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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8. 2021

비칭 사흘전, 해군이 배에 오르다

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20

해군과 같이 찾아와서 그들의 점검이 있어야 폐선 작업이 가능하다고 열심히 설명하던 대리점원


일요일.

미얀마 선원들을 귀국시킨다는 날이 밝아 왔다.

어쩌면 이곳 세관 관리들에게 뜯어먹는 재미를 솔솔 불러 일으키는 날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배 - 폐선 예정으로 입항한 선박 - 가 들어오면 한 건 잘해서 살림 밑천이라도 잡으려는 지 입항 수속하는 날도 그들의 하얀 유니폼과 번쩍이는 견장이 부끄러울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을 향해 솟아나는 경멸의 심정을 추스르느라고 맘 깨나 써야 했다. 그리고 나를, 우리를 돌아본다.

  

60년대 원양선을 처음 타고 외국에 다녀왔을 때 우리나라의 관리들이 하든 행동이 절로 떠 오르며 이들과 비슷하게 비교되는 점이 있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에 당시를 되돌아 보건 데,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외국에 가서 선진문물을 보니 부럽고 맨 가지고 싶은 물건 천지이니 먹는 것까지 아껴가며 어찌 장만하여 가지고 온 물건에 대해 입항수속을 해주는 관리들의 태도는 지금 방글라데시의 흰 제복을 입은 세관리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으로 기억된다. 


승선하고 있는 동안에는 항상 이런 사례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라 그들을 경멸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대면하며 면종복배의 슬픈 비굴감을 가지곤 했었다. 그런 마음이 가시게 된 것은 그로부터 착실히 20년쯤 지나서 였고, 이제는 그들을 보는 우리의 눈이나 우리를 보는 그들의 눈 모두 눈높이를 높이어 별다른 거부감 없이 생활하기를 이루고 있다. 


내가 30여 년 전에 치타공을 기항하며 느꼈던 감상이 지금도 변함없이 여전함을 보며 이 나라는 아직도 앞날의 희망을 가지기에는 요원하다는 비극적인 판단을 들게 함이 너무 안쓰러울 뿐이다. 하선 짐 꾸러미 수를 미리 알려 달라는 대리점원의 말이 자꾸 귀에 뱅뱅 맴돈다. 세관에서 짐 검사를 미끼로 계속 시간을 끌어 비행기 시간에 쫓기는 골탕도 먹일 수 있으니 그걸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얼마 씩 갹출하여 건네주는 게 나을 것이라는 귀 뜀도 해줬었다.


우리가 전에 이야기하던 속칭 – 개밥 - 을 주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현지 사정을 회사에 이야기하여 공금으로 이런 일을 해결하는 방안도 강구해준다는 언질을 보내놓고 있는 중이다. 미얀마 선원들의 귀국이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미뤄졌다. 아직 바이어와의 거래관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선원들의 하선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일 테지만 하여간 오늘의 귀국이 무산된 미얀마 선원들이나 우리도 마찬가지로 언제까지 이런 줄다리기 식 긴장이 계속될까 걱정스러운 분위기이다. 

늦게나마 선원들의 하선을 보류하라는 전문을 대리점에 보내고 있는데 서브 에이전트가 해군을 대동하고 점검하러 통선타고 왔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세상에 어느 국가에서 상선을 상대로 점검을 하러 해군이 승선을 한단 말인가? 안 된다며 강력하게 승선을 거부시키고 있는데 대리점에서 전화가 온다. 가만히 눈치를 보건 데 그냥 넘어갈 성질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대리점에서 정식으로 이메일을 넣어 요청하라고 했더니 그리하겠단다. 본선에서도 더 이상 우길 수 만은 없는 지경에 이르러 승선을 허가해 주었는데 세 명이라던 인원이 여섯 명으로 불어나 있다.

 

최근 선박의 타기에 비해 고색창연했던 두리의 타기

자그마치 6명의 인원이 올라와 점검하는 것이 레이더 등의 항해계기와 통신기기를 중심으로 점검하여 그 계기의 표면에 자신들의 것이라는 표시와 서명을 그려 넣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셋은 유니폼을 입었고 셋은 민간인 복장으로 유니폼을 입은 군인이 책임자로 본선의 계기들과 인명구조용 화약류를 일일이 개수를 세어가며 조사해 놓은 후 직접 물건에다 서명까지 해놓는다. 


나중 자신들이 가져갈 물건이라고 한다. 너무 어이없는 일이라 두고 보는 마음으로 지키기 시작하며 얼마나 시간이 걸려야 끝나겠느냐? 하니까 이미 시작한지가 한 시간 넘어 흘렀는데도 아직 두 시간은 더 해야 한단다. 


그래 이왕지사 그리 된 것이라면 나도 오기가 나서 끝까지 지켜보리라 자리를 뜨지 않고 그들과 계속 같이 있기로 한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지만 오늘 점심 굶기로 작정하고 그들에게도 아무것도 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계속 응대해 나갔다. 중간에 보스 되는 친구가 방으로 내려 가서 좀 쉬자며 운을 떼지만 못 알아듣는 척하며 계속 그들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멀쑥한 표정을 짓더니 소파에 가서 눈을 감고 아예 잠을 청하고 있다. 작정을 하고 그렇게 행동은 하고 있었지만 육체적으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한 번 발동한 오기는 끝까지 그렇게 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일이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하였다. 이제 일이 끝나 그들도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이 떠나야 할 때가 왔다.

그들이 조사한 계기 목록에 서명을 해주고 카피본까지 만들어 주었는데, 우물거리더니 또 다시 방에 가서 구경 좀 하자는 식의 이야기를 걸어온다. 안 해주기로 작정하고 있었고 지금 일도 다 끝났는데 다시 질질 끌려 갈 일은 없다 싶어 무슨 공식적인 더 봐야 할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런 건 아니라는 대답이다. 그 대답을 들은 후 내가 피곤해서 더 이상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시를 하며 거절한다. 그들이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브리지를 내려 가도록 2항사에게 앞장서 길 안내하도록 지시해주며 브리지에 남았다. 점심을 굶어가며 한낮의 시간을 이렇게 황당한 일을 당하며 지내고 나니 배고픔은 이미 저만큼 달아나 있다.


비칭의 시간까지 사흘 남은 날을 이렇게 보냈다.



*21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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