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항 중 병원진료
부두의 바꿈 작업은 예정한대로 아침 7시에 접안하여 있던 10번 부두로부터 배를 떼어내어 13번 부두로 옮기는 순서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싣고 온 석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양을 퍼내고 남아있는 5만여 톤의 석탄은 내일 오전 중에 모두 양하한다는 계획이 결코 예정만이 아닌 것이 네 대의 UNLOADER와 충분한 SWEEPING장비를 계속 사용하여 작업을 하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예정은 입항하던날, 빠져 나왔던 나의 치아에 생긴 고장 - 보철 치아가 빠져 나온 것 - 을 어떻게 라도 손을 보고 출항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여지 없이 깨어주는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안되면 다음 국내 기항시 하리라 마음 먹으면서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부탁했던 포항지점에서, 오후 들어 김 대리를 통해 내일 아침 여덟 시 삼십 분에 밖으로 나가 치과에 갈 수 있게 수배를 해 놨다는 연락을 준다.
아침이 되었다. 떨어져 나온 두 조각의 보철 치아를 곱게 싸 가지고 회사에서 수배해준 차를 타고 치과의원을 찾아 나섰다.
찾아간 병원은 치과가 아니라 정형외과였다.
종합병원을 이용하여 선원들의 상병이나 치료를 하였더니 너무 시간을 질질 끌고 하여 이번 나의 경우처럼 출항시간을 받아놓고 그에 맞춰야하는 시간을 다투는 경우에는 알맞지 않기에 아예 의원을 이용하는 방법을 바꾼 것이란다.
개인 의원을 이용하여 선원들의 치료를 의뢰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점에서는 여러가지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 병원의 사무장이 나를 치과로 데려가도록 한 것인데 9시반이 되어야 치과 의사가 출근을 한다며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자며 차트를 만들자고 한다.
말로 하기보다는 아예 주민등록증을 보고 쓰라고 준 내 주민등록증을 보더니
-전씨네요? 어디 전씨십니까?
하며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담양 전씨입니다.
대답을 하며
-그쪽도 종씨인 모양이지요?
하니
-예. 저도 본관이 담양입니다.
반가운 표정으로 대답이 돌아온다.
아무런 감정의 개입됨이 없는 딱딱한 분위기에서 사무적으로 진행될 이야기였지만 그런 인사말을 주고 받은 후에는 좀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새해 덕담도 주고 받으며 이야기는 잘 진행되었다.
이제 치과로 가자며 병원을 나오더니 정거해 있는 그 의원의 앰뷸런스로 가서 문을 열고 타도록 권유한다.
아직 9시 30분이 채안된 치과에는 의사가 출근을 하지 않고 있어 잠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덥수룩한 모습의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의사는 내가 내민 보철 치아를 보더니 두말 없이 다시 끼워 넣어준다며 현재 치과에서 가진 가장 강력한 접착 시멘트를 사용한다면서 두 군데의 붙여야 할 치아를 깨끗이 씻어내고 소독부터 해준다.
완벽한 치료라면 제대로 보살펴 보면서 보철도 새로이 만들어 끼우는게 정석이지만, 내형편이 당장 내일이면 출항해야 하는 바쁜 일정인 줄을 알기에 임시조처로 해준 치료이다. 나로서는 不敢請이언정 固所願으로 감지덕지 할 일이다.
두 군데의 치아를 한번만 치료하고 끝낸 후 보철을 다시 끼워 넣고 꼭 물고 있으라는 지시에 어금니가 뻐근하도록 물고 있었다. 한참 지난 후 삐어져 나와 굳어진 시멘트의 조각들을 떼어내고 치료가 끝났다고 이야기 한다.
물론 임시변통으로 한 조치이니 다음 항차 국내 기항시에는 새로이 해야 될 거라는 이야기를 곁들여 주며 잘가라고 인사까지 해준다. 고마운 마음에 상냥하고 깍듯한 인사를 남겨주며 치과를 나섰다.
입을 앙다물고 한번 씹어보는 형태를 취해보니 아무래도 며칠 이가 빠진 상태로 있었기에 조그마한 변형이 있었음을알게 하려는 듯 이의 마주치는 부분이 조금은 덧대어진 것처럼 좀 불편함을 주어 은근히 걱정을 부른다. 헌데 점심을 먹고 나서와,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서도 차이가 나는, 좀 더 편한 징후로 돌아가면서 마음을 놓게 만들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