박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데,
-예, P상선의 뉴 다이아몬드호입니다.
가까운 배가 대답을 하고 나온다.
-예, 찬넬을 77번으로 바꿉시다.
-77번 알았습니다.
두 번씩이나 우리 배를 불렀던 사람의 음색이 하는 대답을 들으니 우리 회사의 자매 선으로 현재 임시로 우리 배를타고 있는 K 기관장이 책임기관장을 맡고 있는 배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VHF 16번 찬넬로 바꿔 준 후 다시 말을 보낸다.
-예, 여기는 대우 스피리트호입니다.
정중하게 그것도 은근히 반가운 마음을 실어 대답을 보내니
-아! 반갑습니다. 그 배에 J 선장님이 타고 계시지요? 계시면 지금 좀 바꿔 주시겠습니까?
즉시 또 다른 목소리가 나서는데 이쯤까지 듣고 보니 상대가 누구라는 걸 알아 듣겠기에 얼른 전화기를 바꿔 잡으며
-예, 접니다. 반갑습니다. K 선장님 안녕하셨어요?
하며 얼른 기관장에게 연락을 하라고 당직사관에게 지시하면서, 예전에 3항사 동기생이 탄 두 배가 서로 마주쳐서 지나가게 됐을 때, 그만반가운 통화에만 정신이 팔렸다가 충돌을 야기했다던 사고가 떠올라서 안전부터 짚고 넘어 가야겠다고 판단하고,
-우선 서로 우현으로 통항 하도록 하지.
하는 말로 말문을 시작한다.
-예, 저희가 왼쪽으로좀 틀어서 내려갈테니까 그대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하며 응답하는 그 배의 K 선장은 나보다 3년 후배의 선장으로 회사에서 육상근무를 오래하다 작년에 다시 선장으로 해상에 나온 친구이다.
그간의 집안 안부를 서로 물으며 우리 나라에는 언제 가느냐고 하니 지금껏 4개월을 외국만 돌다가 오는 8월 15일경에 우리 나라에 간다는 예정인데 선원들 모두가 좋아하고 있다며 말하는 품새가 자신도 기뻐하고 있음을 은연중 비치고 있다.
한참을 더 이야기를 하다가 연락을 받은 기관장이 부리나케 브리지에 올라와 조금 전 까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숨을 돌린 것 같아 전화를 바꿔 주기로 한다.
-어! 기관장이 지금 올라왔으니, 바꿔 줄게요.
-예, 그래 주시겠어요.
-전화 바꿨습니다. 저기관장 김 OO입니다.
전화기를 받아든 기관장이 씩씩한 목소리로말을 보내니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반가운 사람도, 힘들지만 이렇게 만나지는군 그래.
K 선장이 반가운 응답의 인사로 답한다.
-선장님 오랜만입니다. 그간별고 없으셨지요?
기관장도 기쁜 음색으로 응답을 보낸다.
-그~럼 건강히 잘 지내고있지, 기관장! 지금 건너뛰어 우리 배로 왔으면 좋겠어.
그들이 서로 친근하게 응대하는 말들이 은근히 나에게는 시샘을 나게 만드는 기분이 드는데, 그들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인연의 고리를 풀어가며 주위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안부를 부탁하며 한참을 계속한다. 어느새 그 배는 우리 오른쪽 옆을 지나치고 있다.
전화를 끊을 시간이 다가와서 내가 다시 전활 받아들고 마지막 인사들을 나눈다.
-자, 그럼 안전항해를 이루고 언제 다시 한번 만나기로 해요.
-예, 가는 길에 태풍도있는 데 조심해서 안전항해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16번으로 나가겠습니다.
VHF 16번 찬넬은 국제적으로 호출하는 찬넬로 정해져 있어 평상시 통화를 하지 않을 때는 그 찬넬 만 열어 놓고 있는 것이므로, 그 찬넬로 나간다는 말은 사적인 통화는이제 끝낸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