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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Jun 09. 2022

그때 그 여자들의 얼굴을 기억해요

비비언 고닉, <사나운 애착>


"엉아, 엉아네 아저씨는 양반이야, 우리 집 아저씨는 어떤 줄 알우?"

"우리 집 아저씨가 양반이면 너희 남편은 판서 정승이게, 넌 매사에 그 불만을 좀 줄여."

"이 엉아는 맨날 나한테만 난리야."

"쟤 또 삐쳤다. 그래 니 남편은 양반도 못 되는 상놈이다, 됐지? 이제 속이 시원하냐?"


김장철이 다가오면 온 동네가 시끌시끌하도록 아주머니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김장을 준비하기 바빴다. 새우젓이나 고춧가루 등을 대량으로 함께 주문하고(말하자면 공동구매), 김장 속을 버무릴 순서를 정했다. 각자 살림의 규모, 그 해 배추의 상태, 김장의 양 등을 고려하고 나면 순서는 자연히 드러났다. 이른 아침부터 절인 배추를 헹구고, 야채를 썰고, 갖은양념을 넣어 속을 버무리며 한 집 한 집 김장을 마무리했다. 그러다 점심시간에 걸린 집에서는 자연히 고기를 삶고 굴을 씻어 보쌈을 준비했다. 술을 한잔 곁들여 배를 채운 아주머니들은 다시 오후 순서대로 김치를 버무렸다. 부지런히 움직여도 마지막 집은 늘 한밤중에 김치가 시작됐다. 골목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왁자하게 김장을 버무리는 손길들. 너무 늦었다며 서로를 걱정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대며 웃어버리고 마는 얼굴들. 마지막 집까지 김장을 완성하고 나면 '뒤풀이'를 기약하며 아주머니들은 각자 집으로 향했고, 며칠 뒤엔 어김없이 동네 쌀집 거실에 모여 김장의 회포를 풀었다.


그 아주머니 중 우리 엄마가 제일 조용하고 말수가 적었다. 아주머니들은 우리 엄마에게 늘 "너무 참고 살지 마"라든가, "아저씨 올 때 돼서 너 또 얼른 들어가려고 그러지?"라든가, "너는 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 같은 말들을 건넸다. 그러면 엄마는 별말 없이 배시시 웃거나, 아주 기분이 좋을 때면 "엉아들이랑 수다 떠는 낙으로 살지." 라며 아주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식의 가장 큰 애정 표현. 덕분에 우리 집 문턱은 아주머니들에게 가장 높았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들은 항상 엄마를 빼놓지 않았다. 고스톱도 재밌게 칠 줄 모르는 엄마를, 술도 마실 줄 모르고, 흔쾌히 돈도 쓸 줄 모르는 엄마를, 그저 출근과 퇴근, 집안 살림밖에는 모르는 엄마를 아주머니들은 늘 함께 하자고 불러주었다.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방 격이던 쌀집 거실에서 아주머니들이 고스톱을 치면 그 옆에서 점수 계산을 하거나 때로는 제일 큰 엉아(언니)의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잤다. 엄마가 잠들면 아주머니들은 소리를 죽이며 고스톱을 치고는 돈이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엄마를 깨워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건 아주머니들 식의 배려였다. 엄마는 대부분의 경우에 함께 하지 못했고, 아주 가끔은 함께 칼국수를 먹으러 갔었다.


철없던 나는 엄마의 외출을 지나치게 싫어했던 아빠처럼 엄마가 오래 집을 비우는 걸 때로는 불편해했다.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빠처럼 굴었다는 게 나에게는 참 부끄러운 일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엄마가 집을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오래 비우면 아빠는 화를 내고 그러면 우리 모두 불편해질 게 뻔해서였지만, 지금은 후회한다. 나라도 나서서 엄마의 외출을, 잠깐의 휴식을, 재미를 지켜줄걸. 나라도 그 시간을 불편해하지 말걸. 친구들이 모두 칼국수를 먹으러 떠난 자리에 혼자 남아서 오이를 무치고 된장찌개를 끓여야 했던 엄마의 시간을 생각하면 나는 서운하고 아쉽다. 그럴 때 나는 놀이터에서 고무줄놀이에만 못 껴도 서러워서 눈물이 흐르던 어린 날의 나를 생각하고, 우리 모두 엄마에게 참 잔인했구나, 하는 마음이 된다.


아주머니들이 정말 드물게 우리 집 문턱을 넘어와서 우리 집 툇마루에서, 작은방에서 엄마와 수다를 떨던 날들을 기억한다. 어떤 아주머니는 술에 잔뜩 취해서 우리 집 문을 두드렸고, 어떤 아주머니는 "아저씨 안 계셔?"라고 여러 번 묻고 또 물으며 안방을 자꾸 힐끗거렸다. 그렇게 어렵게 우리 집 문턱을 넘은 아주머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 때보다 신이 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고, 엄마의 등을 두드리고, 자주 웃었다. 내가 다 알아들을 수도 없던 아주머니의 말들은, 나에게는 다양한 여자를 배울 수 있게 하는 마법의 언어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는 술을 아주 잘 마시는 여자도 있었고, 자기 남편에게 큰소리를 떵떵 치며 절대 지지 않고 사는 여자도 있었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여자도 있었다. 엄마만을 알고 자랐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세상을, 나는 쌀집의 거실에서, 동네 공터의 평상에서, 김장하던 날의 골목에서 배웠다. (물론 당시에 내가 그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어떤 것은 자라면서 배워 알게 되었고, 어떤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문득 떠오르면서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술을 잘 마시는 여자도 남편에게 지지 않는 여자도 바람을 피우는 여자도 그리고 그 모두 중에 가장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는 여자도, 그 공간에서는 모두 친구였다는 것. 나이가 좀 더 많아도, 좀 더 적어도, 그들은 가난한 동네에서 아이 낳고 사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하나였고, 그 마음은 쉽게 갈라지지 않았다. 그 동네 여자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때로는 싫어하면서도, 끝내는 함께였다. 그래서 우리 엄마에게는 오빠만 둘이었지만, 나에게는 이모가 참 많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내 등을 두드려주는 이모, 착하다고 늘 용돈을 쥐여주는 이모, 엄마가 아빠와 상갓집이라도 가서 밤을 새우는 날이면 자기네 집에 오빠와 나를 불러다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워주는 이모.


비비언 고닉의 책을 읽으며 나는 그 많던 이모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의 말들을, 삶들을, 억척스럽던 손길을, 한없이 다정하던 눈빛들을, 눈물들을 생각했다. "누가 날카롭게 쏘아붙이면, 누구는 사색조로 얘기했고, 또 누구는 도도하게 한마디 했다. 대화는 씩씩하면서도 밝았고 이 공간에선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그녀의 말처럼, 이모들의 삶은 한데 어우러져 보기 좋게 조화로웠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분명했다. 비슷한 파마를 했지만 각자의 손질법에 따라 머리는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꼬불거렸고, 같은 옷 가게에 드나들어도 좋아하는 색깔과 디자인은 서로 달랐다. 대부분 가난하고 살기 힘들었지만 각자가 짊어진 불행의 무게도 종류도 대응 방식도 너무 달라서 실제로는 무채색에 가까운 동네가 이모들의 대화 속에서는 언제나 활기 넘치는 총천연색이 되었다. 나는 그녀들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를, 미움도 사랑도 눈물도 웃음도 꼭 한 가지 이름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미워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울면서도 웃는다는 말을 나는 몸으로 배웠다.








비비언 고닉은 책의 제목처럼 '사나운 애착' 관계를 형성했던 자신과 여러 여자에 대해 쓰면서 기세 좋게 그들의 자유를, 그들의 욕망을 종이 위에 부려 놓는다.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 고개 돌리고 싶은 상황들도 있지만 나는 그 이야기들이 비비언 고닉만의 이 기세를 만들어주었음을 생각한다. 그녀는 이해하기 힘든 것을 겪으며, 고개 돌리고 싶은 상황을 살며 지금의 자신이 되었고, 가끔은 엄마를 달랠 줄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가령 이런 장면. 비비언 고닉이 추천하거나 선물하는 책들마다 혹평을 늘어놓는 그녀의 엄마.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니? 이 안에 내가 모르는 게 뭐가 있냐고? 나는 삶으로 다 살았어. 나는 다 안단 말이다. 작가라면 내가 알지 못하는 걸 말해줘야 할 거 아니니. 그런 게 하나도 없더라. 너한테나 재밌었겠지. 난 어땠냐고? 그 책이 무슨 수로 재밌을 수가 있겠니?"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지고 있을 그녀가 아니다. 평소 같으면 더 센 말로 응수하고 홱 돌아서 자기 갈 길을 가버릴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의 비비언 고닉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배울 것 하나 없다고 말하지는 마. 알맹이라곤 없는 책이라고 말하지도 말고. 엄마한테도, 나한테도, 책에도 그렇게까지 나쁘게 말할 것 없잖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우리 모두를 업신여기는 것밖에 안 돼."


이른 나이에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자, 삶의 이유이며 근원이었던 남편을 잃고 되돌릴 수 없이 우울해져 버린 엄마를 비비언 고닉은 미워하고 동시에 이해하고 그러면서도 불편해한다. 그녀는 엄마가 슬픔을 온통 독차지 하는 통에 자신은 아빠를 잃었다는 걸 느낄 기회조차 없었다는 걸 오래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날 이후로 엄마는 슬픔과 절망에 빠지기로 '작정'하면서 영원히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엄마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지만, 마치 그 선택지들이 하나도 없는 듯이 행동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는 이유가 '대단한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엄마를 불만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 사랑 때문에 모든 걸 걸고, 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엄마를 비비언 고닉은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엄마가 지고 살아온 절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매일 아침 일어나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고 우리 먹일 끼닛거리 목록을 돈과 함께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네 블록을 걸어 지하철역에 가서 <타임>지를 한 부 사들고 지하철에서 읽으며 42번가에 도착해 회사 건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서 그날 업무를 마친 다음 다섯 시에 퇴근해 아파트 문으로 들어와 부엌 긴 의자에 털썩 앉아 저녁을 먹고 바로 소파로, 따스한 목욕물처럼 당신을 반겨주는 우울함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날 저녁의 우울, 마지못해 견뎌야 하는 일상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엄마를 배신하지 않고 기다려준 이 절망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그렇게 일을 하고 오는 사람처럼."


그녀는 알고 있다. 엄마가 얼마나 절망했었는지, 또 그 절망보다 더 중요한 생계를 위해 얼마나 성실했는지. 하지만 동시에 기억하고 있다. 엄마가 퇴근해 돌아와 하루치의 '약속된' 우울 속으로 빠져들던 장면을. 엄마의 절망과 성실과 우울을 함께 겪으며 자랐을 딸의 얼굴을 떠올린다. 비비언 고닉이 왜 이렇게 성질이 고약하고 고집이 세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믿지 못해 갈팡질팡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저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그녀가 바라본 것들을. '절망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그렇게 일을 하고 오는 사람'이라는 그녀의 눈물 섞인 문장을 보여주고 싶다. 그녀에게 주어진 세상은 어느 것 하나도 손쉽지 않았다. 간단히 행복하거나 가볍게 즐겁지 않았다. 그녀를 살린 엄마의 성실에는 언제나 엄마보다 더 큰 그늘진 뒷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고, 잊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세상의 이면을 본다. 그런 사람은 더럽고 추악한 것도 있는 그대로 본다.


한편 비비언 고닉의 엄마와 실제로도 원수지간이 되었고, 은유적으로도 정반대에 있는 '네티'라는 아주머니의 존재는 그녀가 인간을 얼마나 다층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는지 또 한 번 보여준다. 네티의 삶은 엄마의 삶과 완전히 반대이면서 동시에 하나다. 비비언 고닉은 그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혼에 실패하는 동안, 유부남과 오랜 시간 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그녀는 스스로 끊임없이 물었을 테다. '엄마야?, 네티야? 넌 대체 누구야?' 첫 번째 결혼이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를 답습하는 과정이었다면, 두 번째 불륜은 네티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네티를 모방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선언한다. "사랑이란 수동적인 감정이 이끄는 기능이며 만족스러운 확신보다는 이상에 의지한다. 사랑이란 우리가 태어났을 때의 원초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반면 일이란 적극적이고 표현적인 삶의 기능이며 아무런 결과를 내지 않는다 해도 행동하는 자아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은 여전히 남는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는 사랑이라는 신전을 숭배했지만, 평생 돌려받은 건 권태였어. 사랑이 준 건 죽은 경품이었어."


비비언 고닉은 이 책에서 평생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자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그들에게 받은 영향 아래서 때로는 행복해했고 때로는 버거워했다. 그녀는 이 책을 쓰게 한 엄마의 한마디 말,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를 그녀이게 하면서 동시에 그녀가 가장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돼버린 그녀의 엄마, 그녀의 여자들. 이 책은 그 모든 여자에게 바치는 헌사이면서 저주다. 사랑이면서 미움이고 웃음이면서 울음이다. 그 둘이 그렇게 달랐던가.


"어쩌면 끊임없는 변화, 유동적인 상태야말로 우리가 날마다 맞닥뜨리는 진실이 아닐까 한다. 이 불안정성이야말로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요 인생의 신비와 약속을 관통하는 진리가 아닐까. 엄마와 나는 더 이상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있지 않는다. 드디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영구적으로 성취되었다. 나는 우리 둘 사이의 거리를 흡족하게 엿본다. 약간의 공간이 나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일용할 기쁨을 가져다준다. 내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날 것이라는 믿음."








내 안에 들어 있는 그녀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나의 이모들. 우리는 아마 지금 만난다면 그리 즐겁지 않을 것이다. 함께한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까. 아니. 사실은 좀 다르다. 이모들은 나와의 만남이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가끔 경조사를 챙기러 갔다가 마주치는 이모들은 여전히 내 손을 잡고 내 등을 쓸며 눈물을 짓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뿐. 나는 좀 달라졌다. 그때의 그녀들보다도 나이가 많아졌다는 이유로, 삶의 풍파를 견뎌봤다는 이유로, 나는 이제는 그녀들을 신비로워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수다가 흥미롭지도 않고, "엉아"소리가 좋아서 따라 해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자꾸 나를 본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눈으로, 너의 다섯 살을, 너의 열 살을, 너의 스무 살을 기억하고 있다는 눈으로.


나도 모르는 내 얼굴을 아는 사람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한 시절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같은 여자'로서 네가 이만큼은 살아줘야지, 안 그래? 하는 얼굴로 나를 본다. 지나버린 한 시절을, 추억이 돼버린 삶의 순간 순간을 그리워하는 얼굴로 나를 본다. 그럴 때 나는 문득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잘살고 있나. 그 시절을 건너던 그녀들의 억척스러움을 넘어, 그녀들의 잘못과 실수를 넘어, 너는 좀 달라야 한다는 부담을 넘어, 나는,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날" 삶을 꾸려가고 있나. 그녀들도 꿈꿨을 그 삶, 자주 포기하고 대부분은 잊어버린 척해야 했던 '어떤 여자'의 삶을, 나는 조금이라도 닮아가고 있나.


에이, 참 부담스럽다. 이모들은 항상 그래. 좋은데 부담스러워. 싫은데 그리워. 알았습니다. 더 노력해볼게요. 어쩌면 당신들의 꿈이었을, 이제는 나의 꿈일, 그 '어떤 여자'의 삶을 살아볼게요. 그래서 언젠가는 저도, 당신들에게 헌사이면서 저주인 사랑이면서 미움이고 웃음이면서 울음인 어떤 글을 써볼게요. 인제 그만 가요. 나 좀 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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