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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Feb 21. 2017

어쩌다, 스물아홉

‘눈 뜨고 나니 스물아홉이 되어있더라’ 남의 얘기인 줄 알았다. 정말 눈을 뜨고 나니 나는 스물아홉이었다. 스물다섯 살 이후로 해가 지나갈 때마다 뒷자리가 올라가는 게 낯설었다. 매 해 이뤄놓은 것이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나이를 먹는 것이 썩 부담스러워졌다.


한 살 더 먹고 나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의 대화의 주제는 이러했다. “스물여덟 까지는 괜찮았는데 스물아홉은 이상해” 뭐가 이상한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아직 나에게 스물아홉은 낯설고 버거운 타이틀 중 하나인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일단 올 해의 내 모습은 내가 꿈꿨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지난해 멋들어지게 자유를 찾는다며 첫 직장을 퇴사하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유럽여행 후 집으로 돌아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냈다. 조금은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다. 연봉도 괜찮았고 복지도 괜찮았다. 야근은 괜찮지 않았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려고 했으나 회사를 당장 그만두라는 신호였는지 아프기 시작했다. 통원 치료도 불가능할 정도로 아픈 부분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저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거짓말일 거라 다들 지레짐작했다.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병원 갈 여력이 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병원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어떤 병인지 대략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완치되기까지는 꽤 여러 달이 걸렸다. 다행히 수술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감았던 눈을 뜨니 스물아홉 살이 된 것이다. 


새 해가 되고 작심삼일 정도의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새 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이것도 스물다섯 때부터인가 싶다. 도대체 스물다섯의 나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무기력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이다. 어떤 결심을 해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새해라는 이 시점에 나는 상당한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자거나 게임을 하고 있다.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고 그렇게 한 참을 미루다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지난해보다 개인적인 능력치는 올랐고 더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으나 연락 오는 곳은 전무였다. 연패에 나는 더 침대 속으로 들어갔고 더 오랜 시간 잠을 잤다. 그렇게 하면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특히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한 발 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우울감이 이불속에 함께 잠들고 있었다.


채용 사이트를 바라보면서 느는 것은 한숨이요 쌓이는 것은 걱정이었다. 바라는 능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연봉을 보면서 허탈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더 나았다.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닌가’ 그런데도 입사 지원을 하면 탈락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씁쓸했다. 계속된 이력서 지원과 탈락의 반복을 보면서 한 살 더 먹는다는 게 이렇게 큰 무게였구나를 실감했다.


깊은 무력감으로 둘러 쌓여있었다. 무력감이 절정에 이렀을 때, 약간의 감동 코드가 섞인 프로그램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전혀 눈물을 흘릴 상황이 아니었다. 눈물을 그치려 예능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렸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한 참을 그렇게 눈물만 흘렸다.


이상하게도 허탈감이 밀려왔다. 여유 있는 연봉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적정한 소비만 할 수 있으면 되었다. 정시 퇴근으로 집에 돌아가 가족과 저녁을 먹고도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바라는 거였는데 내가 그렇게 커다란 것을 바라는 건가 싶었다. 당연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것들이 내 욕심, 혹은 과한 바람으로 이어지는 것이 나는 여간 불만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스물아홉의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혹은 머물러 있을지 모르겠다. 스물아홉의 기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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