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Mar 18. 2021

D-DAY

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22

두리를 비칭시키려 승선한 비칭마스터 Capt. Anam과 함께

수요일.

드디어 비칭 디데이가 밝았다. 

두리호에 내가 승선해야 했던 이유의 마지막 장인 비칭 결행의 날이 찾아온 것이다. 매수인과 매도인간에 설왕설래하며 서로 밀고 당기는 기(?)싸움 덕에 우리는 드리프팅을 하며 기다리기도 하였고 닻을 내렸다 옮기기를 세 번이나 하면서 줄기차게 기다려 왔었다. 그 모든 일들을 추억으로 되돌릴 계약의 성사가 턱 앞에 다가 온 것이다. 


두리는 다가서고 있는 제 운명을 이미 감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기로 체념을 했는지 유별나게 조용한 모습으로 물 위에 떠 있다. 괜히 옆에서 지켜보는 내 마음이 쓰린 것 같아 별꼴 다 보네 불퉁거려 보지만, 오히려 두리가 감정 표현을 못하는 무생물이기에 더욱 안쓰러운 모습으로 비쳐지는 건 아닐까?

아침 여섯 시 삼십분 서울로 전화를 넣었다. 서울은 지금 9시 30분이다.


응답을 하는 담당자가 돈은 들어왔는데 내부적으로 조절할 일이 남아 좀 기다리라는 이야기로 대꾸해 온다. 지금 밖에서는 곧 도착하여 하선할 사람들의 짐을 가져가겠다는 터그보트가 오고 있는 중이다. 하선자가 있다는 일방적인 통보로 그냥 일을 진행하는 이들의 방식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이들은 우리의 대리점이기 앞서 바이어와 같은 통속을 이루고 있는 이익 집단으로 비쳐 보인다. 자신들을 고용한 오너에게도 이야기함이 없이 또 본선에도 적당한 시간을 둔 이멜도 없이 그냥 일의 진행에 임박하여 전화 한 통화로 일을 강행하는 방식이 참 답답하다. 


회사는 아직 그대로 다음 지시를 기다리라고 하지만 이제 돈이 들어와 있다니 곧 인계하여 준다는 지시가 내려올 걸로 짐작하여 다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세 명의 관리와 함께 승선한 대리점원은 지금 하선할 사람들의 짐뿐만 아니라 비칭 때까지 타고 있을 사람들의 짐도 함께 내린다는 통보를 하여 또 한 번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연락 받은 회사도 이제는 그들의 요청대로 일을 진행해도 된다는 선장의 판단이 서면 그대로 진행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바탕 시끄러운 북새통을 이룬 후 전 선원의 하선 짐이 미얀마 선원 12명과 함께 배를 떠났다. 남아있는 10명의 한국 선원들만이 마지막 비칭을 위한 대비를 하며 8명의 경비원들과 마지막 단계인 비칭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전화를 걸어와 비칭에 대한 협조 요청을 해왔던 비칭마스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시 한번 더 양묘(揚錨) 시간을 물어보더니 한 시간이란 말에 당장 지금부터 닻을 감아달라는 요청을 해 온다. 


10명 남은 전 선원의 S/BY ALL STATION 명령이 떨어졌고 이제 마지막 감아줄 닻이 있는 선수로 일항사와 갑판장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평소 같으면 네 사람은 더 필요한 부서이지만 이미 반 이상을 차지했던 미얀마 선원들이 모두 하선 해버린 때문이다.

-세븐 샤클 온덱(*주1), 체인 방향 12시 체인 장력 강함.이란 일항사의 보고를 들으며 

-훡슬(*주2)/브리지 라져, 엔진 사용할 테니 양지바람. 

너무 세게 앵카체인에 가해지는 장력을 줄여주기 위해 3항사에게 텔레그라프(기관사용 지시기)를 쓰도록 명령을 내린다.

-데드 스로우 어헤드! (*주3)  

어느새 4샤클 온덱까지 감아 들였지만 곧 승선하겠다던 비칭마스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훡슬/브리지! 4샤클 온덱에서 홀드온 체인.  


아무래도 그가 오기 전에 닻을 다 감고 나면 강한 조류에 남겨지는 경흘수 상태이므로 조선에 애를 먹을 일이 불을 보듯 뻔한데 우선은 그의 승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닻 감기를 중단한 채로 30여분이 지날 무렵 저 멀리 선미 쪽에서 어제 3기사를 데리러 왔던 그런 작은 보트가 역조를 받아 선수에 하얗게 파도를 뒤집어 쓰며 달려 오는 게 보인다,


다시 닻을 감아들이기 시작한다. 2샤클 온덱크가 되었을 때 비칭마스터는 배에 올라왔다. 속안머리가 많이 빠지고 주변머리를 길게 기른 그를 보며 우선 그의 경력을 확인하고 싶어 물었다.

연간 100~110척 정도 비칭 시킨다며 1991년부터 했으니 경력 18년째라고 한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그에게 몇 시에 비칭 시킬 예정이냐? 물으니 1530시에 비칭 될 거라며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 여 남아 있는 시간이다. 


-브리지! UP AND DOWN ANCHOR SIR.(*주4) 일항사의 선수 상황 보고가 들어 오자, 드디어 움직이기 위한 첫 엔진의 사용 명령이 떨어진다.

-Slow Ahead! (배의 전진 단계 중 두 번째로 반속전진 바로 아래) 

선수 2.60m, 선미 6.20m의 경쾌한 흘수로 만들어진 두리는 아주 가벼운 몸짓에 별로 큰 진동도 없이 엔진을 걸어주며 마지막 가는 걸음을 미끄러뜨리듯 내딛는다. 

-훡슬/브리지, 비상투묘 준비 되는대로 갑판장은 브리지로 올라오세요.

미얀마 타수들이 모두 하선한 후여서 브리지에서 타기를 잡아줄 조타수가 없으니 갑판장을 불러 올려 조타를 맡기기 위한 지시다. 


닻을 감아 올린 챨리(C) 묘박지를 떠나 배들이 줄줄이 정박하고 있는 브라보(B)와 알파(A) 묘박지를 차례로 지나 북상하고 있다. 두리는 무수한 정박선들의 마지막 인사라도 받는 관함 식에라도 참여한 양, 정박선들의 무리를 오른쪽으로 흘러 보내며 당당하게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정박선 중에는 저 멀리 사선 씨에메랄드호도 흐릿하니 보이고 있다. 어제 오후 우리 배의 3기사를 전선시켜 데려간 배이다. 그리고도 한 시간여를 더 달렸을 때 멀리 선수 오른쪽 해안가 가까이에 기다란 횡렬을 이룬 각종 선박들이 늘어서 있는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충 헤아려도 100여 척이 넘는 숫자이다.

마치 평범한 정박을 하고 있는 모양으로 보이는 저 배들이 모두 폐선중인 배들이다

비칭 마스터에게 물으니 모두 비칭한 배들이라며 우리도 거기에 보태러 가는 중이 아니냐는 듯한 제스처로 응수한다. 워낙 스크류가 들려진 상태이므로 사실 힘차게 돌려준 만큼의 알피엠을 스피드가 못 따르고 있다. 그래도 조류는 계속 함께 하며 들어 왔기에 27마일이라는 거리를 이 정도 시간에 도착하려는 것이다. 

배들이 줄줄이 꽁무니를 보이며 늘어선 사이의 빈자리를 향해 선수를 고정시키도록 타를 잡는 명령이 떨어진다. 미세조정까지 하는 타를 잡고 있는 타수 역할을 하고 있는 갑판장의 두 팔에도 힘이 점점 들어가는 긴장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눈에 띄게 선수로 가까이 다가오는 두리가 들어설 곳의 옆자리를 선점한 선박과 혹시라 도 충돌하는 게 아닐까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는 마음 초조하다.


더욱 가까워지니 그 배에서 일하던 인부들도 손길을 멈추며 우리의 접근을 쳐다보고 있다. 

외판을 뜯기어 앙상한 프레임(갈비)을 낱낱이 내보이는 모습이 마치 들판에 버려진 아프리카 야생 동물의 사체 같아 보인다. 이미 제 있는 속력을 다 내라고 명령받은 기관실에서 지금껏 돌려 보질 않았던 100알피엠을 넘긴 속력을 그대로 내려주지 않은 채 그 좁은 배들의 사이를 파고 드는 모습에 은근히 작은 충돌이라도 나는 건 아닐까 왼쪽 오른쪽을 넘나들며 보는 마음이 바쁘다. 


선수 양쪽으로 붉은 색과 노란색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데 배는 그 사이를 파고 들어 비칭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배의 전진이 멈추며 곧 엔진룸에서 냉각수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는 기관장의 보고가 올라온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속력으로 달리게 애를 쓰던 엔진의 모습

아무런 소리도 충격도 없이 이미 비칭이 끝나는 단계에 들어서 있음을 감지한다. 그동안 이 일을 위해 내 모든 신경을 경주하여 혹사시킨 상황이 너무나 쉽게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허무감이 온몸을 휩싸온다. 비칭마스터는 혹시 움직일 지 모르는 선수를 고정하기 위해 계속 엔진을 전속으로 사용하라는 주문을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선의 엔지니어는 본능적인 무리한 엔진 사용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에 계속 기기 작동의 이상 상황을 보고 해오고 있던 것. 

시계를 본다. 시침과 분침이 약속했던 15시 30분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지피에스(GPS) 눈금도 읽어본다. 22-25.74N, 091-43.79E 이다. 두리가 고의로 좌주(坐洲)시켜진 어느 뻘 밭의 현주소이다. 

뻘밭으로 들어선 두리 옆에 먼저와서 최후를 맞은 배들이 줄지어 있다

이런 지구상 위치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마는, 이곳이 앞으로 3개월 정도 두리가 해체되며 이곳 사람들의 밥벌이 장소로 쓰여질 장소라는 의미로 확인해 보는 마음이 씁스레하기만 하다. 드디어 모든 기기의 움직임이 멈춰진 조용한 두리의 몸체에서 수동 밸브를 열어 개방해준 5번 톱사이드 발라스트 탱크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소리만이 적막을 대신하여 나서고 있다. 

모든 파워가 멈춘 두리의 몸에서 마지막 피 같은 발라스트 해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제 두리와 영원히 이별해야 할 마지막 때가 된 것이다. 한번 더 뒤돌아 보는 심정에 갑자기 만감이 교차하며 착잡한 응어리가 환한 날씨를 무색하게 만든다. 한 달여 들었던 정을 떼어내면서 높다랗게 매달린 좌현 갱웨이(현문사다리)를 향하는 발걸음에 햇빛은 쨍쨍 비쳐지지만 왠지 서늘한 허무감만이 밀려든다. 곡예보다 더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출하며 줄사다리를 타고 내린 밑에는 선수와 선미가 껑충하니 높아 보이는 마치 베니스의 곤돌라를 닮아있는 통선이 삿대로 너울을 조절하며 기다리고 있다.

 

­-두리야! 잘 있어라~ 아니 잘 가거라. 


이윽고 떠나는 통선 위에서 가만히 속삭여 준다.

멈춰선 두리는 제 생애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가졌던, 희망봉도 돌아보고, 대 은하수에로 들어서는 길목도 빠뜨리지 않고 제대로 찾아가기는 할는지…… 

몸체를 모두 스쳐 지나 선수까지 뒤로할 때 올려다 본 두리는 꼿꼿하게 늘어뜨려준 닻줄과 함께 껑충하니 떠 오른 모습이 너무나 추워 보인다. 나는 따가운 무더위에 절로 땀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두리의 마지막 모습



*각주

*주1 - 샤클(Shackle) : 배에서 앵커를 내준 거리를 뜻하는 말로 1샤클은 27.432m를 뜻한다

*주2 - FO'CL(Forecastle) : 선수를 뜻하는 단어. 여기에서는 닻을 감아주기 위한 선수 양묘기(Windrass)주위에 있는 작업자들의 위치를 뜻함. 입출항시 훡슬의 책임자는 1등항해사

*주3 - Dead Slow Ahaed : 미속전진. 텔레그라프 상 가장 느린 속도로 전진함

*주4 - UP AND DOWN ANCHOR - 닻이 해저에서 뽑혀올라와 수직으로 섰음을 뜻함


*최종화로 이어집니다



이전 21화 바삐 돌아간 비칭 전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