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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Oct 24. 2024

책 속의 여자들에게 기댈 수밖에

태어난 김에 살긴 사는데. 사는 건 원래 고달픈 거고, 그렇게 복작거리고 살다가 점점 늙고 가난해지면 누구나 암, 심장병, 폐렴, 치매, 혹은 골반 골절로 죽게 된다는 것도, 그렇게 삶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그런데 유달리 좀 그런 날이 있잖은가. 너도 싫도 나도 싫은 날. 슬픔, 분노,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네 눈빛을 그냥 외면하고 싶은 날. 엄마인 내가 몸서리치게 싫은 날. 그렇게 또 정처 없이 걷고 있는 오늘 같은 날. 






책 <예술하는 습관>은 여성 예술가들이 어떻게 창조성을 이끌어 내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 미국인이고 이미 저 세상 자도 많다. 그럼에도, 내가 아무렇지 않은 존재가 된 것만 같은 어느 날이면, 나는 이 책을 가만히 꺼내 들 수밖에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131명의 여성 예술가. 그들의 용기에, 분노에, 슬픔과 좌절에, 꿈에, 나는 그저 기댈 수밖에. 



오늘의 내게 와닿은 27가지의 문장을 기록하고 응시해 본다. 그것 중 그 어떤 것이라도 당신을 멈춰 세운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에너지, 에너지, 또 에너지다. 고귀함과 평온함, 지혜를 갈구하지 마라. 이 멍청이들아! 

_수전 손택(1933-2004), 미국의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사회운동가 



손택은 엄마로서의 의무를 우선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데이비드에서 요리를 해주지 않았어요. 그냥 음식을 데워줬죠." 

_수전 손택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고 일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기치 못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두어야 한다. 

ㅡ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 미국의 여성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올바른 상태가 되는 게 어렵다. 

ㅡ매기 햄블링(1945~), 영국의 화가이자 조각가 



전 분노에서 직접 걸려낸 상당히 많은 아드레날린을 복용하며 살고 있어요. 타협하는 사람들, 이 애처로운 세상에 아직도 존재하는 무기력하고 무관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분노에서 얻은 것들이죠! 

ㅡ도로시 톰슨(1893-1961), 미국의 저널리스트



브라우닝 부부는 시인 전용 식품군을 선호해서 커피와 빵 약간, 견과류, 포도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_엘리자베스 베닛 브라우닝(1806-1861, 시인)에 대한 전기 작가 줄리아 마르쿠스의 말 



해야 할 일을 하는 척하기만 하면 인생은 거의 완벽해진다. 문간에서 그냥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는 이야기들을 한번 보라. 왜 그 이야기들을 안으로 들이지 않는가? 결국에는 저 바깥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_캐서린 맨드필드(1888-1923), 작가 



(중략) 하지만 바르다는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경험상 영화 세트장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바르다는 결국 집에서 새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제약에서 뭐가 나올지 궁금했다. 이러한 한계를 안고도 내 창의성을 다시 끌어낼 수 있을까?" 

ㅡ아네스 바르다(1928-2019), 프랑스 최초 여성 영화감독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당신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면 열일곱 살에 사랑에 빠져 유혹당하고, 버림받고, 아기의 죽음까지 겪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겪고도 살아남는다면 더욱 멀리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ㅡ스텔라 보엔(1893-1947), 예술가 



일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잠에서 깨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을 때 캐천은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 크레옹이랑 종이 있다!" 그리고는 크레용과 종이를 아래층으로 던졌다. 

ㅡ릴라 케천(1925-1998), 미국의 조각가 



날 잡아당기는 힘이 많아야 흥미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힘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ㅡ그레이스 페일리(1922-2007), 미국의 정치 운동자, 교사, 작가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자 마음 상태가 글쓰기에 그렇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마음 상태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더욱 많이 느껴야 해요. 자신의 생에 초연해진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을 지배할 준비 태세가 좀 더 잘 갖춰진다고 할 수 있죠.

ㅡ나탈리아 긴츠부르그(1916-1991), 이탈리아 작가 



글쓰기와 삶이 하나가 되길 바란다. 그리하면 글쓰기가 종이 위에서 살아가는 내가 된다. 내가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기 전에 살고 있었던 삶의 연장선이 된다. 

ㅡ실라 헤티(1976~), 캐나다 작가 



구석지고 좁은 장소면 충분하다. 

ㅡ엘레나 페란테 



저한테는 모든 일이 창의적 과정을 중심으로 돌아가요. 그 반대가 아니라요. 일상적 관례라느니, 일정이니 하는 건 필요 없어요. 아이디어들과 작업이 자동적으로 빈 공간을 메워주니까요. 

ㅡ조세핀 맥세퍼(1964~), 독일 아티스트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글을 읽을 때도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아요. 

ㅡ제이디 스마스(1975~), 영국의 소설가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자기 마음이 자기 게 아니죠.

ㅡ아그네스 마틴(1912-2004), 캐나다 태생 미국 화가 



아내의 창의성을 너그럽고 편안하게 인정해 줄 수 있는 남자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어. 남자는 그럴 수가 없어. 그러고 싶어도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그런 아내를 의무적으로 대할 뿐이야. 원래 그런 거야. 재능 있는 여자들이 보상을 얻는 대신 치러야 하는 대가지. 

ㅡ아그네스 데밀(1905-1993), 미국의 무용가 겸 안무가 



혼자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두 달의 시간을 훔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무너지더라도 밤낮으로 글을 쓰겠다. 

ㅡ헤리엇 제이콥스(1813-1897),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작가 



나를 찾아오는 이야기를 필사한다. 

ㅡ글로리아 네일러(1950-2016)



나는 나 자신을 때리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ㅡ르네 콕스(1960~), 자메이카 출신 아티스트 



브룩스는 '가장 흥미 없는 가정주부 역할'을 주로 맡아서 했을 때도 계속 글을 썼다. "대체로 시는 조각조각 난 상태로 다가와요. (...) 그러면 희미하게 풀어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종종 완성본이 초고와 똑같아지기도 하죠. 가끔씩 그래요. 힘든 일이에요. 언제나 점점 더 힘들어지죠. 

ㅡ그웬돌린 브룩스(1917-2000), 미국의 시인 



전 항상 싸우고 있죠.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방해되는 것들을 치우기 위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요. 

ㅡ캐럴리 슈니먼(1939-2019), 미국의 퍼포먼스 예술가 



제가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면 그냥 빵과 물을 먹을 거예요.

ㅡ에밀리 포스트(1872-1960), 미국의 작가 



제 관심사는 여자의 시간과 관심을 갉아먹는 집안일에서 안전하게 멀어지는 것뿐이에요.

ㅡ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1892-1950), 미국의 시인이자 극작가



예술가라면 누가 뭐라 하든 예술가와 결혼해야 해요. 그게 아니라면 결혼은 꿈도 꾸지 마세요. 예술가가 예술가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겠어요?

ㅡ엘리너 안틴(1935~), 미국 아티스트 



아버스의 예술적 동기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촬영 대상을 어떻게 고르느냐는 질문의 답이었다. "신경에 거슬리는 대상을 선택해요."

ㅡ다이엔 아버스(1923-1971), 미국의 사진작가



워튼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인생은 "똑같이 실재하지만 전혀 상관이 없는 두 세계로 나뉘어 있고, 이 두 세계는 나란히 존재하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라고 했다. 

ㅡ이디슨 워튼(1862-1937), 미국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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