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IB는 처음이지?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아이비? 아이비가 뭐야? 공기정화식물 담쟁이(ivy)도 아니고, 미국 북동부 명문 대학 아이리 리그(Ivy League)는 더더구나 아니다. 이런 아재개그 같은 말장난도 이젠 이 IB의 인기덕에 통하지 않을 때가 되었다.
특히 제주의 학부모라면 더욱 일상적인 용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IB는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약어로 스위스 기반의 교육기관이다. 잠깐 삼천포로 빠져보자면, 여기에서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는 프랑스의 중등 과정 졸업 시험 명칭을 말한다. 우리로 치면 논술형 글쓰기 시험인데 그 주제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이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게 되면 프랑스의 어느 대학이든 지원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나폴레옹 때부터 시작되어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니, 그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교육(입시)의 일관성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예전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이 졸업 시험이 치러지고 그 문제가 공개되는 날 프랑스의 카페에선 그 해의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뜨겁다는데 정말일까?
사실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는 이 프랑스식 수능과 관계는 없다(아예 없다고 단정 짓기에는 공통점이 몇몇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말 그대로 프랑스에서 주관하는 "시험"의 개념이라면,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는 비영리 교육기관이 개발, 운영하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라 볼 수 있다. IB에서는 초등, 중등, 고등 교육 프로그램을 각각 PYP (Primary Years Programme), MYP(Middle School Years Programme), DP(Diploma Programme)라고 지칭하는데, 조금 좁은 개념으로는(그냥 일반적으로 IB로 대학 간다는 말을 할 때)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DP를 수료하고, DP 점수를 기반으로 대학을 가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IB에 대한 공통점에 대해 IB를 국내에 널리 소개하고 활성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집어넣는 교육'이 아닌 '꺼내는 교육'을 지향하는 것(지식의 숙지도 평가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평가), 전 과목 절대 평가, 전 과목 논술 및 서술형 평가, 기계가 아닌 교사들의 블라인드 채점".
우리나라 사람이 절대 못 참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입시 비리와 군 입대 비리. 이것이 우스갯소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역의 '공정성'이 다른 분야보다 모두에게 예민한 부분인 것 같긴 하다. 입시 분야에 '절대 평가', '주관식, 논술형 평가'의 도입이 어떤 파장이 일지에 대하여(도대체 가능은 한 것인지) 이 짧은 지면에 다루기엔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현재의 입시 방식과 대입만을 위해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혹은 실제 그런)' 교육이 정말 바른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나도 의문이 든다. 이런 의문은 대학에서 논술 채점관으로, 입시 면접관으로 들어가며 더 커졌다. 이 논술 시험으로 우리 대학에서 바라는 인재를, 우리 과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이 아이들은 지난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길래 내신 공부, 수능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학생부에 이렇게 대단한 경험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어쨌든 한국 공교육에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IB는 내가 보기엔 약간은 이상적이지만, 잘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 그런 모델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학교 문제는 내가 표선에서 1년을 보내는 것을 결정하게 한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도대체 IB가 뭐길래 현재 공교육의 대안이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는 걸까? 학부모로서라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표선은 당시 IB 인증을 받은 학교들, 특히 고등학교 과정인 DP 인증을 받은 표선고등학교를 보유하고 있는 동네로 막 핫해지고 있는 동네였다. 표선은 IB 인증을 받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다. 일종의 IB 교육특구다. 나는 1년짜리 시한부 제주살이인지라 좀 더 아이들이 많이 몰리던 IB 인증 초등학교 대신 당시 IB 인증 후보학교였던 작은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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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들은 제주로 전학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학' 자체에 거부감을 보였다.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이 확정되며 체념하던 아이들은 점점 걱정이 쌓여갔다. 그러다 집을 구하러 간 제주에서 초등학교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전학 간 첫날, 아이들은 친구들의 이름보다 IB 프로그램의 여러 용어를 먼저 설명했다. 처음 듣는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정통신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학교가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단다.
IB 초등과정(PYP)에서는 POI(Programme of Inquiry)라고 하는 탐구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과정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속한 공각과 시간",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 "우리 자신을 조직하는 방식", "우리 모두의 지구"라는 초학문적 주제를 탐구한다. 나에서 지구로 뻗어나가는 개념을 통해 성장한다. 매우 거창해 보인다.
하지만 IB라고 해서 기존 공교육, 2015 개정 교육과정이나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같은 7차 개정 교육과정과 사실상 내용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오히려 기존 교육 내용이라는 벽돌을 빼어 새로운 틀로 재배치한 느낌이다. 어찌보면 더 촘촘하게 구성되는 느낌이다. 특히 개별 과목과 과목, 학년과 학년의 연계과정을 살펴보면 그렇다.
3학년인 둘째 아이는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초학문적 주제를 가지고 3월 활동을 진행했는데, "사람들은 감정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다"는 중심 아이디어를 가지고 감정의 종류, 표현 방법, 그리고 감정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다양한 활동을 통해 탐구했다('공부했다', '학습했다'가 아니라 '탐구했다'가 핵심이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 뭘 했냐고 하면 뭘 배웠다는 말 대신 '탐구했다'는 말을 곧잘 한다). 감정 사전을 만들기 위해 국어사전 낱말 찾기 놀이를 했고, 감정의 종류에 대한 탐구를 마친 후 탐구 전후의 생각 변화 차트를 만들어 짝에게 설명하고 모둠별로 일반화 문장을 만들었다. 다양한 종류의 감각을 통해 '추리'하는 활동을 통해 과학을 다뤘고, 시를 읽고, 쓰며 감정과 생각을 공유했다.
5학년인 첫째네 활동은 더 흥미로웠다. '편견', '고정관념', '선입견'과 같은 개념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한 해동안 학급이 어떤 반이 될지 스스로 선언하는 활동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누구인가(하위 주제: 권리와 책임)"라는 초학문적 주제를 통해 국어, 사회, 도덕, 실과, 미술 단원을 통합해서 진행되었는데, 아이들은 이 주제를 통해 글쓰기, 토론, 자료 준비 및 발표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했다. 5월에 초대받았던 5학년 공개 수업에서는 그동안 탐구했던 인권의 의미와 내용, 차별과 평등에 대한 개념을 기반으로 학생들이 깊이 탐구하고 싶은 주제를 선정해 이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등한 사회를 위한 노력(책임)"이라는 탐구목록(LOI)을 중심으로 생존권(기아 종식과 사회보장제도) 팀, 성차별과 성평등 팀, 장애인 인권 팀, 학생인권과 어린이인권 팀, 인종차별 팀, 생존권(물에 대한 권리) 팀으로 나뉘어 학부모들은 정해진 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발표를 듣고, 질문을 하고, 포스트잇에 피드백을 작성해 아이들에게 전해주었다.
제주생활 이전에 아이들의 공개수업을 많이 가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이런 수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공개수업에 가지 않았더라도 아이들이 뭔가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은 집에서도 이미 깨닫고 있었다. 오늘은 뭘 "배웠다"가 아니라, 오늘은 어떤 "탐구를" 했고, 아이들과,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맨날 놀듯이 학교 수업을 하면 수학은, 과학은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았던(놀이인지 공부인지) 이야기를 재잘재잘하는 것을 듣다 보면 혹시나 학업에(정규 교육과정에)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조급했던 마음도 쏙 들어갔다. (실제로 나중에 들어보니 수학과 같은 일부 과목들은 IB 식 통합 교과목에서 따로 떼어내어 교과서로 진도를 나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육지에서 제주로 입도를 결심하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지나친 경쟁교육에 치이는 것이 싫어서", "자연에서 아이답게 학창 시절을 보내게 해주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겼다. "IB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서!"
이런 제주 교육의 변화는 요 몇 년 사이의 일은 아니다. 물론 IB 인증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생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앞서 말한 DP 인증을 받은 표선고등학교 졸업생이 올해 초(2024년 1~2월) 입시를 치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IB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제주는 마을생태학교, 문예체학교, 놀이학교, 인성학교, 디지털학교, 미래역량학교, 다혼디배움학교와 같은 제주형 자율학교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IB 교육의 결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우습지만 어쩌나, 한국 교육에서 마지막에 내놓아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인 입시 결과가 나오고, 관련 방송(MBC 교실이데아, 2024.04.21. ~ 2024.05.05)도 이슈가 되었으며, 관련 심포지엄과 학회들도, 학부모 소모임들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기존에도 IB가 무엇인지 소개하는 책은 몇 권 있었지만, 이젠 좀 더 당사자들의 책, 예를 들어 학부모, IB 학교 선생님의 책도 출판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했다. 예약 판매 중인 이 책을.
이 책의 저자는 이미 예전 글로 다룬 적이 있다. <별일 없이 살아도 별 볼 일은 많아요>의 캠핑카로 출근하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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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어쩌다 IB 학교로 가게 된 것이다. 아내분이 육지 대학원에 가게 되며 캠핑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 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IB 코디네이터가 되어 나타나신 아내분, 그리고 어쩌다 작은 IB학교로 발령을 받게 된 초짜 IB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있었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귀동냥으로 들으며 IB 교육은 선생님들의 노고가 절대적이구나, 여러 번 느꼈다. 누가 이렇게까지 하실까 싶었다. (실제로 학부모 교육을 들으러 초등학교에 가면, IB 코디네이터선생님의 열정은 그 어떤 강연보다 뜨거웠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처럼 전학 온 아이들에게도 IB가 낯설었겠지만, 이 교육을 해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에선 더 망망대해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그 시행착오, 거기에서 오는 어려움과 고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약간의 신남, 아이들에 대한 애정, 이런 느낌들이 묻어나는 글들이었다.
p92 "10살 때 아버지가 그러셨죠. 하고픈 일을 아는 자는 정말 운이 좋은 거다. 평생 단 하루도 일을 안 하게 될 테니."
학생이 자아정체성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자기가 진정 하픈 일을 알고, 살면서 그것을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것. 이거야말로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아닐까?
p96 처음에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던 아이들은 힌트를 몇 개 던져주자 금세 기억을 떠올렸고, 그와 연관된 다른 기억들이 고구마 넝쿨째 딸려 나오듯 소환되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종이 한 장,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화이트 노이즈로 깔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게으르지만 출근은 꼬박꼬박 하는 멜랑꼴리한 주인장. 웰컴 투 UOI 카페.
이제 얼마 안 남은 제주 생활에 대해 아이들은 '학교'를 두고 가야 하는 것이 제일 속상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는 IB스타일인 것 같다"는 큰 아이의 말에 둘째가 "내가 더 IB 스타일"이라며 서로 투닥인다. 강남스타일도 아니고, IB스타일이라니, 음... 그게 그렇게 자랑할 거리였구나? 아이들이 이렇게 빨리 IB에 젖어들게 된 것의 팔 할은 선생님들의 덕이 아니었을까 싶다(나머지 2할은 그 수업을 실제 채워간, 수업을 재미나게 받아들인 아이들...?).
이 글을 빌어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참고자료
*바칼로레아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C%B9%BC%EB%A1%9C%EB%A0%88%EC%9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