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그러니까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다. 인문학부에 진학한 나는 국문학, 사학, 철학, 종교학 중에서 나의 세부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문송'이라는 말이 유행인 시대지만, 내가 대학에 다니던 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저 네 가지 학과는 사실 취업이나 비전으로 보자면 '거기서 거기'인 학과들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 '거기서 거기'라는 시선들에 맞서고 싶어지기도 하는 이십 대의 패기가 (아직은)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종교학을 제외한(죄송합니다) 세 과목의 입문내지는 개론 과목을 차례로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인상적인 학과는 단연 철학과였는데 극도로 적은 인원이 수업을 들었고(내 기억에 10명 남짓) 학생들 대부분이 한 학기 내내 거의 말이 없었다. 교수님도 (사람이 많지 않으니 당연히) 조곤조곤한 말투로 드문드문 강의를 하셨다는 기억인데, 내 기분 탓이었을까, 계절탓이었을까. 창밖을 유난히 자주 쳐다보셨다. (누가 기다리기라도 한 건가)
철학과 개론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중간고사였다. 나는 시험 시간에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간달프를 연상시키는) 긴 머리를 한 남학생이 답안지를 받고 10-20분 사이에 답을 완성해서 냈는데(그게 가능한가? 나는 아직 첫 문단을 시작한 수준이었다), 답안지를 내고 꾸벅 인사를 한 그 간달프, 아니아니, 긴 머리 남학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강의실을 떠났다. 그 학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교수님은 천천히 그 학생의 답안지에 시선을 돌리시더니 "흐음"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며(이거 무슨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 같은데) 한참을 들여다보시는 거였다. 왜요? 그렇게 오래 읽을 게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자꾸. 창밖이나 보세요. 암튼. 이러다 시간 안에 답안을 다 못 채울 것 같았던 나는, 남의 답안지와 그걸 보는 교수님 구경은 끝내고 손마디가 아프도록 답안지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학점은 그저 그랬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학생의 학점이 궁금할 뿐이다.
나는 철학과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 후로도 유난히 매력적인 이름의 철학과 수업을 발견하면 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자주 갖곤 했다. (실제로 졸업때까지 가장 많은 학점을 할애한 타학과는 철학과였다.) 특히 삶이 내 뜻대로 굴러가주지 않을 때마다 왠지 철학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철학은 내가 모르는 해답을 알려줄 것만 같았고, 그도 아니면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들려줄 것도 같았다. 그렇게 철학은 나와 가까워질 뻔 하다가 멀어지고, 그러다가도 불쑥 내 마음에 끼어들곤 했다.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었다. 아주 유쾌한 문체로 총 열 네 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내가 대학교 1학년때 들었던 철학 개론 수업의 마이너한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아주 세련되고 매끈하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철학과 친구들아 미안.) 작가는 농담을 건네듯이 철학자들의 괴이한 습관과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회성부터 그들의 공개된 사생활과 연애 이야기를 그들의 철학과 하나로 엮어낸다. 형식이 그렇다해도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은데 그 이유는 아마 다음의 문장들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을 살아내지 않고서는 죽고 싶지 않은 자의 절박함이다. 특정 위기를 꼽을 순 없다. (중략) 할리우드 영화에 나올 법한 위기가 있다기보다는, 짜증과 실망이 은은하게 흐르고 내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을 뿐이다. 내게 아직 삶은 골칫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턱밑에서 시간이 내뱉는 뜨거운 숨이 느껴진다. 매일 조금 더 강하게. 나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알고 싶다. 아니, 알아야 한다. 그것도 너무 늦기 전에."
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고민이다. 언젠가 내가 철학과 가까워질 뻔하다가 멀어질 때쯤 혹은 멀어져 있다가 가까워져볼까 하고 이런 저런 책들을 들춰볼 때쯤 나도 했던 그런 고민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번쯤은 해봤을 그 고민.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건지, 나는 잘 살고 있는건지, 내가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지금 기대하고 있는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은유를 발견하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 은유에 기대면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대답부터 하자면 "아니오"다. 그리고 그런 답, 그런 은유는 없다. 그렇게 간단히 접근하고 간단히 사랑하기에는 삶이라는 건 너무나 복잡하다. 소설가 정세랑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사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을 이 책의 컨셉으로 설정한 것처럼 '빠른 정답'이 아니라 '느린 과정'을 즐겨보는 것이다. '답 없음'의 문 앞에서 오래 서성거려도 보고 나와 다른 너의 얼굴 앞에서 낯설어도 보고 이유 없이 들이닥치는 고난에 비난을 퍼부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정답'이 아니라 '과정'을 살아내야만 철학은 우리 곁으로 온다. 철학으로 사는 게 아니라,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철학에 '대해' 공부하는 게 아니라) 철학 그 자체를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이 정도 했으면 그냥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게. . .)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이 했다는 멋진 아포리즘 하나씩 소개해줄 수도 있겠지만 우선 열 네 명의 철학자들이 하고자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서 어느 하나를 골라내기가 어렵고(뻥이다), 지면이 부족하기도 하므로(핑계다) 생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뭘 어쩌자는 거냐고 묻는다면 이런 말들을 들려주고 싶다.
"시급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 많은 것을 생각이 깊은 것으로 착각하며, 인기가 많은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 한 현대 철학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
"대자연은 성가시다. 대자연은 나의 핵심에 있는 무능력함을 끊임 없이 상기시킨다."
"정원은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뒷마당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이 정원사가 아니듯, 생각한다고 다 철학자인 것은 아니다."
"친절은 힘든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데, 진정으로 자유롭다면 자기 불행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주 어렵고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우리가 꼭 듣고 싶어했던 '그 말'들을 건넨다. 아마도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들이 전해주는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철학은 이토록 얇은(이 책은 522쪽이다) 책으로 정리될 수 있지만 그들이 그 한줄의 철학에 도달하기 위해 고민한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길고 길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 많은 경우의 수와 서로 다른 상황과 전제, 사회적 통념과 인간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행위하는 원리, 사고하는 체계를 검토하면서 철학을 한다. 철학을 살아간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작 우리 삶을 돌아보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힘들다고 투정을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괴팍하고 엉뚱하고 고집스럽고 답답한 그들을(아마 직접 만난다면 굉장히 불편할 사람들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틀린 줄 알면서도 그 결론까지 밀어붙여서 맞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고, 맞는 줄 알면서도 그 결론까지 밀어붙여서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사람들을, 그리고 기어이 너무도 간단한 말들을, 그러니까 "일어나라"고 "궁금해하라"고, "자신이 되어 걸으라"고, "뭐든 허투루 보지 말라"고, "뭐든 허투루 듣지 말라"고, "진짜의 욕망을 즐기라"고, "관심을 기울이라"고, "잘 싸우라"고, "친절하라"고, "작은 것에 감사하라"고, "후회하지 말라"고, "고난을 살아내라"고, "잘 늙자"고, "잘 죽자"고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저런 짧은 결론에 정확히 도달하기 위해, 그 수많은 날갯짓과 어지러운 비행을 마친 그들에게 박수를.
그리고 언제나, 나는 나의 삶으로 나의 생활로 또한 나의 철학속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도달하느냐가 철학이라는 걸 안다. 실천한다. 그래, 산다.
덧. 철학과의 인연을 얘기하려면 사실 나의 남편을 언급하면 가장 간단했을 일이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기호논리학과 플라톤 철학을 흥미로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