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걸 할 여유가 없어."어제 남자친구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하기까지 꽤나 힘들었지만 해놓고 나니 내가 대견하다. 없는 걸 인정하고 말로 내뱉다니. 없는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돈을 잘 벌까? 이제는 출근만 해도 자꾸만 작아진다. 학교에 주차된 차만 봐도 이제는 거의 외제차에 중형급 이상의 차만 주차되어 있고 거의 모두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 이런 모습이 한번 인식이 되기 시작하면 10년 가까이 탄 내 차는 더 작아 보이고 유행 따라 산 내 가방은 더욱 초라해 보인다. 이혼 전에는 그나마 나았던 것 같은데 이제 내 작고 작은 월급으로 아이도 키우고 생활비도 감당하고 내 노후도 준비하고 소소하지만 부모님을 위한 돈도 모으고 하려니 생활이 퍽퍽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덜 해주기도 싫고 나도 놀건 놀아야겠으니 정말 쥐어짜고 짜내어 생활하고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나에겐 돈을 벌어다 줄 남편도 없고 내가 언제까지나 실패해도 뒷받침해 줄 재력을 가진 부모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업수완이 좋은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 빚은 없었지만 내년에는 아파트 입주시기도 다가오기 때문에 빚도 생길 예정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35살이나 돼서 도대체 뭘 한 건지.. 열심히 노력은 한 것 같은데 결과가 너무나 초라하다. 모두가 이렇게 사는 건지 나만 이렇게 사는 건지 답답하다. 분명 임용고시를 칠 때까지만 해도 교사는 연봉, 대우, 워라밸 측면에서 두루두루 좋은 직업이었고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었는데 10년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낙오됐다. 엄마가 결혼 전에 스님에게 보았던 내 사주팔자에서는 크게 잘 살진 못해도 남에게 손 벌리고 살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그거 하나 해내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거의 한탄에 가까운 이런 글을 쓰는 게 나에게는 이혼에 대해 쓰는 것보다 어렵다. 이혼이야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그냥 말할 수 있었는데 없는 걸 없다고 나 스스로 인정하고 말하기까지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불쌍해 보이는 게 싫어 몰라도 아는 척, 없어도 있는 척, 안 해도 하는척하며 나를 조금씩 포장했는데 요즘에 닥치는 변화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솔직하게 했다.
그래도 골프레슨을 권유하는 남자친구에게 그런 것까지 받을 경제적인 여유는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나니 조금은 편하다. 어쨌든 내 상태를 인지했고 인정했으니 나아갈 방향이 보일거라 기대해본다. 그래도 쉽게 인정하고 깊게 반성하고 조금씩이라도 변화하려는 노력을 하는 건 내 장점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은 만큼 베푸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신세한탄 그만하고 방법을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