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16
…날씨가 허락되는 대로 바로 출항 준비를 하시어 항해를 재기해주시고, CHITTAGONG(*주1) 항계 밖에서 회사에서 추가적인 지시가 있을 때까지 DRIFTING 해주십시오.
요는 치타공에서 입항 수속은 하지 않고 회사가 바이어와 합의가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멜이다. 문제는 항계 밖에서 드리프팅으로 기다려 달라는 지시가 영 마음에 차지 않는 사안이라는데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항계 밖 드리프팅은 책상에 앉아하는 이야기이지 현장에선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판단으로 일차 드리프팅할 장소를 내 임의로 정하여 그곳을 향해 출발부터 하기로 한다. 회사에도 대리점에도 그 위치를 향해 가서 도착하는 대로 드리프팅을 할 것이란 전문을 넣고 회신을 기다리나 회사에서는 대답이 없다.
대리점에서는 Dear Captain, Good day. Kindly update your Eta Chittagong. 이란 ETA 요청 전문이 오더니 조금 지나서 공식적으로 물어본 드리프팅 장소에 대한 대답을 겸해서 내가 지정한 장소에서 드리프팅을 할 수 있다며 좀도둑들이 승선한 보트(country boat)의 접근을 막아야 하는 당직 철저를 덧붙여 준다.
오늘은 토요일 회사는 쉬는 날이지만 대리점은 쉬지 않고 있어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이슬람교식 요일로 근무를 하기 때문에 금요일은 쉬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일하는 모양이다.
회사는 어제저녁까지 만해도 다른 항구를 기항하여 치타공 입항을 늦추는 방안도 이야기하며 본선의 엑스트라 콜링(추가 기항) 가능 여부까지 물어와서 초긴장시켰었다. 그러나 늦은 저녁에 그냥 치타공 쪽을 향해 항진하되 절대 항계 내로 들어가지 말고 항계 밖에서 드리프팅할 것으로 변화된 지시가 되어 그나마 한 숨 돌리며 밤을 넘겼던 것이다.
아침 9시. 예정대로 엔진을 스타트시켜 내 단독으로 결정한 곳을 향해 떠나며 이메일을 보낸다.
1) 본선에 대한 깊은 배려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2) 본선 18일 09시에 드리프팅하던 곳을 떠나 치타공 쪽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3) 일단 안전한 드리프팅을 위한 위치로 21-00N, 091-30E 근처를 선정하였습니다.
(COX'S BAZAR LT HO로부터 226도 37마일 떨어진 지점임)
4) 상기 지점 ETA를 현지시간 21일 01 시로 하였습니다.
5) 상기 지점에서 치타공 항계 내 투 묘지까지는 77 마일입니다.
6) 우리 측 대리점에도 상기 지점 ETA를 알려 준 후, 그가 추천하는 드리프팅 적합지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대처하겠습니다.
7) 상기 지점 도착 시 예상 ROB는 FO:164M/T DO: 160M/T입니다.
이제 이 정보가 21일 새벽에 유효한 정보이지만 그전에 월요일인 20일에 회사와 바이어 간에 선체 인도 인수에 만족할 만한 양해가 있기를 바라며 항진을 계속하고 있다. 아직 안다만해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지만 대기가 뿌옇게 보이는 게 아무래도 앞쪽 벵갈 해에 있는 폭풍이 끌어들인 기상 상황이 아닐까 갸웃해지며 바다 표면을 향해 눈길을 돌린다. 뿌옇고 시정도 약간의 제한을 받고 있지만 염려했던 만큼 바다 표면이 거친 것은 아니기에 가만히 한숨을 내려 깔며 안도를 한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던 폭풍 BIJLI는 지금쯤에는 육지에 올라가는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영원히 잠들러 가기 위한 기지개라도 켜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19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마침 안다만해에서 벵갈만으로 들어서는 PREPARIS SOUTH CHANNEL을 빠져나오고 있다. 해도에 기점 된 국경선의 윤곽으로 보니 지금 우리는 미얀마(버마) 영해를 통과하며 빠져나오고 있는데 대략 남쪽으로 50마일 되는 곳에 있는 COCO CHANNEL의 중앙에 양국 간의 국경선이 그려져 있다. COCO CHANNEL의 북쪽에서 차례로 올라가며 있는 LITTLE COCO ISLAND와 그 위의 GREAT COCO ISLAND가 미얀마 영이며 이곳에는 한번 수감되면 돌아 나올 수 없는 정치범들이 수용된 교도소가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미얀마 선원들은 한다. 해도로 보면 등대도 표시되어 있어 평범한 섬처럼 보이건만 어쩌면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연상시킬 수 있는 암울의 땅인 모양이다.
소설 속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용감하고 이지적인 인물이 나타나서 그곳을 벗어나 본토로 복귀하여 지금의 미얀마 정치를 개선하는 사람으로 나타났으면 바라는 것은 나의 소설(?) 쓰고픈 욕망의 발로 때문일까? 아니면 군사 독재 정권을 미워하는 시민의식 때문일까?
그동안 배는 방글라데시를 향한 직선 침로 347도에 정침 되어 10노트의 꾸준한 속력을 유지해주고 있다.
*각주
*주1 - 치타공(Chittagong) : 방글라데시에서는 차토그람(벵골어: চট্টগ্রাম)이라 불리우는 남동부 방글라데시에 위치한 도시로 벵골만에서 카르나풀리 강을 약간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있는 항만도시이다. 두리가 폐선될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폐선장이 자리하고 있다
*17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