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시간 Feb 26. 2024

내 남자친구와 아이와의 만남

집으로 케이크가 배달이 왔다. 남자친구가 보낸 케이크.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초콜릿케이크가 배달이 왔다고 좋아하며 누가 보낸 거냐고 물어보았다. "000 삼촌이 **이 먹으라고 보내 주신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평소에도 이모, 삼촌들이 아이에게 선물을 자주 해주어서 인지 아이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아이는 케이크를 먹다가 이렇게나 자주 선물을 보내주는 000 삼촌이 궁금했나 보다. "나 000 삼촌 만나보고 싶어."라고 이야기했다. 


고민이 안되었던 건 아니다. 아직도 아빠와의 면접교섭날을 기다리며 엄마, 아빠의 이혼에 적응하는 중인 아이에게 내 남자친구를 소개를 해주는 게 맞는 일인지. 소개를 한다면 뭐라고 소개를 해야 할지. 이제 막 11살이 된 아이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도 않았지만 아이 입에서 저렇게 이야기가 나왔는데 굳이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일찍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던 탓에 아이는 나의 친구들 모임에 항상 같이 동반되었다. 그런 탓에 아이는 내 친구들과 서로 고민을 이야기기 할 정도로 성인과의 만남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냥 가볍게 내 친구라고 소개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내 남자친구와 나의 아이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며 사람과의 관계를 친근하게 쌓아갈 줄 아는 아이는 남자친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대화 속에서 공통 관심사를 찾아내었다. 남자친구 역시 귀멸의 칼날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남자친구가 사준 네즈코 핸드폰 케이스를 보여주며 자기는 삼촌이 준 케이스를 맨날 하고 다닌다고 말을 했다. 말수가 적은 남자친구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밥을 먹고 나서 마침 개봉한 귀멸의 칼날 영화를 보러 갔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았다. 이혼 초에는 이렇게 아이를 끼고 엄마, 아빠가 나란히 있는 가족들을 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사무치게 부러웠는데 의외로 감흥이 크지 않았다. 정말 고대했던 장면인데 마냥 신나기만 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번 만남을 통해 아이와 남자친구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남자친구에 대한 확신이 더 생길 줄 알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고,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는 수순을 밟게 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을 통해 굳건해진 것은 남자친구와의 관계보다 아이와 내가 둘이서도 씩씩하게 잘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이었다. 이 역설적인 생각이 어떤 회로를 통해 나온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 기대와 어긋난 것만은 확실하다. 


이번 글은 끝맺음을 하기 조차 어려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어떤 결심이 선 것도 아니고 무얼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작정도 없다. 그냥 지금 마음이 이렇고 이런 마음이 왜 이런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앞으로 윤곽이 드러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