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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8. 2021

바삐 돌아간 비칭 전 날

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21

치타공 C-Anchorage로 조용히 지던 태양

월요일,

처음에는 고조시의 높은 조고차(潮高差)만 보고 비칭의 결행 하루 전으로 못 박고 날짜 셈을 하였던 날이었지만 결과적으론 바이어에게 넘기는 마지막 순서를 밟기 하루 전이된 셈이다. 종교적으로 다른 양측이 모두 어울린 휴일의 퍼레이드로 인해 지난 24일부터 계속 어제까지 우리는 공휴일의 가운데 끼어서 노는 날도 되었다 일하는 날도 되었다 하며 지나다 보니 까딱하였으면 대리점의 농간에 놀아난 일도 진행할 뻔했었다.

 

본사나 부산지점에서는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미얀마 선원들의 하선 결정이 바로 그런 일로 이곳 대리점의 연락으로 하선이 당연히 회사도 알고 있는 사실로 진행되는 줄 믿고 있었는데 나중 회사에 문의하니 천만의 말씀이었다. 아 한 번 더 두드려 보는 기분으로 통화를 했었는데 그걸로 어제의 선원 하선은 취소되고 내일로 넘어간 일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서 27일의 날이 밝아 왔지만 기다리고 있는 소식은 아직 없고 오늘도 힘들 것 같다는 안타까운 연락만이 전화로 걸려왔다. 


오늘은 이달 들어 가장 높은 조고를 가진 이틀 중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이 지나면 조고가 점점 줄어들어 비칭 실시 여부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겠다. 또 하루를 이렇게 넘겨야 하는가? 이제는 체념하다시피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편안해진다. 그렇다면 이 시간만큼 더 봉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자는 생각을 가지기로 하고 보니 편해진 것이다. 


한편, 이곳에 들어와 있는 사선에서 2기사가 사고를 당해 급히 하선하게 되었는데 교대자를 급하게 수배할 수가 없어 우리 배의 2기사를 데려가려던 계획이 있었다(19화 참조). 그러나 우리 배 2기사의 강력한 거부로 결국 3기사가 대신 가기로 거의 합의가 되었다. 3기사 역시 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이지만 친구인 2기사의 곤란한 형편을 도와주는 역할도 겸해서 자신이 가기로 한 것이다. 그 둘은 아주 막역한 사이의 친구라고 3기사가 말한 적이 있다. 3기사는 이번 우리 배에 나올 때에도 우리 배 스케줄이 회사의 이야기와 달라져서 결국 금전적인 피해까지 받게 되었는데, 그런 것도 나 몰라라 하는 회사가 괘씸하여 응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나지 않았단다. 그렇지만 주위 여건과 분위기로 봐서 누군가 그 배에 가야 그 배가 출항을 하게 되는 것이 명확한 일로 다가서니 대를 위해서 자신이 양보를 하겠다는 뜻을 갖게 된 모양이다.


이제 마음을 굳혔으니 다른 생각은 말고 전선하여 잘 지내게 될 것만을 염두에 두고 혹시 그 배에 가서 분위기가 좋으면 연가 때까지 더 탈 수도 있으니 그런 마음 가짐으로 대처하도록 어루만져 준다. 


"잘 알겠습니다. 잘 타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씩씩한 말을 남기며 3기사는 제 방으로 돌아갔다.

이번 하선 후 집에 가면 면허 시험 보려고 작정했던 계획을 한 달 정도 더 뒤로 미루어야 하는 참으로 힘든 결정을 그가 해준 것을 회사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그건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알아주도록 요청해야 할 일이다. 마음속으로 그 총대는 내가 지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왜인지 3기사에 대한 호감이 그렇게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튿날, 

3기사가 2기사 대신 전선 가기로 한 결정을 두고 회사와 대리점 간에 수북한 이멜이 오고 가며 양해가 되었기에 이제 대리점이 나서서 전선 시키는 일만 남았건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28~29일 양일중에 비칭 할 거라던 비칭 마스터라던 사람의 전화 연락을 봐도 내일이 비칭 예정의 마지막 날인데 아직 배를 넘겨주겠다는 회사의 의사 표시가 잔금 입금이 안되었기에 나오질 않고 있다. 


어쩌면 오늘 오후까지 기다려야 할 거라던 담당자의 전화 알림이 야속한 어제 오후였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성사될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아침부터 이멜을 계속 열어보며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 기약이 자꾸 늦어지는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마음이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알아보나 별 뾰족한 이야기가 나오질 않는다. 회사 역시 입금이 완료되었는지를 계속 체크하며 기다리는 중으로 연락이 오는 대로 우리한테도 소식을 주겠다는 정도의 말밖에 해주질 못하고 있다. 


어서 송금되어 온 돈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은행 관계자들은 왜 이리 늦장 대응을 하는지~라고 생각해 보지만 은행이 늦장 부릴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그저 관행의 매너리즘이 그곳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짚어 본다. 아니라면 진짜 큰 일이다. 바이어가 아직도 돈을 지불하지 않고 있는 게 무슨 꿍꿍이 속이라도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만약에 그러기라도 한다면 날짜에 맞춰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는 배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니, 당장 부식을 사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게 나를 압박하는 안건으로 떠 오르고 있다. 급하게 다른 배로 전선 가기로 한 3기사에 대한 일정도 알려 주지 않고 있는 대리점은 또 무엇하는 곳인지. 도무지 맘에 드는 일이 하나도 없는 곳이다. 

배로써의 역할을 마치기 하루 전의 두리

그래도 지난 23일 입항 수속하면서 가져간 본선 서류에 대해 돌려달라는 이멜을 보냈더니 잘 가지고 있으며 선원 교대자 데리러 오는 배편에 보내준다는 대답이 와서 그나마 교대가 곧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 짐작하고 있다. 그렇게 보내준다던 보트가 드디어 고무신만 한 작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온다던 시간을 두 시간이나 넘겨서 왔다. 달랑 사람(3기사)과 하선 짐만 가지고 나간다는 이야기인데 그 작은 보트에 세 명이나 타고 왔다. 나더러 수속 서류를 다 준비해서 보내라고 해 놓고 서류는 몽땅 자신들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화를 연결하여 서류의 행방을 확인시키고 그들이 수속하기로 이야기를 확실히 끝내고 3기사를 하선시킨다. 같이 귀국한다는 예상으로 왔던 3기사는 혼자만 떠나는 쓸쓸한 마음을 감춘 채 그래도 웃으며 작별 인사를 나눈 후 그 작은 보트에 옮겨 탄 후 곧 떠났다. 뱃사람들의 기약 없고 예정에 없든 이별은 이렇게도 찾아와 한 번씩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준 후 이번에는 작은 보트의 스크루 흔적으로 남겨주며 사라진 것이다. 

대리점의 행태로 보건데 틀림없이 3기사 하선 후의 행적을 안 알려 줄 것이라 예상되어 전선 가게 될 배의 선장에게 3기사의 하선 시간을 알려주며 그 배로 무사히 전선 오면 알려 달라는 이멜을 넣어 놓았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올라와 이멜을 열어보니 방금 17시에 3기사가 자신의 배에 승선하였다는 씨 에메랄드 선장의 연락이 와 있다.  이제 3기사의 일은 자신이 하는 대로 일이 메어지는 상황이 되었으니 나도 더 이상 걱정하며 신경을 안 써도 되게끔 되었다. 회사로부터 배를 바이어에게 넘겨주라는 시간 연락은 오늘도 오지 않았다. 저녁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거니 이제 내일 오전 중에 해결될 실마리가 보인다는 언질을 받았다. 

갑자기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오늘 종일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던 분위기가 그냥 걷히며 내일에의 희망사항이 조바심으로 뭉쳐있던 가슴을 시원하게 헤집어 놓을 수 있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저녁 9시 40분. 대리점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새벽 6시에 터그보트가 본선을 찾아올 것이란 내용의 통보를 해온다. 아직 본사로부터 아무런 지시가 없고 단지 내일 오전 중에 타결될 기미가 보인다는 정보만 가지고 있다고 알리며 일의 진행은 본사의 최종 지시에 따르겠다고 이야기해주고 전화는 끊었지만 이제 본선의 인도가 확실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본선을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에 삼삼오오 후부 갑판에 나와 기념사진을 찍는 미얀마 선원들


*22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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