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의 인연

그리고 뜻밖의 나

by 딴짓


지난밤, 우리는 같은 방에서 머물렀지만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다. 한참 동안 마을을 쏘다니다가 지쳐 돌아오니 창가 침대에서 한 여성이 세탁한 양말을 걸어두고 안대를 하고 자고 있었다. '철저하군.'



다음 날, 그녀는 공용 주방에서 내 접시를 보며 감탄사를 날렸다. 야채와 토마토, 햄을 넣어 만든 그냥 샌드위치일 뿐인데, 알록달록해서 그럴싸해 보였나.

"내 아침 식사는 구운 빵과 커피뿐이거든."

오 이런.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샌드위치는 하나뿐. 남은 방울토마토를 건네자 그녀는 "정말?"이라며 반가워했다. 이건 흔한 방울토마토가 아니야. 6천 원에 겨우 열 개 들은 거라고. 유 노우?



"난 오늘 떠나."
"어 나도. 나는 미바튼(Myvatn)으로 가."

"뭐어!!! 나도 미바튼으로 가! 나 이거 먹고 해치하이킹용으로 글씨 쓸 박스 얻으러 마트 가려고 했어!"

태워줄 수 있냐는 말은 패스. 주책없이 기쁜 마음부터 불쑥 나와 버렸다.

"잘 됐다! 나랑 같이 가면 되겠네. 나는 홀리드로 가거든."

"뭐라고??? 나도 그 숙소야!!!!!!"

"진짜? 대박이다!"

우리는 깔깔거리며 우리의 우연을 신기해했다. 나는 뒤돌아서 한숨을 쉬었다. 휴우... 살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내륙을 여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용 가능한 수단은 버스가 유일하고, 그 또한 아이슬란드의 테두리를 따라 운행되는 것만 있다. 최종 목적지인 동부 끝까지 찍고 이제 서부로 열두 시간을 죽 되돌아오기에는 뭔가 아쉽다고 하자 숙소 주인장은 내륙의 미바튼을 들러 볼 것을 추천했다. 그래? 그럼 가보지 뭐. 히치하이킹해 보지 뭐. 지도를 확인해 보았다. 고속도로에서도 꽤 안쪽으로 들어와야 한다. 고속도로에서 내려달라고 해서 거기에서 숙소까지 좀 걸어가 봐야겠네. 몇 번의 히치하이킹으로 생긴 이 용감함과 뻔뻔함이란.



두 시간 반의 운전 끝에 도착한 미바튼의 숙소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런 곳에 숙소라니? 마을이 아니라 그냥 화산지대의 한 복판. 그러니까 이런 곳을 바위가 든 듯한 배낭을 메고 오려고 했던 거네? 그곳까지 차를 얻어 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풀을 밟을까 봐 조심하게 돼. 어렵게 자라고 있는데 밟으면 기분이 영 좋지 않거든."

호주 아가씨 헤더는 내향적인 것 같으면서도 호기심이 많고 생각이 깊었다. 우리는 수백 년 전 용암이 쓸고 지나간 평지를 멀리 걸어 나갔다. 과거 그곳의 화산 폭발 장면을 상상하며 조금 몸서리를 치다가, 뭔가를 알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무릎을 굽히고 땅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서로 꼭 붙어서 다니지 않고 각자 따로 움직이면서 뭔가 특이한 것이라도 발견하면(사실 봐도 뭐가 뭔지도 몰랐지만), 예를 들어 땅의 갈라진 모양이 조금 다르다거나, 함께 서서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곤 했다. 혼자 그 길을 걸었더라면 낯선 광경에 기가 죽어서 채 5분도 걷지 못했을 테지만 둘이 있으니 마치 탐험가가 된 듯한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탐험가인 헤더가 거침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만히 미소가 지어졌다.



광야의 한복판에 거짓말처럼 서 있는 숙소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우리 둘의 체크인 후 주인장도 사라져 버리고 투숙객은 우리뿐인 주방에서 우리는 아이슬란드의 몽환적인 음악을 틀어놓고 야채 가득 신라면을 끓였다. 나란히 차를 타고 오면서, 그리고 중간중간 낯설고 기이한 화산지대를 함께 걷고 거대한 산들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우리는 차곡차곡 가까워졌다.





"그게 뭐야?"

저녁을 먹고 기분 좋게 앉아 있는데 헤더가 가방에서 솜뭉치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것을 보자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호주에서부터 가져왔어. 요즘 호주에서는 옛날 할머니 시절 취미가 다시 핫해지고 있어. 나도 여행지에서 틈날 때마다 만들곤 해. 해볼래?"

"풉, 나 완전 똥손이야. 나 진짜 이런 거 해본 적 없는데..."
그러나 어느새 나는 색을 고르고 있었다.




종이학은커녕 리본도 묶지 못하는 나는 헤더와 마주 앉아 양모펠트공예를 시작했다. 부스스 부풀어 있는 양모에 끊임없이 대바늘을 찔러 밀도를 높이고 부피를 줄인 후, 같은 방식으로 다른 색의 양모를 이어 붙이는 방식. 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숙소. 식곤증으로 나른한 분위기에서 뜬금없이 펠트 만들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 조금 웃기면서도 재미있었다. 아름다운 색감과 부드러운 촉감이 편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손으로는 반복 작업을 하면서 수순처럼 각자의 소소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며 아들 이야기, 직업, 꿈과 고민 등. 앳된 보이기만 했던 그녀는 알고 보니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면서 락밴드의 드러머이기도 했다. 작년에는 호주의 kpop 페스티벌에서 협업을 하기도 했다. 그녀 또한 유럽 여행은 처음인데 그 시작이 아이슬란드라고. 한국과 호주의 두 나라의 교육에 대한 관점에서부터 공예가인 남자 친구와의 첫 만남까지.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시울을 붉히다가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아들과 떨어져 있으니까 어때?"

스무 살 가까이 어린 아가씨와의 격식 없으나 진지하고 다정한 대화. 그녀의 질문에 나는 갑작스레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 내 입은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 와서 보니 내가 아들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더라고. 그동안 생각만큼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정과 현실에서 도피하듯이 떠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들을 떠올리거나, 관련된 생각을 풀어내거나, 정리하지 않더라고. 가족이 거의 떠오르지 않더라고 말하며 나는 하하 웃었다. 말하면서 나 스스로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냥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마치 3인칭의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의 나 자신의 모습이 참 좋았다고, 나 혼자로 충분히 좋았다고, 대단히 잘 지내고 있는 날 보며 스스로가 믿음직스러워졌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정돈된 문장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독립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들들과 내 집으로부터 도피하듯 떠나온 아이슬란드인데, 여기에서 제대로 리프레시든, 스트레스 해소든, 마음먹음이든 뭐라도 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좋은 엄마가 되었답니다,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일 뿐만 아니라 정상적이 않나. 그런데 혼자 살 수 있겠다,라는 당황스러운 생각이 느닷없이 그것도 명확하게 떠오르다니. 아니 아들이 독립하는 것도 아니고 내 독립이라니. 뭐 한국으로 돌아가 이혼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했다. 아니, 당장 뭘 하겠다는 건 아니라 혼자 사는 거가 가능하겠다고.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독립 그거,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고. 어떤 식으로든. 그러니까 내 말은, 이 이야기의 주어가 왠지 '나'로 바뀐 거 같다고.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던 건데. 내 머릿속에 뭔가 조금 달라진 새로운 질서가 생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내 생각에만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여행에 대해 물었다.



2차 세계대전 때 호주로 도망을 나온 조부모. 그녀는 조부모나 부모로부터 자신의 뿌리인 헝가리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가 몇 년 전 영국에 있는 아버지의 형제와 연락이 닿았다. 헝가리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가보지 않겠느냐는 그의 제안에 그녀는 가족 대표로 자신이 가보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아이슬란드에서 시작해 영국과 덴마크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헝가리로. 뿌리를 찾는 여행을 응원한다고 말을 건네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실 뿌리는 잘 모르겠고, 그냥 이 여정이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맞아, 어떤 일에 굳이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어. 그냥 해보는 거지. Give it a shot.




여행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는 rerurn trip의 첫날이 저물고 있었다. 그녀와 하루 열두 시간을 꼬박 붙어 있으면서 느낀 편안하고 충만한 기분. 그 뜻밖의 인연은 선물이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시간은 바로 코 앞에 있었다.




다음 날, 그녀는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들러야 할 아퀴레이리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혹시 다시 가 보고 싶은 곳 없어?" 다정한 그녀의 배려로 우리는 아퀴레이리의 구석구석을 함께 걸었다. 중고 서점에서, 카페에서, 거리에서 다시 마주친 그곳의 풍경이, 그 동반이 참 좋았다.



"나는 일주일에 5일은 생선을 먹어. 그렇게 50년 넘게 먹어왔지. 아이슬란드는 생선이 정말 신선한데 식당에서 먹으려고 하면 많이 비싸니까, 마트에서 냉동 연어를 사서 꼭 해 먹어 봐. 냉동이라도 바로 잡아서 급속 냉동한 거라 정말 신선하거든." 며칠 전 나를 태워다 준 지긋한 연세의 아이슬란드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구운 연어가 한 덩이 올라간 크림 파스타를 오물거렸다. "아이슬란드에 와서 제대로 된 음식 처음 먹어 봐." "나도." 눈 마주치며 큭큭. 기분 좋은 햇살, 야외 테라스. 그렇게 우리의 만찬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을, 그녀와의 마지막을 유예하고 싶다는 생각. 나는 카푸치노를 홀짝거렸다.



이번 여정의 시작점인 레이캬비크로 출발하는 버스가 출발했다. 왈칵, 슬픔이 몰아쳤다. 여행 중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보석 같은 헤더와의 만남도, 비로소 이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인식도.



나는 귀국을 했고, 가끔 헤더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아름다운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여행 중간중간 좋아하는 울wool을 만지작 거리고, 음악을 흥얼거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온기가 돌았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그녀를 응원했다.



"See you."

또 보자.

우리는 그것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 보자'라고 말한다. 그것이 끝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음도 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내포하고 있다. 실상 SNS로도 연결되어 있으니 작별은 아니다. 미소가 눈부신 너, 소중한 너, 우리의 다정한 대화.


See you.

어느덧 이 연재가 30회가 되었네요.
1개 연재 당 총 30편 밖에 쓰지 못하게 되어 있네요ㅜ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아서
다음 연재로 조금 더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힘을 내주세요 독자님. 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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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