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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8. 2021

묘박지 변경과 긴급부식신청

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17

항계밖 15마일이 되는 곳에 투묘하고 대기 중일 때


어떠한 깊은 내막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도착해도 항계 내로 진입하지 말고 항계 밖에서 드리프팅(표류) 하라는 지시에 의해 내가 선택한 장소는 치타공 묘박지까지 77마일 더 가야 하는 떨어진 외해에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면서 표류를 시작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수심이 본선이 운신하기에 힘들지 않은 깊이를 가지고 있고 육지로부터 30마일 이상 떨어져 있어 도둑의 침입이 용이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으로 선택한 장소로서 원래는 치타공을 향한 마지막 접근 변침 점으로 찍어 놓았던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수심이 점점 얕아지며 곳곳에 천소와 항해 장애물이 있기에 더 이상 표류시키기가 용이치 않다는 판단을 내려 결정했던 것이다. 판세가 변하여 치타공에 빨리 도착하라는 결정이 나더라도 시행에 최소한 8시간 정도는 걸려야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본선이 안전하게 표류하는 데는 그 단점이 오히려 장점화 될 수 있다고 여겨 결정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저녁 무렵 그곳에의 도착이 세시간이나 빨라지는 22시면 도착 될 것으로 예상되어 그만큼 빠르게 드리프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연락이 온다.

 

그곳에서 드리프팅 하지 말고 항진을 계속하여 항계와 가까운 곳으로 더 접근하라는 지시에 새로운 장소를 급히 물색해 본다. 치타공 항계 밖 15마일 정도 되는 곳으로 결정했지만 그곳을 가기 위해 계속 달린다면 너무 이른 어둠의 시간이 되기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배를 잠시 뒤로 돌렸다. 회사와 대리점에 그렇게 맞춘 그 위치에의 이티에이를 알려 주니 대리점에서는 그곳이 양호한 묘박지라며 도착해서 투묘해도 된다는 정보를 준다. 

회사도 본선의 안전을 위해 택한 의견을 존중하여 그곳에서 투묘 대기 하도록 일단은 허가 해 주었다.  


이제부터는 연료유를 최소로 소모하여야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이건만, 배를 뒤로 돌려 시간을 맞춰야 하는 아이러니에 잠깐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는 그 방법이 가장 나은 상황이라 그냥 밀고 나가기로 한다. 아울러 대리점측으로부터 연락받은대로 철저한 대해적 당직을 실시하여 인명과 선체 안전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도록 미리 선원들에게 교육을 시켰다. 

 

물론, 이 모든 일을 무사히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얼마 전에 불어왔던 싸이클론이 또 다시 이곳을 찾아오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일 만큼은 신에게 비는 마음 간절하다. 현재 모자라고 있는 주부식은 이곳에서 터그보트를 통해서 구입이 가능하다는 회사의 연락을 받고 있어 걱정이 줄었지만, 혹시 기상악화로 인해 배를 움직여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결국 연료유의 모자람을 유발하는 큰일이 되기에 은근히 날씨 걱정이 제일 큰 명제가 된 것이다. 


최선을 다한 야간 당직으로 명일 아침에 뿌듯한 보람찬 결과를 안으며 본선을 바이어에게 인도 해주는 작업이 무탈하게 끝나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원들의 염원이다. 

날이 밝았다. 예정했던 아침 아홉 시경 찾아간 두 번째로 정한 목표지점에 투묘한 후 도착/ 투묘 보고를 내주었다.

투묘하고 있는 본선 주위를 순찰하듯 돌아보고 있는 방글라데시 해군 함정의 모습


그런데 부식을 보급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던 대리점에서 세관의 허가가 안 나와 해 줄 수 없다는 연락을 해왔다. 이곳에서 2주일분의 부식을 선적시키려던 회사의 방침이 물 건너 간 것. 나는 처음부터 현재의 남아 있는 배의 부식으로 26~27일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 그 안에 원래 계약대로 일만 성사시키면 된다는 데 무게를 가지고 별로 부식 모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계약의 이행이 왜 인지 자꾸 늘어져서 이제는 우리의 뜻을 보이기 위해서도 부식 공급을 받아 전투태세(?)를 완비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려던 참인데 대리점의 배신에 절로 맘이 상해 버린다. 그러나 자신들의 대리점 면허가 취소된다는 식의 이야기로 불멘소리까지하며 변명하는 대리점은 어절 수 없이 관 앞에 서면 꼼짝 못하는 후진국의 민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이제 대리점마저 우리 편을 떠나 자신의 살길을 찾아 가는 양상이니 이곳의 날씨만큼이나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녁 늦은 시간에 부산지점의 O차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곳에 회사가 거래했던 실적이 있는 선식회사를 소개하니 그곳을 통해 직접 부식구입을 하면 되겠다는 이야기이다. 본사와의 공조를 위해 담당자인 O대리를 찾아 이야기하니 자신은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O차장이 이야기했다니 자신의 윗분들과 이야기가 된 사항인 듯싶으니 그대로 하시지요 한다. 그 현지 선식에서도 이미 연락이 와 있기에 우선 가격을 묻고 언제 선적 가능한지 묻는 이멜을 넣었다. 대답이 왔다. 이멜을 잘 받았으며 우리의 위치가 너무 항계 밖에서 멀고 날씨도 안 좋아 선적 일자는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해온다.

시시때때로 강한 바람과 함께 몰아치던 소나기

그런 답전 이멜을 받아들 때만 해도 바람이 25~30노트를 넘나들고 있어 별로 바람소리를 못 느끼던 이 배에서조차 윙윙 대는 소리가 감지되어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써늘하게 식어가는 기분을 죽이느라 가슴을 쓸어내린다. 밤새 침대 위에서 엎치락 뒤치락거리며 깨인 잠을 설치기까지 하는데, 귓속을 파고 드는 바람소리는 깨어나려는 신경 줄을 마구 자극해 댄다. 바람은 아직도 그대로 인 것이다.


새벽이 되니 좀 나아진 듯 하지만 그래도 못 미더워 일어나 커튼을 들치며 밖을 내다 본다. 날씨가 뿌연 것은 여전하지만 확실히 바람이 점점 자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어 선다. 얼른 브리지로 전화를 걸어 본다. 


-수고 많네, 지금 기상 상태는 어떤가?

-네, 바람의 세기가 많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일항사의 대답에 우선 안도하며, 


-기압은 어떤가?

-별 변화가 없이 1003을 유지하고 있네요. 한다.

-그래? 좋아지는 징조로군…… 수고해라. 


그 동안 기상 상황을 물을 때마다 별로 달라진 게 없이 여전하다는 대답에 은근히 짜증이 나있던 중인데 참 오랜만에 듣고 싶은 대답을 들으니 따듯한 침이 절로 입안에 고여 든다. 전화를 끊는 손이 한결 날렵해지고 마음은 그에 비례하여 편안해지니 몸의 굴신도 부드러워진다.


바람이 점점 잦아 든다는 별로 특출하지도 못한, 이 작은 일 안에 열망이 있고 이루어지는 기쁨이 있어 행복도 우러나고 부드러운 화합까지 팽배해져 결국은 배 전체의 분위기를 온유하게 만들어 주는 기본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부식을 실을 수 있는 날씨로 회복되는 것이라 믿으며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조류에 밀리며 Port Anchor Chain이 팽팽해지던 모습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좋은 일은 하루 한 시간이라도 빨리 두리의 매선 인도가 결정되어 바이어에게 무사히 넘겨주는 일이 성사되는 것이다. 이미 장부상에는 없는 부식이지만 아직 27일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까 그 안에 매도가 완전히 성사되면 부식을 사지 않고도 일이 끝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도 있으니까 말이다.



*18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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