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작가이다. 유명문학상도 수상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전업 작가들이 그렇듯, 그도 글쓰기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나는 지인의 소개로 그에 대해 알게 되었고, 우선 그의 책 한 권을 읽어 보았다. 꽤 괜찮았다. 글쓰기라는 목적성을 가진 책인데도 그 자체로 흥미로웠고, 내용은 탄탄했으며, 실제 배울 점도 많았다. 나는 그의 개인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그의 글쓰기 클래스가 궁금해졌다.
우연히 온라인 글방에 합류한 게 작년 여름. 이후 읽고 쓰는 자로서 설레고 신나던 날들은 1년이 지나자 안온함으로 수그러들더니 급기야 두세 달 전부터는 마치 수순처럼 시들해졌다. 그동안 글쓰기는 나의 삶에서 무엇보다 강력한 도파민이었는데, 이제 나는 쓰고자 하는 욕망이 흐릿해져 가는 것을 숨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약간의 좌절과 또 약간의 슬픈 마음이 교차했다. 완벽한 방관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글방에 머물며 매일 글쓰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내 글은 몇 달 전까지 쓴 글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생기를 잃었고, 그러자 더 이상 내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의 착각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근 몇 달 동안에 썼던 글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분량도 확연히 줄어 있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시늉만 하며 몇 달이 흘렀고, 이제 새로운 도약과 도전이 필요해 보였다. 이만하면 기초 훈련은 된 것 같은데, 여기에 뭔가 지도가 주어진다면, 그러면 글쓰기에 날개까지는 아니어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10회에 **만원. 글쓰기 클래스에 대한 소개글을 열심히 읽어가던 나의 시선은 명시된 금액 앞에서 멈칫했다. 이름 있는 작가가 책을 선정해 주고, 글쓰기 지도까지 해주는 수업. 그의 피땀눈물과 노하우를 생각해 봤을 때 절대 얼토당토 한 금액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망설여졌다. 주머니야 늘 가벼웠고, 인색한 자아가 나를 찔렀다. 엄마인 내가 나 배우겠다고 이렇게 돈을 써도 되나? 어김없이 엄마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죄책감을 유발하는 식상한 패턴.
나는 잠시 망설이다 C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저러한 수업이 있는데 대략적인 비용을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저는 글쓰기를 배우러 가 본 적이 없어서 가격을 몰라요.
아차 싶었다. 활자중독자이고 작가이며 편집자로 이 바닥에서 20년 넘게 활동 중인 베테랑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서둘러 나의 무례함에 대해 사과했고 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런 걸 배우러 다닐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네?
글쓰기 지도 책이 좋은 게 많이 나와있고요. 추후에 좋은 편집자를 만나 자신이 자주 하는 실수를 찾아서 고쳐 볼 기회도 있을 거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뭘 써야 할지를 생각하고, 그걸 깊고 의미 있게 해석해서 글로 풀어놓는 것, 그러한 노력이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쓰고, 그걸 읽고, 스스로 계속 수정해야 해요. 그러한 과정이 글쓰기가 제일 늘어요. 한 마디로 얘기해서 나에게 중요한 화두를 찾아서 들입다 파기!
그러면서 그는 내게 태권도 동작을 취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스르륵 녹았다. 그 이모티콘처럼 내 마음도 경쾌해졌고, 씩씩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한없이 고마웠다.
참으로 간사한 마음이었다. 내 상태가 부족하다고 느껴지자 나는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려 들었다. 그러나 내가 놓친 것은 글쓰기의 '동기'였고, 그것은 외부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중요한 화두가 보이지 않을수록 나는 더더더 읽고, 쓰고, 계속 수정해 나갔어야 했다. 실상 누구나 알고 있는 비법인데, 나도 몰랐던 게 아닌데, 그걸 놓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뜸 사교육을 찾았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지 겨우 1년 6개월 만에 이제 기초는 이만하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 이 땅의 모든 작가들이 배꼽 잡고 웃을 일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기 전, 인터넷 서점에서 8주간 1위를 차지한 <빛이 이끄는 곳으로>의 백희성 작가. 현직 건축가인 그는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풀어냈다. 얼마 전 그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그가 쓴 첫 원고를 읽은 친구들은 반응은 "이런 쓰레기 같은 글로 책을 내려고 하는구나?"였다고 한다. 그는 300 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수정하는 대신 처음부터 다시 쓰는 방식으로 총 여덟 차례 글을 썼다고 한다. 지도자의 조언대로 좋은 소설들을 수차례 읽고 분석하는 작업 또한 선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덟 번째 원고를 읽은 친구들은 "이제 되었다"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 권의 책을 위해 12년 동안 A버전에서 시작해 Z버전까지 총 열일곱 번의 글을 썼다고 한다. 그 또한 수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그 책이 바로 <개미>이다.
나는? 나는 아직 그 중요한 것을 찾지 못했고, 그러니 부단히 읽고 쓸 수밖에. 그럴 수밖에! 돈도 굳고 머리가 맑아져 기분이 좋아진 나는 책상 앞에 단정하게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제발 겸손해지자. 그리고 다시 나아가 보자.
덧.
낯선 메일이 와 있었다. 그제야 작가님의 무료 뉴스레터를 구독해 둔 것이 생각났다. 습작생들을 위해 그가 작성한 자료들은 정성스러웠고 알차 보였다. 그의 글과 태도에서 연륜, 진심, 열의, 진지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갑자기 나는 미안해졌다. 그리고 슬그머니 다시 그의 수업이 듣고 싶어졌다. 언젠가? 그러나 결국은 나 스스로를 타이르고 구슬리며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안다. 내가 쓰고 싶은 그것을 찾아서 오늘도 멍 때리고, 기웃거리며, 끄적여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