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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8. 2021

난데없는 긴급선원교대 요청

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19

인천 공항에서의 3기사. 두리를 두고 올 곳인 치타공 해도를 본선에 전해주려고 들고 있다

토요일.

아무 곳에서도 소식이 없어 대리점에 우선 이멜을 넣어 본선 동향 예정을 물어본다. 혹시 전화로 연락을 줄까 싶어 대리점이 빌려주고 간 전화기를 항상 들고 다닌다. 마침 전화 벨이 울린다. 대리점원이겠거니 하여, 

-핼로우! 하고 전화를 받으니 

-여보세요. 한국 말이 나왔다. 본사의 부산 지점에서 온 전화였다.

-선장님 죄송스런 부탁 한 말씀 드리려고요.

-무슨 일이예요?

-예, 거기에 입항한 사선 씨.에메랄드호가 있지요?

  

이곳에 짐을 부리러 이틀전에 들어와 있는 사선 이야기이다.  


-예, 그런데요? 

-그 배 2기사가 작업하다가 손가락을 다쳤는데 치료에 12일이 걸린다네요. 

-아, 그럼 2기사 교대 때문에 그런 거여요?  


이야기를 다 듣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알겠다. 


우리 배 2기사를 그 배로 전선 보내려고 걸어온 전화인 걸 금새 눈치로 알아챈다.

-예,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중도에 말을 끊었어도 상황은 전달되고 전달받은 셈이다. 배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선원의 갑작스런 교대 상황이 꼭 필요해진 것이다. 안전사고로 인해 같이 출항을 할 수 없게 된 그 배 2기사는 다친 것이 억울하겠지만 교대를 유발시킨 입장만큼은 참 딱하게 되었다. 하지만, - 맑은 하늘에 날벼락 - 이제 집에 가서 좀 쉬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던 우리 배 2기사가 가장 큰 곤경에 빠져든 것이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된 2기사는 밤새 야간 당직을 서고 지금 한창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다. 회사의 현재 상황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내 입장이다. 이제 2기사를 깨워서 전선(轉船) 가는 일을 될 수 있으면 동의 하게끔 분위기를 이끄는 일이 과제로 다가왔다.


-이기사에게 연락해봐라. 


마침 옆에 있던 당직사관인 3항사에게 지시한다.

잠에서 덜 깬 푸석한 얼굴로 나타난 2기사는 이야기를 다 듣더니 참 난감한 표정이다.

-지금 이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 역시 감당하기가 까다로운 질문이지만 솔직한 내 심정을 이야기해준다.


-궁극적으론 회사의 뜻에 한번 응해주어 앞날을 생각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좀은 무책임한 듯한 언급이지만 사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리 되는 것이 이 세계의 불문율 같은 일 처리 방식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내 개인적인 의견 그대로 되기가 쉽지만, 귀국 후 또 다른 배로 갈 수도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직급에 따라 사람들이 부족한 경우 회사는 이런 거부에 대한 섭섭함을 묻어두고라도 다시 고용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찌 회사의 곤란한 입장을 뻔히 보면서 그 일이 자신이 양보하면 해결될 수 있는데도 모른 체할 수 있겠는가? 하는 내 생각을 곁들여서 해준 대답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전화를 걸어 양쪽을 이어준다. 


몇 마디가 오고 간 잠시 후 2기사가 나에게 수화기를 돌려준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생각해서 확답을 주기로 하였다는 회사 담당자의 목소리가 받아 들은 수화기에서 흘러나온다. 오후 들어 회사 차원의 확인을 위한 전선 동의서 서명요청이 왔을 때 2기사는 단호하게 전선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태도가 담담하지만 양보가 안 보이는 그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회사는 지금 비상에 돌입했을 거란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지만 그러기에 다시 청해 올 것이란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카드는 우리 배의 2기사가 전선가는 것이 최상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기사에게 이 결정이 마지막이라고 생각지는 말아라! 회사에서 또 연락이 올 것이란 언질을 주며 그 때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며 그의 뜻이 실린 동의하지 않음의 이멜을 전송하였다. 

난통에서 두리에 승선하려고 접안을 기다리고 있던 때 시내를 지날 때의 3기사

그런데 갑판 당직자로 부터 난데없는 보고가 올라왔다. 여덟 명의 경비원이 밤새우며 지키고 서 있는 선미갑판 바로 그 아래, 경흘수로 인해 수면상부로 들어난 선미부의 프로펠러와 타를 보호하려고 붙여 놓은 징크아노드(아연판)를 여섯 개나 도둑놈들이 떼어갔다는 보고. 이런 식이라면 이들은 프로펠러도 물 위에 뜨면 놋쇠로 보고 떼어갈 놈들이 되겠다. 찬탄과 허탈이 함께 혀를 차며 한숨을 불어내게 한다.

  

이렇게 강인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왜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지능의 발달이 잘못 들어선 경우를 보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교육을 시켜야 하는 걸까? 또 한 번 더 방글라데시에 실망을 가지며 1970년대에 맺었던 인연과 별로 달라진 것 없는 상태로 여전히 연결 되있음을 씁쓸한 기억으로 반추한다. 이렇게 비칭 나흘 전으로 여겨지는 날이 저물어 갔다.



*20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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