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창을 들고

#계엄령 #제주 4·3 #나는 어떤 한국에 살고 있는가

by 마흔 너머

빗창

빗창은 ‘빗’과 ‘창’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제주도에서는 전복을 ‘빗’이라고 하니 빗창은 빗, 곧 전복을 따는 창이라는 말이다. 빗창은 전복을 떼어 내는 납작하고 길쭉하게 생긴 쇠붙이로, 약 30㎝ 정도의 길죽하고 단단한 무쇠 칼이라 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빗창이 무엇인지는 이미 해녀(좀녀)분들의 신산한 삶을 읽으며 알고는 있었다. 바당밭에서 전복을 캐어 아이를 기르고 가르칠 수 있게 한 고마운 도구이기도 하지만, 물질을 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게 하는 흉기도 된다(바위에 단단히 붙어 있는 전복을 채취할 때 빗창을 바위와 전복 사이에 끼워 지렛대처럼 사용하는데, 잘못하여 빗창이 그 사이에 물렸을 때 손목에 빗창을 묶어 연결한 끈을 미처 못 풀고 물숨에 목숨을 잃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내가 지난 1년 동안 책으로 접한 우리나라 근현대 해녀들의 삶은 대한민국 역사의 고난과 역경이 온몸에 새겨진 그 자체였다. 일제의 수탈과 이념의 반목까지. 현대 사회에까지 이르는 정치, 경제의 그늘진 면들이 해녀들의 삶에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픔의 역사가 해녀들 뿐이었겠는가? 제주 온몸 곳곳에 상흔이 남아 있다. 제주 4.3 희생자 지도나 제주 4.3 유적지 지도를 보고 있자면 반복된 폭력의 흔적이 울긋불긋한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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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빗창


월요일 아침이다.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영국 신사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데, 제주에서의 나도 큰 비 아니면 그냥 맞고 만다. 바람 때문에 우산이 뒤집혀 우산살이 구부러지거나 부러지는 것을 3개째 겪은 후에야 비로소 우산을 펼치기 전에 가늠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비를 맞는 것이 나은가, 우산이 망가질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비를 피하는 것이 나은가. 육지에선 당연히 비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섬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바람을 걱정해야 한다.


일제의 수탈에 대한 항거, 뒤이어 이어진 미군정과 친일경찰에 대한 투쟁. 이 시기 제주에서는 비만 피할 일이 아니라 바람까지 걱정해야 했다. 아니, 비도, 바람도 그 어느 하나 피할 수 있긴 했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들은 피하기보다는 맞서 싸우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고, 그것이 아주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어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까지도 희생되었다.


그러함이 당연한 자연 현상인 비와 바람에 이 억압과 압제를 비유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안다. 비가 내리는 것, 바람이 부는 것은 불의가 아니고, 예방할 수 있는 무언가도 아니다. 하지만 이 섬이 권력과 폭력으로 짓눌리고, 자유를 제한받고 생존을 위협받으며, 그 여파로 오랜 시간 연좌제로 묶여 차별받은 것은 의가 아니다. 예방 가능 여부까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되었다. 밖으로는 바다가, 안으로는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는 이곳에서 그들은 얼마나 당혹스럽고 두려웠을까.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이고 피눈물로 참아온 그 마음들을 차마 상상할 수가 없다.


한가로이 커피에 쿠키를 곁들여 옆에 두고 도렐에서 김홍모 작가님의 "빗창"이라는 만화책을 꺼내들 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에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 장을 펼치고 책을 닫기까지, 그리고 마지막 장에 실린 제주 4.3 희생자 분포 지도를 세세히 손으로 짚어가며 볼 때까지, 커피는 쓰고 쿠키는 목이 메었다. 검은 치마에 흰 머릿수건을 둘러쓴 나보다도 어린 여자아이들이 빗창을 든다. 감옥에 가고, 고문을 당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죽을죄인가, 고문당하고, 줄줄이 끌려가 총살당할 할 짓인가. 아니 그것이 사람이 할 짓인가, 정의를 망토처럼 둘러맸다고 그 행위들이 정당화되는가. 등 뒤에 둘러맨 그 망토가 정의는 맞았던가.


우리는 과거의 결과만을 볼 뿐이다. 행위들만이 남았다. 속 알맹이는 죽은 이의 혼이 빠져나가듯 없고, 그저 그러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래서 행위들은 강력히 비판할 수 있다.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라는 결과는 그 어떤 이면이 있다 하더라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라고 준 공권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를 직시한 후에 우리는 그 이면을 헤쳐보아야 한다. 사실 어떤 행위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켜있다. 오로지 올곧다고 볼 수 있는 행위가 몇이나 있을까? 개개인이 놓는 수많은 바둑판의 다음 수들에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한 방향일 수가 없다. 여러 갈래를 보고 다음 수를 놓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회색인간이고, 회의주의자다. 국가 안보와 사상의 수호 같은 거창한 프레임 뒤에 숨은 사람들의 눈먼 이익과 권력을 경계한다. 민중의 권리와 개개인의 자유를 주창하는 이들의 삶에 이중성이 없는지 의심한다. 양 대척점에 선 이들이 대중을 선동하는 행위에 의도는 없는지(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 의도에 불나방처럼 나도 휩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검열에 열중한다. 나조차도 옳음과 의에 대한 기준이 시시때때로 달라지는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싶다. 어떤 면에서 나는 너무 소시민적이고 나약하다. 명료하지 않고 흐리멍덩하다. 이런 나의 흐린 눈으로 보아도, 시소의 무게는, 저울의 균형은 한쪽으로 쏠려 있다. 유죄. 아무리 그래도 그건 국가가 잘못한 일이다. 국가라는 이름을 둘러쓴 권력자들의 죄다.



# 계엄령이라니


2024년 12월 3일 22시 30분. 이 시간에 깨어있었던 사람들은 먼 훗날 두고두고 곱씹을 민주주의 역사의 한 토막을 경험했다. 아이들을 일찍 재우느라 가능하면 10시 이전에는 불을 끄는데, 이날따라 바로 잠에 들지 못했다. 큰아이를 재우러 다른 방에 있었던 신랑이 톡을 보냈다. 보내도 답이 없으니 아예 방으로 찾으러 왔다. "기사 봤어?"


북한이 쳐들어온 줄 알았다. 아니 그러기엔 재난문자가 오지 않았다. 사위가 조용했다.


"가짜 뉴스인줄 알았어." 신랑이 몇 번을 말했다. 이런 실감 나는 가짜 뉴스라니.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계엄은 뭘 통제하거나 하는 거 아니야? 뭐가 달라진다는 거지? 어, ***가(지인분의 아들) 지금 훈련소에 있는데, 어떡하지?"


"네이버 카페에 안 들어가지는데!" 한밤중에 이런 일이 있을 때 모일 곳은 인터넷밖에 없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문 기사는 일방향적이고, 그 댓글은 익명의 아수라장이었다. "이럴 때엔 외신을 봐야 돼"라며 외국 신문을 찾아보아도 동쪽 끝 변방의 이 작은 소란은 미국 언론의 작은 끝조각, Asia의 단신정도로 다뤄졌을 뿐이었다(그 긴박했던 몇 시간엔 그랬다).


현재 시점의 계엄령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찾아보기도 했다(수업 준비로 종종 이 사이트를 애용하는지라... 나 말고 다른 일반 국민들도 이 사이트를 자주 들여다보진 않겠지?).

①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구분한다. ②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계엄법 제2조(계엄의 종류와 선포 등)]


한 시간쯤 지났을까? 계엄령 포고문이라는 것이 뉴스에 떴다. 집회를 포함한 정치활동을 금하고, 언론을 통제한단다. 그리고 의료인은 복귀해야 한단다.


정말?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렇게 한다고? 지금이 이렇게 위중하고 긴박한 상황이란 말이야? 그런데 나만 몰랐어? 그나저나 의료인은 본업에 복귀해야 한다고? 전공의 파업이 이 계엄령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어? 수많은 물음표가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사그라졌다. 이 한밤중에 물을 곳이라고는 똑같이 물음표를 얼굴에 띄우고 있는 남편뿐이다. 마주 보고 허탈하게 웃었다.


시작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멈출 방법은 있는지, 어떻게 뭘 할 수 있는 건지 계엄 상황의 종료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심 그저 해프닝, 가짜뉴스정도로 끝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법으로는 "계엄 상황이 평상상태로 회복되거나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이미 서울의 시민들 중 국회로 향한 사람도 있었나 보다. 계엄군이 국회에 국회의원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기사도 있었고(어, 그럼 어떻게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할 수 있지?) 파편화된 한 줄짜리 기사 대신 유튜브로 발 빠르게 중계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서울 시내에 장갑차가 등장했고, 특수부대가 출동했다는 말도 (인터넷상에) 돌았다.

새벽 1시, 190명의 참석 국회의원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었다. 계엄군은 국회에서 철수했고, 대통령은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계엄해제를 발표했고 국무회의를 통해 공식의결되었다. 그동안 책으로, 영화로 접해왔던 계엄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계엄의 당위성보다 무고한 희생자들이 흘린 피가 더 진하게 느껴졌었다. 한겨울밤의 꿈처럼 어찌 봉합은 되었으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늘 일찍 잠든 사람들, 이 뉴스를 모르고 밤을 보낸 사람들은 내일 아침 굉장히 당혹스럽겠다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은 그저 웃고 지나갈 해프닝이 아니었고, 12월 14일 날짜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도렐의 책장


빗창을 도렐의 책장에서 만나 읽고, 작가분께서 여름에 아이들의 학교에 강연을 오셨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아쉽게도 이 당시 우리 가족은 체험학습을 쓰고 여행 중이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두세 달의 시간이 지났다(사실 나는 글감과 문장들을 사건의 직후에 나열해 둔 후에 느림보처럼 글을 쓰는 좋지 않은 습관을 가지고 있어, 이 몇 문단 안 되는 글들을 완성시키는데 오래 걸렸다). 그 사이 계절은 변했고 세상도 변했다. 계절이야 변할 줄 알았는데, 세상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갈 줄 저 당시엔 몰랐다.


빗창을 읽을 때 우리 옆 테이블엔 외국인 세 명이 앉아 제주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나와 신랑은 커피를 앞에 두고 마음에 가는 책을 도렐의 책장에서 꺼내어 읽고 있었다. 나는 4.3 사건을 수묵화와 같은 그림체로 보여준 '빗창'에 온 마음이 눅진해지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작가의 다른 책도 느릿느릿 찾아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이 여유였고, 일상이었다.


이 잠깐의 계절 사이에 이 일상은 변했고, 여유를 느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언론은 새로운 뉴스로 뒤덮였다. 아마도 제주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여행 계획을 짜는 외국인의 수 또한 줄지 않았을까?(입장 바꿔 생각해 보아도 외국인의 눈에 우리나라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여행을 자제해야 할 나라처럼 보일 것 같다.) 나조차도 4.3 사건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 지난 봄과 또 다르다.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이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르게 만든다.



나는 어떤 한국에 살고 있는가


어젯밤 둘째 아이와 드라마 속 조선 말기 외국 이양선들이 바다를 건너오는 장면을 보며 "저 당시 조선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어"라고 말하니,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이 아이는 등불을 본 적이 없구나. 촛불로 비유해 설명하니 알겠단다. 촛불집회의 촛불이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에 촛불이 꺼지면 다시 켜면 되지 않냐는 제 나름의 합리적인 의견을 내서 함께 웃기도 했다.


이번 탄핵 집회 때엔 촛불 대신 응원봉, 야광봉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수 십 년 전 제주 해녀들은 빗창을 들었고, 몇 년 전엔 촛불을 들었다. 꺼져도 다시 켤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앞으로 또 무엇을 들어야 할까? 무언가를 들 수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 들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생각 뒤편엔 무언가를 더 이상 들지 않아도 되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지배한다.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 일들이 가득한 나라에서 아이들의 미래가 컸으면 좋겠다. 이 아이들과 손잡고 배우고, 깨어있으되, 상처받지 않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그래서 더 살만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자료:

https://www.grandculture.net/seogwipo/toc/GC04601840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526


https://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434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121213212337264


https://www.law.go.kr/lsSc.do?section=&menuId=1&subMenuId=15&tabMenuId=81&eventGubun=060101&query=%EA%B3%84%EC%97%84#undef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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