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18
회사로부터 이메일 전문이 도착했다.
1. 선장님 및 승조원 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2. 유선상 통화와 같이, 선장님께서 지정하신 항계 밖 5마일 떨어진 위치까지 Shifting 부탁드리며 출항보고전문 부탁드립니다:
3. 투묘 완료후, 투묘보고전문(위치, 및 시각 등), 본선 Bunker ROB, 및 unpumpable FO & DO 더불어 공선항해서 본선 daily FO 및 DO 소모량 송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모든 금융 상황이 진행되지 않음으로 인해 본선의 인도를 두고 회사와 바이어간에 마찰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바이어측은 본선이 항계 밖 외항에서는 수속이 안되니 무조건 항내로 들어와 입항수속을 해야 한다는 관의 말을 앞세워 항내 진입을 종용하는 모양이고, 회사는 바이어 측이 계약대로 대금지급을 이행치 않는 한 본선을 항내로 진입시키지 않겠다는 강력한 뜻을 내보이고 있는 낌새이다.
드디어 본선을 항계 내로 진입시켜 수속에 임하라는 지시가 회사로부터 왔다. 아울러 바이어 측에 내통(?)된 우리측 대리점이 지정해주는 투묘위치를 알려주지만 그곳은 순전히 입항수속을 가장 쉽게 하려는 의도가 물씬 풍기는 B-Anchorage 의 한 곳으로 이미 많은 선박이 다닥다닥 투묘하고 있는 항로 바로 곁의 좁은 자리이다. 다시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1. 최소한의 입항수속이 이뤄질 시, Seller측 대리점, Buyer측 대리점, Custom officer 그리고 2-4명의 Security Guard(Watchmen)가 승선하도록 되어 있으며 수속이 끝난 후, Security Guard는 계속 본선에 남아 있을 예정입니다. 상기 인원 외에는 절대 승선시키지 마시길 거듭 당부 드립니다.
2. Buyer측은 오직 MOA(*주1)와 본선의 Specification을 비교만 하는 것으로, 그 이상의 요청을 본선에 절대 할 수 없는 바 본선 선장님은 이를 반드시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Buyers측이 본선이 거기에 실제 존재하고 MOA상의 Spec.과 맞는지 만을 점검하기 위하여 승선하는 것이니(예 : Main Engine)미심 적은 부분이 있을 시, 즉시 연락 하시여 Instruction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계약 이행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는 모양이다. 그러나 최종투묘지를 결정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곳을 찾기에는 본건의 안전을 위해 하는 요소가 많아 보여 최종적으로 C-Anchorage가 조금은 한적하게 배들이 머물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 곳을 목표하여 쉬프팅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계속 우리를 부르고 있던 치타공 하버 컨트롤의 방송을 무시하고 있었던 그간의 태도를 바꾸어 닻을 감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곧 그들을 VHF 전화로 불렀다. 현 상황을 알려주고 C-묘박지로 가서 투묘할 예정을 알려준다. 그들은 도착하여 투묘한 후 다시 알려달라고 이야기한다.
드디어 최종 결정했던 곳에 도착하여 투묘한다. 육지로부터 최소 3.1마일 정도 떨어진 곳으로 주위에 가장 가까이 머물고 있는 배에서 1.5마일 정도 떨어진 항계 내에 들어간 곳이다. 항만당국을 불러 투묘위치와 시간을 알려주고 대리점과 회사에도 투묘 전문을 넣어 준다. 얼마 후 대리점으로부터 5명의 세관원과 바이어측 2인, 우리측 대리점원 1인 그리고 경비원 2명이 승선한다는 연락이 왔다.
금요일.
이곳은 쉬는 날이다. 대리점에서는 하루 종일 소식이 없다. 우리나라도 주말이 되어 연락이 안되지 않을까? 약간은 걱정이 드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목마른 놈 우물 판다-고 먼저 연락을 시도해 본다. 위성전화에 나온 담당자는 안 그래도 본선을 위해 알아볼 것을 챙기며 열심히 오늘을 뛴 결과를 알려주며 이멜로도 이미 통보해주는 전문을 넣었다는 대답을 해준다. 이제 최종 인도 일자를 27일 오후로 잡고 있단다. 그러나 본사의 최종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지금 닻을 내리고 있는 자리를 고수하라는 말이 덧붙여 진다.
배에는 현재 우리 선원 23명 이외에 8명의 안전요원-경비원-이 더 승선해 있다. 이들은 매수자 측에서 자신들의 경비로 배치한 인원으로 이곳의 도둑들이 배를 침범하지 못하게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생김새나 모양새로 보아서는 자그마한 체구로 보여 저런 사람들이 무슨 도둑을 막겠는가 싶지만, 도둑도 이들과 비슷한 사람들일 터이니, 그래도 이들이 있어 도둑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다고 믿기로 한다.
회사는 처음에는 이들의 승선을 2명만으로 제한하려 하면서 6명을 우리 측에서 쓰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미 입항 수속하는 터그보트에 같이 들어온 이들을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 그대로 승선시켜 근무하도록 허가한 것이 어제 입항수속 때에 있었던 일이다. 이미 바이어 측에서 자신들의 경비로 경비원을 세우며 도둑을 지키려고 하는데 우리가 구태여 우리 돈을 들여서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작은 의문을 가져보았다.
이미 인수할 의향을 굳히고 진행하는 과정으로 여겨지는데 이 단계쯤 되면 물건 하나 없어지면 그만큼 자신들의 손해랄 수 있는 시점이 되었으니 그들이 자신의 지출로 경비원을 쓴다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소박한 생각 때문이다. 하여간 회사는 마지막 인도하는 순간까지 매도자의 권리를 꽉 움켜쥔 채 행사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게 일을 진행하고 있다. 아니면 너무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있어 작은 신의와 성의를 보이며 좀 편하게 일을 진행 시키기 보다는 꼭 돈의 정확한 지불과 수취만이 속지 않고 이 일을 성사할 수 있다는 굳은 확신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따라서 그 동안 본선에 요청되는 지시사항을 두고 볼 때, 바이어에게 너무 빡빡하게 밀어 부치면서, 본선을 그런 상황에 맞추다 보니 무리한 운항이 요구되어 현장에서 앞장 서서 일해나가는 내 입장이 참 고달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보니 이곳에 와서 세 번이나 자리를 옮겨가며 닻을 내려야 했던 일이 곡 필요했을까? 라는 의문을 내 입장에서는 안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일들도 지나놓고 보니 이유가 다 있었구먼!- 하는 정도로 이제는 뒤로 물러 서 있지만, 사실은 회사가 나한테 자세하게 알려주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어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했을 거라는 쪽으로 이해하려고 이미 맘을 돌려 세웠던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기에 여기까지 별 불평 없이 따라 온 것이다.
이제 마지막 비칭(*주2)의 결행을 닷새 후로 두고 선원의 교대도 27일에 있을 거라는 연락을 끝으로 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저녁에 비칭마스터라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와서 본선의 비칭 계획을 알려준 사항을 메모하여 비칭에 참여할 멤버들에게 알려준다.
1) 비칭 일시 28~29일 오후
2) 비칭 드라프트 : 선수 2.6미터~2.7미터, 선미 6.2미터~6.3미터 범위로 만들 것.
3) 발라스트는 윙탱크만 남겨두고 다른 탱크는 모두 비울 것
4) 모든 항해 계기는 정상 작동시켜 둘 것
5) 모든 해치커버는 비칭하는 날 오전에 열어줄 것.
6) 근무인원은 총 인원 최소 10명 필요
*선교 - 선장, 당직사관, 조타수
*선수 – 일항사, 앵카 요원
*기관실- 기관장,1기사 ,전기사(2기사 대무),기관당직2명
7) 비칭 장소는 27마일 떨어진 곳이고 앵카UP 부터 반속(Half Ahead)으로 가다가 도착 45분 전부터 최대 속력으로 갈 것.
8) 비칭 컨디션 작성요.
(1) DRAFT FWD: AFT:
(2) 탱크별 남아있는 발라스트양 (DEAD BALLAST IF REMAIN 포함)
(3) 윙탱크 tons
(4) 청수 tons
(5) FO tons
(6) DO tons
(7) LO tons
9) PORT GANG WAY 로 COMBINATION LADDER 설치요 - LADDER 각도 60-70도
수면상 0.5미터 파이로트 래더 설치요망
10)기타 참조사항
본선 전속전진 스피드 10노트, 앵카 올리는 시간 1시간으로 알려주었음.
비칭마스터(Beaching Master) : CAPT. ANAM TEL 0X-7XX-7XXXX6
그동안 우리가 두리를 넘겨주는 시점을 어떻게 구분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비칭(Beaching)이란 단어로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해군에서 상륙정을 육지에 올려놓으며 상륙작전을 하듯이 폐선하는 선박을 해안가에 얹혀주는 일로 폐선 인도는 끝나는 것이다.
*각주
*주1 - MOA(Memorandum of Agreement) : 매도인과 매수인의 이름과 함께 선박의 제원과 계약일자를 표시한 문서
*주2 - 비칭(Beaching) : 폐선하는 선박을 해안가에 얹혀주는 일
*19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