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에게
왜 너는 나한테 와서 떨어지지 않는 걸까. 툭툭 털어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내 몸 어딘가에 붙어있는 너를 보면서 이러다 네가 뱀처럼 몸을 사이에 두고 똬리를 틀어 목을 조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해. 너를 뜨거운 물처럼 쥐고 바닥이 더러워질까 버리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면서 동동 거리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결국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내 손은 빨갛게 타버려 이게 회복이 되기는 하는 건지 긴 한숨을 내뱉는 나를 보며 한심하다 생각하고 있니.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억지로 쥐어짜며 웃어 보기도 하고 일부러 다른 얘기를 하면서 너에게서 멀리멀리 도망가보려 하기도 했어.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망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달려오는 너를 이제는 애써 떼어 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할 만큼 무기력해지고 말았네. 도대체 나는 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너에 대해 생각하고 너에 대해 알아가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아. 너의 실체를 모르고 벌벌 떠는 것보다는 그래도 실체라도 알면, 네가 정확하게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면 그나마 내가 대처할 방법이 떠오를 것 같거든. 너는 언제부터 내 옆에 있었을까. 엄마와 마트에 갔을 때 잠깐 장을 본다고 동생과 나를 한 곳에 두고 갔을 때가 최초의 너에 대한 기억인 것 같다. 엄마가 안 올까 봐 한참을 불안해했었는데 엄마는 돌아와서 왜 그러냐고 오히려 되물었지. 아 네가 내 옆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최초의 기억에서 조차 그 누구도 너를 인정해주지 않았구나. 그래서 너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너를 알아봐 달라고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구나.
가끔은 너를 원동력 삼아 할 일을 잘 헤쳐나간 적도 있어. 너를 다른 사람보다 잘 느끼는 나를 채근하며 시험에 합격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거든. 아 물론 이혼도 했고. 네가 있어 내가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을 한 적도 있지만 기쁨은 잠시 뿐이고 너는 정말 끊임없이 나에게 더 열심히 살라고, 더 잘하라고, 더 완벽하라고, 더.. 더.. 하라고 재촉하고 있네. 그 재촉의 크기만큼 너는 내 안에서 더욱더 커져 이제는 빠져나갈 수도 없을 만큼 크기가 되어 나를 꽉 채워버렸구나. 그래서 길을 걷다가, 출근을 하다가, 아이를 재우다가, 매일 아침 통증으로 너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구나.
단시간에게
00야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너무 안심하지는 말고, 나는 너에게서 사라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거든.
사실 나는 불안이란 이름으로 왔지만 너의 안에 있는 외로움, 걱정, 공허함을 모두 품고 있단다. 나를 느끼는 너라는 사람의 성격을 파악해 보면 좋을 거야. 명명된 단어들에 너를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구름 위를 걷듯 자연스럽게 파악하다 보면 나와 함께 가는 방법을 알게 될 거야. 또 나를 잘 들여다보면 내가 너를 위해서 오게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나를 떼내려 하거나 벗어나려 할수록 난 점점 더 커지기만 할 뿐이야. 나 역시 덩치만 커지는 나를 바라보면 무섭기는 하지만 이 조차도 네가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마.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겸손해야 해. 다른 기준에 흔들리지 말고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이리저리 꺽지마. 잘 해보겠다는 생각보다 그냥 해나간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생각해. 그렇게 살다 보면 내가 불쑥 얼굴을 내민다 해도 놀라지 않을 거야.
조금은 가벼운 태도로 삶에 임하고, 부러지지 말고 버텨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