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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1. 2019

철조망과 함께  바다를 가르며

날카로운 철조망 두른 채 조용한 바다를 가다.

 

동경 78도선 위에 올라 탄 채, 남행하는 180도의 침로를 택한 본선은 오전 10시를 지나며 적도를 넘어섰다.


 말없이 쏟아 내주는 환한 햇빛의 열기를 차분히 식혀주는 조용하기만 한 해면 위로 어쩌다 바삐 날아 오른 날치들의 날갯짓이 빚어내는 작은 파문이 더욱 사방을 고요함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이 계절, 이 바다가 베풀어 주는 가장 좋은 날씨를 만났으니 편안한 항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 속에 삼대양의 막내인 인도양의 심장부를 빗겨 내려가는 항해는 이렇듯이 조용히 남하를 계속하고 있다.


 레이더 화면에서 4~5마일 선수 앞쪽에 흰 점으로 나타난 물표의 출현을 확인한다. 쌍안경을 들어 눈에 대며 초점을 조정해 물표를 가까이 끌어다 본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위에 보이든 까만 점이 약간 확대되면서, 어선이라고 판단을 하는 순간 찔끔하는 경각심도 같이 스며 나와 재삼 자세히 살피기를 계속한다.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의 한참 동안.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 없었던 어선의 모습


이 바다를 지나면서 만났던 어선들의 모습-1


이 바다를 지나면서 만났던 어선들의 모습-2


이 바다를 지나면서 만났던 어선들의 모습-3


 불과 10년 정도도 안 지났을 예전의 세월이지만, 특히 이렇게 분위기 좋은 기상 상황 아래서 오래간만에 만나게 되는 배라면 무조건 반갑기만 했던 시절을 우리는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같은 상선뿐만이 아니라 고기 잡는 일 때문에 우리 배의 뱃길에 약간의 지장을 주는 어선일지라도 그런 어려움을 감내해주며 모두 만선을 이루어 귀항하라고 빌어주는 풍요로운 심성으로 만남과 헤어짐의 행사를 즐기며 항해를 이어가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선이라 식별해 내면서도 반가운 마음보다는 혹시나(?)하는 살 떨리는 의구심마저 품어가며 그 배의 모든 것을 미리 살피려고 더욱 애쓰는 세파로 세상은 달라진 것이다.


 해적들이 어선을 나포하여 그들의 해적 질에 이용하는 모선으로 쓰는 경우도 흔하게 생겨나고 있기에, 만나는 어선 모두를 우선은 의심부터 하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변해진 환경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지금 우리 배는 철조망이 둘러쳐진 아주 날카로운 방어태세의 철옹성이 되어 타인의 접근을 불허하는 태도로 그 어선과 가까워지고 있다. 만약에, 만약에 그들이 해적선이었을 경우에도 대비하려는 고육지책인 것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칼날들을 촘촘히 매달은 강철로 된 둥근 철사 줄이 두 줄씩이나 뱃전을 휘감아 선수에서 선미까지 둘러쳐져 있는 모양을 순수한 어선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면 어떤 감정부터 앞설까? 


누가 봐도 편안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해적들이 달려드는 것을 멈칫하게 만들어주며 궁극적으론 그들의 침입을 막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있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손가락, 팔뚝, 심지어는 온몸에 날 수 있는 상처에 구애받지 않고 무조건 조심을 하며 바리케이드를 쳐 주었던 것이다.


 무장 아닌 무장을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어적 개념의 조치이기에 달리고 있는 주위 바다 위에 떠 있어 만나게 되는 모든 작은 선박들을 우선은 무서운 해적들 중 앞장선 작은 공격 선일지 모른다는 가정을 앞세워가며 살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사용하여 눈으론 아직 식별이 곤란한 먼 거리에서부터 미리 사진을 당겨 찍어 면밀히 살펴보기도 또 한 계속하고 있다. 


 그 배에 작은 보트가 실려 있는지? 혹은 높은 곳에 오를 수 있게 걸치는 사다리라도 보이는 건 아닌지? 총이나 칼 등 무기로 보이는 건 없는지? 


 열심히 확인하여 그런 우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순수 어선이라는 심증이 가면 조금 안심하는 마음이 되어 옆으로 지나가는 걸 허락하는 심정으로 눈길을 주며 지나치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거다.


 이윽고 육안으로 서로를 확인할 만한 거리로 스쳐 지나갈 때쯤 조심스레 윙 브리지로 나가서 두 팔을 흔들어 반갑다는 인사를 보내준다. 


 그들도 같이 팔을 흔들어 답례를 해 온다. 이때쯤에야 해적이란 단어를 잠깐 잊으며 예전의 다정 다감했던 바다 위에서의 만남을 재현할 수 있음에 잠깐 긴장의 끈을 늦추어 본다.


 그러나 손을 흔들어 주던 어부들의 팔이 그냥 멈추고는 무언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살피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은 몸짓에 내 눈길은 다시금 우리 배의 철조망을 향한다. 


 뱃전의 난간을 둥글게 빙 둘러쳐서 그 누구의 범접이라도 막으려는 듯 주위와 엄연한 구분을 짓는 날카로운 철조망이 햇빛에 반짝이며 빛나고 있다. 그런 본선과 지나칠 때에 손을 흔들어 인사와 답례를 하던 그들이 갑자기 손 흔들기를 멈추고 가까이 지나치는 우리 배의 모습을 향해 새삼스레 저희들끼리 손짓해 가며 분주하더니 사진에 담아주려는 행동으로 바빠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적도 부근의 인도양에서 어선을 만나며 예전과 다른 긴장감을 가지고, 짐을 싣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력 14노트를 넘어선 기대 이상의 스피드를 보여주고 있는 우리 배 옆을, 그렇듯이 그물을 끌고 지나치든 그 어선의 속력은 8노트였다. 


 바다 위에서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상봉과 이별의 행사에서 이렇듯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고 있었다.

비상시를 대비한 퇴선 훈련을 위해 구명정 갑판에 모여 지참물을 점검하고 있는 승조원들


비상 소화펌프의 작동으로 시원스레 뿜어 나오는 물줄기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달리고 있는 우리 배를 바다는 너무나 조용하게 맞이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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