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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by 이상희 Ma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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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부터 거의 모든 것이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그의 ‘침묵’이었다. 말이 없는 히라야마. 덕분에 영화가 시작하고 30분 가까이 대사 없이 히라야마의 일과를 따라가는 것이 전부인데도, 답답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군더더기 없는 일상에 좀 더 밀도 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그런 침묵이 더 좋아진 것은 그가 끝내 입을 여는 순간들 덕분이었다. 허술해 보이는 나이 어린 동료에게 데이트 비용을 줄 때, 단골 사진관에 들러 아주 간략한 인사와 감사를 표현할 때, 훌쩍 자란 조카가 찾아오자 환하게 웃으며 하나뿐인 침실을 내어줄 때. 그의 언어는 꼭 필요한 만큼 다정하고 따뜻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언뜻 보면 그는 언어로부터 도망친 듯 했지만 막상 그가 말하기 시작하자 알 수 있었다. 그의 언어는 충분하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말하겠다, 필요하다면. 허술한 동료가 무슨 사정인지 갑자기 일을 관두고 하루 종일 동료의 구역까지 화장실을 청소하느라 저녁 늦도록 일하고 난 그는 센터에 전화해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전에 없이 강력하고 단호한 말투. 역시. 그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나의 유년 시절은 딱히 소란스럽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완전히 괜찮은 사춘기가 존재할까. 나는 입을 닫는 것으로 모든 반항을 대신했다. 선명하게 기억한다. 막 중학생이 되려던 그때, 나는 말하기 싫어졌었다. 너무 많은 오해가, 너무 많은 잔인함이 말 안에 담겨 있다고 느꼈다. 두려워서 미워서 나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었지. 그렇게 입을 다물기 시작했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나는 과묵한 아이, 말 없는 친구, 소극적이고 조용한 사람으로 지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망설였는데도, 여전히, 언제 말하고 언제 말하지 않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다시 말하기를 회복(?)한 건 성인이 되고 난 이후였는데, 말하지 않아서 쌓이는 오해 역시 두렵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변명은 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고르고 골랐다. 나를 면담하던 한 교수님은 “이상희 학생, 말을 좀 빨리해 줄 수 있을까요. 제가 너무 답답해서요.”라고 했을 정도. (오해는 마시라. 교수님은 정말로 오래 기다려주었다)


히라야마를 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는 말로부터 도망쳤던 거구나. 그럴 때 말이란 하든 하지 않든 나를 향하지 않는다. 그저 밖을 향한다.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그렇게 발화한 말이 나에게 의미를 갖기란 어렵다. 나에게 충분한 말이 될 수 없다. 히라야마의 말은 발화하든 발화하지 않든 언제나 자신에게 충분한 말이다. 설령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그는 모든 걸 표현한다. 자신에게 충분한 방법으로.


제법 오랜만에 만났을 동생과 나누는 짧은 대화와 거기에 이어지는 그의 오열은 그가 받았을, 그리고 여전히 그 안에 있을 어떤 상처에 대해 충분한 말을 건넨다. 그는 슬픈 일을 겪었을 것이다. 여전히 그 기억으로 인해 때때로 슬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이처럼 울어버리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그림자가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

=확인해 보죠

(가로등 불빛 아래 서서 이리저리 서로의 그림자를 겹쳐보며)

-달라졌어요! 보세요!

=안 달라진 거 같아요

-안 달라졌을 리가 있나요?

=좀 억지 같은데

(표정이 단호해지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말이 안 되죠


히라야마는 자세히 보는 것으로, 오래 바라보는 것으로 아주 작은 변화까지도 느끼려고 노력해 왔을 것이다. 거의 자동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단조롭고 그러면서도 매번 새롭게 다가서는 그의 행동들. 그런 시간이 그의 발화를 더 충분한 것으로 만들어주었겠지. 그의 침묵조차도. 그 침묵의 시간이 자신에게 맞춤해질 때까지 그는 살아냈으므로. 마침내 눈물도 웃음도 세월도 삶도 모두 그 자리에서, 완벽한 나날(perfect days)이 되었다는 이야기. 어쩌면 우리가 바라마지않을, 그런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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