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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두리 호와의 인연기

15. 이티 에이 두 번째 수정

by 전희태 Jun 27. 2018

15. 이

15.ETA(도착 예정시간) 두 번째 수정

사진 : 석양이 붉게 물 들어가는 서쪽 하늘과 수평선사진 : 석양이 붉게 물 들어가는 서쪽 하늘과 수평선

 



  우리 배가 이렇게 무시할 수 없는 싸이클론이라는 재해의 위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난 상황을 맛보고 있는 것은 본선의 인수 인도의 기간을 재 합의한 회사의 공도 크겠지만, 우선은 우연 여부를 떠나 회사나 본선 우리 모두의 복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17일 아침에 기관의 시동을 걸어 보기로 한다. 한번 움직여서 그동안 드리프팅으로 밀려난 거리를 조금은 단축시키고 아울러 기관의 작동 성능도 점검하여 내일에 떠날 항행에 대비한 준비 동작을 해보려는 것이다.  


 사흘을 바람과 물결과 조류에 몸을 맡긴 채 드리프팅한 결과를 결산해 본 본선 위치의 추이는 075도 방향으로 75마일 정도 밀려난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사흘이란 72시간 동안 75마일 밀린 것이니 한 시간에 1마일 남짓 밀린 셈이다.

 

 옆으로 밀렸으니 그렇지 침로의 뒤로 밀렸다면 그야말로 본선의 10노트 속력으로도 7시간을 투자하여 열심히 달려야 다시 본전에 들어가는 형편을 초래하는 거리인 셈이다.

  

 그러나 저러나 이제부터는 함부로 연료유를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도착하는 시간까지 혹시 있을 수 있는 긴급 상황을 대비해 연료 소모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열심히 아꼈다가 폐선장에 도착하였을 때 너무 많은 양의 기름이 남는 것도 별로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기에 그 적당량을 남기며 써야 한다는 게 참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어쨌든 모자라는 것보다는 그래도 남는 쪽이 여러모로 나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일에 임하기로 작정을 한다.


 앞으로 사흘을 달려야 하는데 쓸 수 있는 기름은 일주일 정도 분만 가지고 있으니, 사흘 정도의 예비 기름으로 바다 위에서 만나는-주로 기상 상황이지만-, 의외의 일 때문에  늦어질 경우도 챙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서 닻을 내리고 입항수속을 해야 하는 곳인 치타공 항 주위의 수심은 8 미터에서 조금 더 되거나 약간 빠지는 얕은 곳도 군데군데 가지고 있는 별로 좋지 않은 묘박지라는데 문제가 있다. 


 게다가 그곳은 4~5노트의 빠른 유속을 가진 조류가 있으며 더 하여 어떻게 숨어들지 모르는 해적-도둑-이 바글거린다는 소문까지 나 있는 곳이다. 


 그런 열악한 속을 확정된 예정도 없이 막연히 다가가서 떠있는 동작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건 까딱하면 송장 치고 살인 누명 쓰는 거나 진배없는 고통을 가질 수도 있는 형편으로 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조심 또 조심하여 사고는 피해야 하는 것. 우선 드리프팅 여건이 투묘지 부근보다는 월등히 나은 곳을 선정하여 그곳을 향하기로 한다.


 항구의 경계 내에 들어서지 말고 외항에서 드리프팅을 하라는 지시를 가지고 두 번에 걸쳐 이티 에이를 수정하며 닷새를 기다리고 있던 안다만을 드디어 떠나려는 마지막 준비를 한다.  


 치타공에서 77마일 덜어진 곳에서 일단 기관 정지하고 기다린다는 계획을 가지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최종 목적지인 치타공 외항 투묘지에서 77마일이나 떨어지는 약점이 있어 도착 예정 시간을 산출할 때 그만큼의 시간을 염두에 둔 바쁨이 있게 된 것이다. 


 그곳에 도착할 무렵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지금 움직이고 있는 BIJLI의 그동안의 동태를 계속 차트에 그려 넣어 시커먼 바람개비 모양의 위치 표시가 줄을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해도에는 바람개비 모양의 마지막 무늬가 치타공의 해변 앞에 커다랗게 그려 넣어진 채 남아있다.  

하루의 마지막을 마감하려는 태양이 서쪽 하늘가 수평선을 향해 떨어져 가고 있다하루의 마지막을 마감하려는 태양이 서쪽 하늘가 수평선을 향해 떨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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