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달리다가 갑자기 언제부터 달렸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올해 초, PT를 받기 전 10~20분 걸으라는 트레이너의 지도하에 러닝머신 위를 올라갔던 게 시작이다. 걷다가 달리다가 또 속도를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했다. 개인운동을 하는 날에는 목에서 입 밖으로 숨이 넘어오지 않을 때까지 뛰는 날도 있었고 40분 내내 빠른 걸음으로 걷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퇴근하고 곧장 달리기 위해 헬스장을 가는 날이 많았다. 총 4km를 목표로 두고 숨이 턱끝까지 차 꽉 막힐 때까지 뛰다 보면 하루동안의 스트레스도 잊고, 불확실한 미래도 잊고, 불안정한 상황도 잊었다.
그렇게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까지 달리다 속도를 낮추면 가벼워져 둥둥 떠다니는 발걸음처럼 세상에 모든 일이 가볍게 느껴졌다. 직장에서의 불합리한 처사도 그냥 그 정도면 버틸 수 있다 여겨지고 아직까지도 문득 생각나는 전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도 그들의 마음의 병이 자신들을 날카롭게 만든 것뿐이겠지라고 이해하게 되고 우리 부모님도, 내 동생도, 나도, 나의 딸도 왠지 모르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될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정수리부터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이 성취감을 만들어낸다. 성취감을 바탕으로 달리기와 좋은 생각을 연결시키다 보니 이제는 끈끈해진 달리기와 긍정적인 사고 연합이 자동적으로 나온다. 달리면서 나에게 먼지처럼 붙어있던 번잡한 생각들이 하나하나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그 먼지가 다시 달라붙지 않게 매일매일 조금씩 빠르게, 멀리 달린다. 남들은 알지 못하게 아주 미세하게 늘려간다. 어차피 나만의 기록이니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상관이 없지만 어제보다 0.5m라도 멀리 가기 위해, 어제라도 1초라도 더 빨리 목표한 km에 다다르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조금 벅찬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찬물로 땀을 씻어 내린다.
이제는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그냥 달리러 간다.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헬스장까지 당도한 나 자신이 뿌듯하다. 귀찮음과 오지 않아도 될 수백 가지의 이유를 내려놓고 오늘도 러닝머신의 까만 벨트 위에 선다.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하는 건지 정말 달리기가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게 증명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달린다. 배에 힘을 주고 발걸음을 가볍게 내딛다 보면 오늘도 가뿐하고 강인해진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